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는 상담소를 다시 찾지 않았다. 그러다 X가 상담소를 박차고 나간 지 한 세달 쯤 지나서 경찰 측이 상담소에 X에 관한 자료 협조 요청을 해 그의 소식을 알게 됐다.
사실 X는 상담소가 있는 건물 2층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X는 인터넷에 떠도는 개인의 흔적으로 지워주는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특정 고객의 흔적을 지우다 찾은 은밀한 자료를 특정 사이트에 매매하던 정황을 알게 된 고객들이 X를 경찰에 고발했다. X가 은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모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고객들이 비밀 계정으로 운영 중인 SNS를 침입하는 온라인 스토킹까지 했다. 고객들이 고발을 취소해 입건되지 않았으나, X는 꽤 오래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회사는 X를 퇴직 처리했지만, X로 인해 실추된 이미지는 회복되지 않았고 그 일이 알려진 지 불과 한 달 만에 폐업했다.
나중에 알게 된 정황은 정말이지 영화보다 더 극적이었다. X는 그놈, 부장이 자신을 감시하고 스토킹한다면서 회사에 그를 퇴직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부장은 사실 X를 스토킹한 것이 아니라, X의 컴퓨터 사용 내역에서 이상한 정황이 감지돼 그의 행적을 조사해 온 것이었다. 결정적 증거를 잡지 못한 그 부장은 X를 최대한 기억 지우기 실무에서 배제하기 위해 서류 폐기 같은 업무를 시켰다. 그러다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 X가 부장에 대해 악의적 분노를 터트렸고 그 과정에서 X의 허점이 노출된 것이었다.
그는 세상을 향해 분노했다. 그가 스토킹한 고객의 정보 대부분은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즐겨온 사람들이었다. 그는 화려한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분노했다. 자신은 타인의 기억을 폐기처리 하는 업무를 하는 것도 모자라 폐기해야 할 서류더미를 치우는 하찮은 일을 하는데 누군가는 화려한 삶을 살고 그마저도 돈을 써가며 지우면서 삶을 리셋해 더 화려한 삶을 향해 간다는 생각에 질투를 느끼고 분노했다. X의 분노에 희생양이 될 뻔했던 부장은 업계에서 신망이 높아져 개업했지만, 다큐멘터리에 나올 정도로 주목받았던 사장은 업계에서 사라졌다.
X의 분노는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무너트렸다. 나는 왜 X의 분노로부터 X를 지켜내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