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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로 Mar 27. 2024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갑상선항진증과 두 번째 임신

결혼 적령기에 남편을 만나 미래를 약속했다. 1년을 꽉 채운 신혼을 보내고 첫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나에게 축복이었다. 아이만 생각하면 내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 찼다. 물론 현실은 생각보다 혹독했지만 누구보다도 멋지게 육아를 해낼 자신이 있었다. 육아서들을 정독하고 아이의 발달단계에 맞는 교구와 그림책들을 구입했다. 열의를 다해 책을 읽어주고 온갖 교구들로 오감을 자극시켜 주었다.


따뜻하고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좋다는 것은 다해주고 싶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한 몸처럼 붙어있어도, 제때 머리를 감지 못해도, 서서 밥을 먹어도 괜찮았다. 마음이 흐린 날도 있었지만 괜찮았다.  오로지 아이만 바라보며 모든 걸 다 쏟아내던 때였다.


순하디 순한 첫째는 8개월쯤 되었을 때 엄마껌딱지가 되었다.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불안해했다. 아빠나 할머니에게 안기지 않고 오로지 엄마만 찾았다. 자장가만 불러주면 곤히 잠들던 아이가 밤만 되면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댔다. 겨우 재우더라도 침대에 눕히면 깨기 일쑤였다. 새벽을 지나 동이 틀 때까지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원더윅스, 특정 개월마다 찾아오는 아기의 급 성장기였다. 원더윅스의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힘들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기에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손이 떨리고,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흘렀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다. 음식을 먹으면 속이 거북해서 다 토해버렸다. 도저히 아이를 볼 수가 없어서 보행기에 태우고 침대에 쓰러졌다. 아이가 악을 지르며 울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겨우 하루를 버티다가 남편이 오면 아이를 맡기고 쓰러져 기절하듯 잠을 잤다. 처음에는 신경성 위염인 줄 알았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무리 자도 피로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일주일 만에  5kg이 빠졌다.





병원을 찾았고, 그레이브스 병(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 호르몬 수치 이상으로 몸이 쉬지 않고 계속 달리기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갑상선 항진증의 주요 원인은 스트레스와 과로라고 한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육아를 하느라 제대로 쉰 적이 없고 매일 잠이 부족했다. 끼니를 거르거나 제때 챙겨 먹지 않고 몰아서 먹을 때가 많았다. 아이는 유기농 재료로 영양이 풍부한 이유식을 해먹이면서 정작 엄마인 나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때우곤 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을 키우고 있던 꼴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계획에 없던 둘째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갑상선 기능 이상은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위험하다. 더욱이 갑상선 치료제로 많이 쓰이는 메티마졸이라는 약물은 태아의 선천성 기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으면 유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극소량만 사용하면서 임신기간을 유지했다. 가슴을 죄어올 만큼 거대한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무색하게 현실육아는 계속되었다. 호르몬 이상으로 체력이 떨어지고 내 몸 하나 지탱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엄마만 찾는 첫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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