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기억을 기억한다. 추억을 추억한다.

그렇다.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다.

by 김정배

작년 연말, 그러니까 인스타그램에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라는 이름으로 매일같이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한 지 20일쯤 지났을 때였다. 고향 친구들로부터 하나둘씩 메시지가 오기 시작하였다. “김자영(김 자유로운 영혼)님, 조만간 곧 멜버른에 상모 돌리러 갈 기세던데, 요새 정말 별일 없냐”던 그들의 안부 메시지.


그리고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지금, 한 꼭지, 한 꼭지씩 모아 온 글이 어느덧 40편 가까이 되더니, 이제는 그 후속 시리즈인 <나는 인사동의 상모 버스커>의 글들도 제법 많이 모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이 아직 많기만 하다.


기타리스트이자, 디저리두(호주 전통악기) 연주자인 관석이와의 조인트 공연도 아직 이야기하지 못하였다. 멜버른의 특별한 한국 사람들을 취재하고 다녔던 블로거, 정호와의 인터뷰 이야기도 끝내 적지 못하였다. 아크로바틱 일본인 버스커인 히로시와의 이야기도, 대만에서 온 피아니스트 자넷 황과의 이야기도, 태국 소녀 니나와의 이야기도 못 다 하였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노래에 슈렉 가면을 쓰고 춤을 추었던 날의 이야기도 적지 못 하였다.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미래를 바라 보고, 후회를 안고 사는 사람들은 과거만 바라본다고 한다. 매일같이 멜버른의 이야기만 하는 나는 혹시나 지금도 2013년과 2014년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닌지 조금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멜버른에서의 생활이 너무나도 좋았고, 또한 멜버른을 좋아하는 내 모습 또한 좋았다.


멜버른에서는 저녁이 있었고, 여유가 있었고, 거리의 버스커들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한국에서는 저녁은 없었지만, 야근이 있었고, 거리의 버스커는 없었지만, 아프리카의 BJ가 있었고 유튜버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희망과 기쁨의 생산자라기보다는, 그 희망과 기쁨의 소비자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억을 기억한다. 그리고 추억을 추억한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했던 모든 시간, 모든 순간, 모든 이야기들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그렇다.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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