Written by. 최진사
희뿌연 장막처럼 한치도 보이지 않는 해무 사이로 고독한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후우-”
담배 연기는 이윽고 안갯속으로 퍼지며 자신의 존재를 감췄다. 마치, 자신을 이곳으로 떠밀어낸 미제사건의 용의자처럼.
“X발, 염병, 우라질!”
분노를 담아 소리쳐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초점을 잃은 그의 동공에는 며칠 전 부장검사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수석, 내일 공판은 차질 없이 승소할 수 있겠지?”
“부장님 저 못 믿으십니까? 저 대한민국 마지막 사법고시 수석 사마의입니다.”
그의 자신만만한 어조에 부장은 살포시 한 발 물러났다.
“못 미덥다는 게 아니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직 국회의원이 얽혀있는 스캔들이니깐 위에서도 예민하시겠죠.”
정치적인 문제는 늘 그런 식이었다.
“패소하면 사수석이랑 나는 지방유배 확정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승패의 중요한 열쇠인 증인까지 잘 구슬려 놨습니다.”
“전재훈 원장이었나? 그 양반 보통이 아닐 텐데, 어떻게 우리 쪽으로 꾄 거야?”
부장은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며 물었다. 마의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손사래를 쳤다.
“하하. 뭐 별거 있습니까? 쥐고 있던 걸 뺏겼는데 다시 돌려준다고 했을 뿐이죠.”
“아! 그, 자격정지 된 보육원?”
“맞습니다. 시설에 꿀단지를 숨겼는지 금송아지를 숨겼는지 법적으로 다시 재운영 돕겠다고 하니깐 덥석 물더라고요.”
“하하하. 내 자네만 믿겠네! 박 의원만 구속되면 나는 정계로 자네는 위로... 아! 잠시만 나 전화 좀, 뭐... 뭐야? 이런!”
마치 썩은 고기를 보듯 경멸하며 바라보던 부장검사의 눈동자가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 그는 몸서리를 치고는 다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제일 중요한 증인이 뒈져버리냐고! 하아-그나저나 어떤 새끼가 전원장을 죽인 걸까? 박 의원이 아무리 권력의 탑이라고 해도 살인을 사주할 배포는 아니고, 뭔가 있는데...”
그때였다. 마치, 잠시 생각을 멈추라는 듯 주머니 속 스마트폰 진동이 그를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그는 화면 속 대용면지구대라는 발신자를 보고는 그대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투덜거렸다.
“내가 이 동네에서 낚시하는 건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을까? 하여튼 대한민국은 이래서 안 돼요. 어떻게 해서든 엮어서 잘 좀 봐달라고 굽신굽신 보나 마나 이 동네 지구대장이겠지...”
주머니 속 스마트폰 진동은 그의 사색을 허락지 않겠다는 듯 쉬지 않고 울려댔다.
“아오! 받는다! 받아! 여보세요!”
그는 신경질적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대용면 지구대 인디요. 새로 부임하신 검사님 휴대전화 맞아요?”
예를 갖춘 구수한 사투리가 흘러나왔다.
“네. 맞아요! 무슨 일인데요!”
“청에 문의했더니 이 번호 주면서 검사님한테 말씀 하라던디...”
“저 아직 정식 발령 전이고, 이번 주까지는 정직 중이라 용포항에서 낚시 중입니다.”
“오메! 그러면 더 잘됐지라잉! 용포항 어디여라? 제가 모시러 갈랑께요.”
그 구수한 인간은 뜻밖에도 몹시 적극적이었다.
“아니, 뭐 다짜고짜 데리러 온다고 그럽니까!”
“그란게 아니고요. 용포만 방조제서 변사체가 나왔는디...”
“그럼, 담당 형사랑 현장 검시하고 보고하시면 되잖아요! 굳이 정직 중인 검사한테 전화하십니까?”
맞는 말이었다. 때로는 검사가 형사인 줄 착각하는 분자들이 어디에나 있었다. 그런 데다가 자신의 신분은 정직 상태인 검사. 심지어 현직도 아닌데도 굳이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그, 형사님이랑 국과수 양반들이 검사님이 꼭 오셔야 한다고 안하요.”
“청에 전화하시면 오늘 출근한 검사들이 알아서 해줄 겁니다. 끊습니다?”
“아! 이 말 꼭 전하라고 하던디, 국과수 데이터베이스 남바 114604...”
대충 끊어버리려고 했지만 그 익숙한 숫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수화기 속 목소리에 흐릿했던 그의 동공은 마치 길을 안내하는 등대의 빛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시간은 거슬러 11월 어느 살인사건 현장이었다.
매달려있는 변사체에 카메라의 플래시가 연신 번쩍거리는 모습과 주변을 조사하는 국과수 요원과 형사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마치 행사를 끝낸 피냐타 인형*(멕시코 전통인형으로 상공에 매달아 놓고 두들겨 패 인형을 파괴하여 먹을 것을 나눠 먹는다.) 주변으로 사탕과 초콜릿을 줍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어른들을 보는 듯했다.
원래부터 이 행사를 지켜보던 듯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양복의 사내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어! 사수석 님! 오늘 공판 아니었어요?”
사마의는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은 채, 반대 손 검지로 사체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핵심 증인이 저렇게 매달려있는데 공판이 되겠냐? 그나저나 옷 벗는다는 사람이 사건을 맡았네?”
살짝 비꼬는 듯한 말투가 언짢았는지 남자는 마의를 힐끔 보고는 되받아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그에게 답했다.
“그 검사님이 사랑하시던 한서영이가 저한테 떠넘기고 떠났거든요. 이혼 변호사한다나 뭐라나.”
미동조차 없던 마의의 미간은 살짝 꿈틀거렸다.
“야! 서영이랑 나 아무 사이 아니라고! 그냥 루머야 루머! 몇 년 전 일을 지금까지 담아두고 그래?”
“농. 담. 입. 니. 다. 하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계시길래 살짝 흔들어 봤어요. 그나저나 제 사건 피해자가 검사님 핵심 증인이라니요? 괜찮으세요?”
“그러게, 옷은 백 검사가 벗기 전에 내가 먼저 벗겨지게 생겼네, 용의자 추정은 됐고?”
“글쎄요. 현장에 있는 DNA만 수십 명이 넘어서...”
“알아듣기 쉽게 말해봐!”
남자는 멀찌감치 보이는 현장에 자외선램프를 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국과수 요원 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기 저 혈흔들이 한 사람 것이 아닙니다. 자세한 건 국과수 넘어가서 분석을 해봐야 알겠지만, 핵심 증거로 보이는 DNA로 추정되는 게 있다고 말은 해주더라고요.”
“누가!”
남자는 턱짓으로 사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보이죠? 검사님처럼 S대 출신 국과수 요원이 말해주더라고요.”
“그래?”
“어... 어! 어딜 들어가시려고 합니까?”
남자는 현장으로 들어가려는 사검사의 외투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왜? 나도 가까이서 좀 봤으면 하는데...”
“에헤이~ 사마의 검사님께서 이 사건 담당 검사세요? 제 사건이고요. 엄밀하게 따지자면 검사님은 외부인이고요.”
“야!”
“네! 왜요?”
“......”
남자는 거의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의 사검사의 눈동자를 보고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지 쥐고 있던 옷자락을 놓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하나만 물을게요. 전재훈 원장하고 사법거래 같은 거 하시진 않으셨죠?”
사검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글쎄요? 제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요? 그건 검사님 대답에 달려있겠죠?”
“해... 했어! 했는데, 행동강령에 어긋날 만큼의 선은 넘지 않았어!”
죽음을 선고하던 사신의 모습 같았던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짓고는 사검사의 어깨를 팔꿈치로 툭 한번 치고는 말했다.
“검사님 이걸로 저한테 빚 하나 진 겁니다? 제가 벼농사 지을 때 부탁 하나 들어주셔야 합니다?”
“벼... 벼농사라니?”
“조크요. 조크! 벼농사, 변호사 발음 비슷하잖아요!”
“아... 알았어! 한번, 아니 열 번도 도와줄게! 그러려면 내가 이 자리 지켜야 하잖아!”
남자는 그제야 길을 터주고는 간식을 받은 강아지처럼 해맑은 미소로 사 검사에게 말했다.
“저, 국과수 아줌마 검사님이랑 비슷한 부류라 대화가 잘 통할 거예요! 용의자 추정되면 저한테도 공유해 주시고요!”
사 검사는 그제야 사체 쪽으로 다가갈 수 있었고 그가 제일 처음 본 것은 국과수 요원의 손에 쥐어진 증거수집 봉투 속 면봉이었다.
증-114604 A_1 봉투를 들고 있던 국과수 요원은 사 검사에게 한 마디를 더 덧붙여 말해주었다.
“피해자 구강에서 채취한 증거예요. 사망 직전에 격렬하게 키스를 했나 봐요.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타액과 혈액이 섞여 들어왔더라고요. 이건 제 생각이지만 SM플레이를 하다가 사망한 거 같지는 않아요. 후두부에 가격 된 흔적이 주 사망원인으로...”
그리고 시간은 다시 자욱했던 해무가 걷히고 있는 방조제 위 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 안이었다.
서글서글한 표정과 시골에서 반겨주는 삼촌 같은 푸근함의 지구대장이 담배를 꺼내는 사 검사를 향해 다그치듯 소리쳤다.
“오메! 순찰차는 금연인디요? 이것들 보이 지라잉? 담배 피우면 블백인지 블박인지 여그에 다 찍혀라~”
“아, 네.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전화 목소리로 들었을 때는 검사님 쪼까 거시기하게 생각혔는디 이라고 보니께 참말로 똑 부러지게 생겼구먼요.”
“아, 네. 감사합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마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야, 말씀하셔라.”
“그, 현장 피해자에 대해서 들은 거 있나요?”
“아! 그라네, 서울서 유명한 국과수 양반이랑 서에서 형사랑 야그 하는 것 좀 들었는디 지금 가는 현장서 디져븐 처자가 검사님 피해자 주둥이에서 나온 DNA랑 일치한다고 카던디요.”
그는 재미있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 단축번호를 꾹 눌렀다.
-To be continued-
[Behind the Scene]
의뢰인의 사연을 기대하셨던 분들은 읭스러우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것이 바로 릴레이 소설의 매력이죠.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고 새로운 인물이 두더지 게임처럼 튀어나오고요. 일단 추리스릴러로 시작하긴 했는데 과연 장르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참고로 최 작가님께...1회 보여드린 후...일단 무작정 죽이고 본다며 혼났습니다. (죄송. 추리소설 써본 적 없어요....그냥 글감이 스릴러물이었던 것이었을뿐)
추리소설도 열심히 인풋 해봐야겠어요. 같이 많이 배울 수 있었으면 하고요. 다음화를 쓰려니 이제 좀 착잡해집니다. 꺄홍. (착잡한 거 맞지...?) 제가 잘 못 쓰면 같이 안 쓴다고 중도하차하실까 봐 좀 걱정되긴 합니다. 어렵게 몇 년 만에 구한 인재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