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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Nov 01. 2020

Ⅰ-1. 이미지 스토리텔러, 의상감독

패션의 지대한 공헌에도 영화계 현장에서 의상은 아웃사이더로 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의상감독이라는 용어 자체도 권유진, 조상경 등 일부 영화 의상 전문가들에게만 한정될 뿐 다수의 영화 혹은 드라마 의상을 하는 이들은 그저 의상 담담으로 불릴 뿐이다.       


대부분의 영화 의상 전문가들은 작품과 캐릭터 해석에 대해 물어보고 인터뷰 요청을 하면 “저를 인터뷰한다고요?” “물어볼 게 있어요?”라며 자신이 인터뷰 대상이 된다는 데 의문을 드러낸다. 몇몇은 관심을 가져주는데 대해 “정말 감사한 일인데요”라고 하거나 아니면 스포일러(spoiler)에 따른 책임 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인터뷰 자체를 기피하는 등 소극적 자세를 취한다.     

   

이런 이유로 인터뷰나 취재를 거부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영화 속에 예상치 못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스포일러 금지로 공개할 수 없는 것들이 많지만, 영화 특성상 한 장면을 위해 치열하게 준비하는 의상감독들의 기획 의도는 놀랍기까지 하다. 드라마는 스포일러에 비교적 자유로워 많은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음에도 최근 사전 제작 드라마가 늘면서 역시나 드라마 종영 후로 취재가 밀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작품을 위해 의상, 분장, 미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투입된다. 이 중 패션은 배우들을 캐릭터 이미지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표현 수단이라는 점에서 좀 더 세밀한 이야기들을 의상감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일상에서는 ‘패션=유행’의 등식이 당연시되지만, 작품에서는 ‘패션=이미지’다. 이미지로 재구성되는 패션에서 유행은 하나의 구성 요소일 뿐 필요충분 요건은 아니다. 의상감독은 캐릭터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패션을 활용해 배우를 작품 속 캐릭터로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작품에서 설명되지 않는 그 사람의 출신, 배경, 심리 등을 치밀하게 담아내야 한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2019년)에서 영화 '블랙 팬서'로 의상상을 수상한 루스 카터(Ruth Carter)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 중 '루스 카터 : 의상 디자이너' 편에서 사람을 읽어낼 수 있는 도구로서 의상에 관해 언급했다. 


“옷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사람이 엄마인지, 예술가인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신는 신발이 달라질 수 있어요. 옷이 얼마나 낡았는지, 얼마나 비싼지도 마찬가지예요. 이 사람은 돈이 얼마나 많을까? 어떤 것에 가치를 둘까? 이 모든 것을 옷에서 알 수 있어요.”


루스 카터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엄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관련 도서를 접하며 자랐다. 이런 그의 유년기로 인해 루스 카터는 한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의상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체감할 수 있었고 같은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었다. 

  

영화 '암살'(2015년), '마녀'(2018년), '아가씨'(2016년)

  

의상감독들은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영화 ‘암살’ ‘밀정’ ‘내부자들’ ‘아가씨’ ‘택시운전사’ ‘신과함께’ ‘마녀’ ‘반도’ 등 수많은 흥행작들의 의상을 전담한 의상감독 조상경은 “영화의상은 스토리텔링과 이미지 메이킹이다”라며 의상 설정과 배치 이전에 선행돼야 할 이미지 스토리텔러로서 의상감독의 본질을 강조했다.     

 

그는 “어떤 시나리오는 읽으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미지가) 명확하게 떠올려지는 게 있는가 하면, 어떤 시나리오는 억지로 만들어야 하기도 합니다”라며 마셜 맥클루언의 분석한 이미지에 의한 ‘마비 효과’를 작품 속에서 구현하는 자로서 의상감독의 역할과 현실적 고민을 토로했다.       

 

시나리오에서 이미지가 명확하게 읽히든 아니든 의상감독으로서 이미지 구체화를 위해 브랜딩 작업과 동일하게 시나리오 분석 후 구체적인 작업 1단계로 작품 속 의상 기획을 위해 콘셉트를 잡는다. 이와 동시에 이미지로 스토리텔링을 전개하기 위해 시나리오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상황 분석을 한다.   

    

시나리오 분석이 끝나면 다음은 시대 고증이다. 시대 고증은 의상감독들이 꼽는 가장 중요한 선행 과제다. 이는 작품에서 패션이 유행이 아닌 이미지로 정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지 작업에는 캐릭터가 처한 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장치가 필요하고 이는 고증을 거치야만 가능하다. 보다 완벽한 이미지 구현을 위해 의상감독들은 고증에 심혈을 기울인다. 물론 부분적인 현대적 재해석이 가미되지만 시대 혹은 해당 캐릭터의 직업과 같은 사회에서 위치 혹은 입지를 설명하는 디테일을 치밀하게 배치해 관객을 화면 속으로 빨아들인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 '명량'(2014년),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조선명탐정’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 ‘부산행’ ‘덕혜옹주’ 등 다양한 화제작의 의상을 전담한 의상감독 권유진은 사극과 시대극 분야의 권위자답게 “영화 의상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사회적 정치적 배경은 물론 당시 국제 정세까지 꼼꼼하게 체크합니다. 사극의 경우는 평균 17편에서 20여 편의 논문을 읽고, 주변 국가의 동향까지 파악합니다”라며 철저한 고증과 그 시대에 있었을 법한 요소들을 추출해내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장르마다 특성이 있지만, 사극은 포인트를 잡아야 하고, 시대극은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뿐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것들까지 끄집어내야 제대로 영화의 필요충분조건인 ‘사실성’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별스러운 행동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의상감독들에게 이 과정은 가장 중요한 사전작업이다. 이 과정이 빠지면 의상감독을 통해 표현된 이미지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결국에는 제아무리 역량 있는 연출가의 손을 거쳐도 작품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의상감독이 이미지 스토리텔러로 규정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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