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멜버른에서 버스킹을 하며, 거리에서 만난 인연 중에 아직까지도 내가 감사해 마다하지 않는 분이 있다. 바로 Heather Digby라는 분이다. “당신은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더 생기 있는 도시로 만든다”며 늘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 주셨던 그녀는, 나와 페이스북의 친구가 된 이후로도, 꾸준히 나의 유럽에서의 버스킹 활동들과 그림 활동들을 응원해 주셨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한국에서 자존감이 저 밑바닥까지 떨어질 때쯤이면, 그녀는 어김없이 멜버른에서의 나의 활기찼던 그 모습이 그립다고 하셨다. 그녀의 응원과 격려는 어쩌면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스캇 플린더스 씨를 위한 것이었을지 몰라도, 한국에 있는 취업준비생, 김정배 씨에게도 충분히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다시 한번 그녀에게 온 마음을 담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Thank you for everything you did, Digby!
내가 여전히 멜버른을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하고, 또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생활했던 나의 모습을 아름답고 멋있게 기억해 주시는 많은 분들과 나의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분들께서 나를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로 기억해 주시는 한, 나 역시 그 분들의 기억 속에서 언제까지라도 활기차게 상모를 돌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앞으로 몇 년 뒤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3박 4일의 짧은 여행 일정일지라도, 나는 다시 한번 상모를 들고 멜버른을 찾고 싶다. 내가 늘 공연했었던 그때 그 장소, 스완스톤 스트릿과 보크 스트릿의 교차로, 바로 그곳에서 예전처럼 상모를 돌리고 있노라면, 적어도 시민분들 중 한 분께서는 나를 알아봐 주시지 않을까? “너, 예전에 2014년도에 이 곳에서 강남스타일 노래를 틀며 춤을 추었던, 그 때 그 한국인 버스커가 아니냐”면서 말이다.
만약 나의 이 즐거운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 테다. 그리고 또 실제로 이 상상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왜냐, 나는 전에도 이런 기분을 이미 한 번 느껴본 적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콜로세움 앞에서 공연을 했을 때였다. 한 커플이 내게 다가오더니, 혹시 호주 멜버른에서도 같은 공연을 하지 않았느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호주에서 나의 공연을 본 커플을, 지구의 정 반대편인 로마에서 우연처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충분히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준 매기와 시몰라, 그 둘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들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춤을 추고 있는 나의 버스킹 동영상도 고마웠다. 그리하여 멜버른에서 다시 공연을 할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나는 그곳에서 또 어느 누구를 만나고, 또 어떤 인연과 어떤 에피소드들을 만나게 될까? 나는 지금 2021년의 한국에 있지만, 내가 멜버른으로 돌아간다면, 그곳은 2023년이 되든, 2024년이 되든, 나에게는 분명 2014년의 멜버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