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첫 번째 수업료
스물다섯의 겨울, 나는 아버지와 함께 서울의 어느 부동산 문을 열었다. 지방에서 갓 올라온 우리 부자(父子)에게 서울은 너무나 거대했고, 아버지는 저녁 일정이 있던 탓에 서둘러 방을 구하고 김포 공항을 가야 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반나절뿐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그 조급함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저희가 제주도에서 와서 서울을 잘 모릅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버지가 중개사에게 허리를 굽히며 건넨 첫마디였다. 아버지는 믿으셨던 것 같다. 우리가 멀리서 온 손님이고, 예의를 갖추어 부탁하면 상대방도 ‘정(情)’으로 답해줄 것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니 그 인사는 중개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아는 게 없으니,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중개사를 따라 비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방은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눕는다기보다 짐 사이에 구겨져 있어야 할 것 같은 쪽방(500/50).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서울 집값 비싸다더니 원룸도 다를 바 없네." 멍해 있는 우리에게 중개사는 눈치 없이 물었다. 방이 좀 좁아 보이긴 하지만, 빌트인이 다 되어 있어서 사는 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염병, 좁아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좁은 거겠지.’ 나는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우리 부자는 눈빛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방이 너무 좁습니다. 다른 방은 없습니까?" 중개사는 한숨을 푹 쉬며 따라오라 말했다. 또다시 골목길을 지나 보여준 두 번째 방(1000/60). 집은 낡았지만, 방이 넓고 베란다도 있었다. 상대적 효과였을까? 방금 본 쪽방 때문인지 우리 눈엔 그곳이 마치 궁궐처럼 보였다.
"이 가격에 이런 방 금방 나가요."
홈쇼핑 쇼호스트가 왜 매진 임박을 외치는지 그때 알았더라면 신중했을까. 그 재촉 한마디에 아버지와 나는 덜컥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꼼꼼히 따져봤어야 했다. 왜 이 넓은 방이 하필 아직까지 남아 있었는지를. 하지만 나는 그때, 내가 행운의 주인공처럼 운 좋게 좋은 방을 얻었다고 착각했다. 가계약금을 넣고 집으로 돌아가 짐을 싸며 서울로 올라갈 날만을 고대했다. '내가 서울에 산다니...' 꿈꿔왔던 일이 이루어지기 직전이었다.
이사 당일, 부모님이 바쁘셔서 홀로 올라와 미리 보낸 택배와 캐리어의 짐을 풀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왜 이 집이 안 나가고 있었는지.
쿠구구궁- 굉음과 함께 방바닥이 지진처럼 울렸다. 창문을 열어보니 빌라 뒤편 굴다리 위로 1호선 전철이 지나가고 있었다. 10분마다 한 번씩, 집 전체가 흔들렸다.
계약할 때 왜 집이 흔들리지 않았는지 의문이었다. 주말이라 지하철 배차 간격이 길어서? 마침 우리가 집을 볼 때만 전철이 지나가지 않아서? 어쨌든 확실한 건 하나였다. 행운의 주인공은 무슨... 나는 그냥 '멍청이 1'이었다. 집주인과 잘 아는 듯했던 중개사가 이 소음을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미리 고지하지 않았다고 원망하기엔 그걸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내가 더 원망스러웠다.
계단 청소는커녕 먼지만 쌓여가는데도 꼬박꼬박 뜯어가는 관리비(물론 명목은 청소비였다), 아무리 약을 쳐도 불쑥불쑥 출몰하는 바퀴벌레들. 당장이라도 이사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 발목을 잡은 건 계약서였다. 계약 당시, 중개사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기간이 '24개월'로 적힌 계약서를 내밀었다. '아, 서울은 월세도 전세처럼 2년이 기본인가 보구나.' 아버지와 나는 그게 서울의 국룰인 줄로만 알았다. 1년으로 하면 안 되냐고 물어볼 생각조차 못 한 채, 그저 고분고분하게 넙죽 사인을 해버린 것이다. 그건 내 무지가 스스로 채운 족쇄였다.
그렇다고 당장 복비를 내고 나가기엔 수습사원의 월급통장은 너무 얇았다. 부모님께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보증금까지 손 벌린 마당에, "내가 계약을 잘못해서 돈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건 취업까지 한 어른으로서 지키고 싶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2년을 채우지 못했다. 1년 6개월을 버티다, 주말 대낮에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진저리가 나 방을 빼기로 했다. 결국, 얼마 뒤 내 돈으로 복비를 물어내고서야 도망치듯 그 집을 탈출했다.
당시 그 중개사분이 나쁜 마음으로 악성 매물을 떠넘겼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예산 안에서는 그게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서울은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 따위로 해결되는 곳이 아니라, 당연히 내가 꼼꼼히 더 따져봤어야 했다는 냉혹한 사실이었다.
나는 어리숙하고 멍청했다.
근처 시세가 어떤지, 어디가 살기 좋은지 미리 알아보려 했었다. 하지만 거미줄 같은 지하철 노선도와 낯선 지도 앞에서 나는 압도당했고, '대충 이쯤 가서 살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부동산을 덜컥 찾아간 것이었다. 아빠랑 같이 가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아빠도 서울은 잘 모른다는 사실을...
"잘 부탁드립니다" 한마디로 이 거친 서울 살이를 퉁칠 생각을 하다니. 나는 정말이지 하수였다.
그렇게 스물다섯의 나는, 10분마다 흔들리는 방구석에서 전입신고를 마쳤다. 다달이 비싼 수업료를 바쳐가며, 비로소 진짜 서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