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이번 주는 멜버른에서의 마지막 주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나는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멜버른을 떠날 것이다. 멜버른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인만큼 아낌없이 후회 없이, 남은 일주일 내내 버스킹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호주의 짐을 정리하여 한국으로 부치는데 하루의 시간이 들었고, 배낭이며, 침낭이며, 유럽 배낭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는데 또 하루의 시간이 들었다.
호주에서 만난 친한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별도의 시간도 필요했다. 서로가 서로의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면, 앞으로 언제 또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인연들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과 이별의 저녁 약속을 잡고 나니, 내가 순수하게 버스킹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다가오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하늘은 토요일 하루 종일 많은 비를 내렸다. 평소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에 거리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비가 내리는 토요일은 여느 평일의 저녁 시간보다도 더 관객이 없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싶었으나, 내리는 비만큼이나 공연의 텐션도 축축 처졌다. 나는 준비한 파스텔로 보도블록에 작은 메시지를 남겼다. 그동안 이곳에서 버스킹을 하며 참 즐거웠고, 이 곳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었다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자신의 가던 길들을 멈추고, 나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남겨 주셨다.
“멜버른 사람들만 보기에는 당신의 공연은 너무 아까워요. 부디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도시에서도 공연을 하고 들어가 주세요.”
그리고 나는 그들의 바람을 절반은 들어주었고, 절반은 들어주지 못하였다.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다른 도시에서 공연을 하고는 들어갔으나, 그 무대는 시드니와 퍼스, 브리즈번과 같은 호주의 도시들이 아닌, 마드리드와 파리, 잘츠부르크, 바르셀로나 같은 유럽의 도시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빗속에서의 그 토요일 버스킹이 멜버른에서의 마지막 버스킹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도저히 버스킹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였다. 일요일에는 천둥에, 번개에, 강풍까지 멜버른 전역을 덮쳤다. 버스킹은커녕 밖에 나가는 것조차 꺼려지는 날씨였다. 일요일에 버스킹을 전혀 못하게 될 줄 알았으면, 토요일에라도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게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오는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하여 나의 가슴 한 켠에 아쉬움과 서운함의 응어리가 뭉텅뭉텅 뭉쳐만 갔다. 그야말로 <Almost is never enough>이다.
그렇게 멜버른에서의 버스커로서의 나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지난 몇 개월, 그 간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는 정말로 작별을 고해야 할 때이다. 그야말로 굿바이, 멜버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