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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53

다르면서 닮음

by 노용헌 Mar 21. 2025

사실이 그렇다. 우리들은 서로 매우 다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서로 닮아 있다.

나이, 출신, 교양 수준, 신분 그리고 과거가 모두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한때 우리를 갈라놓았던 엄청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크게 보면 같은 사람들이다. 똑같이 거친 실루엣을 통해 우리는 동일한 풍습, 동일한 습관, 원초적 상태로 되돌아간 인간의 단순화된 동일한 특징을 감추고 드러낸다. 

공장과 병영의 은어와 방언이 뒤섞이고 몇몇 신조어들이 첨가된 동일한 말투가 마치 소스처럼 우리를 뒤섞고, 벌써 몇 번이나 계절이 바뀔 정도로 상당히 오래전부터 프랑스를 비워둔 채 북동쪽에 몰려들어 있는 밀집한 인간 무리와 하나가 되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똑같이 묶이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엄청난 모험에 의해 똑같은 계급으로 끌려와, 서로 똑같은 모습을 하고 매일매일 전진하도록 강요받는다. 끔찍하게 협소한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우리는 밀착된 채 적응하며 서로의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지워간다. 이것은 일종의 숙명적인 전염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병사는 다른 하나와 같은 모습이 되고, 이러한 유사함을 확인하기 위해 멀리서 바라볼 필요도 없다. 멀리서 보면 우리는 벌판에 굴러다니는 먼지 알갱이들에 불과할 테니.


-앙리 바르뷔스, 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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