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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r 29. 2022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과 메리 엘렌 마크

소설과 영화, 그리고 사진

메리 엘렌 마크(Mary Ellen Mark)는 시애틀의 거리 청소년, 런던의 거지들에서부터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병원의 시안부 환자들에 이르는 주제들에 관한 심층적인 작업을 해왔다. 봄베이에 있는 거리 창녀촌에 관한 책인 <포크랜드 로드(Falkland Road)>가 아마도 가장 과감하고 개인적인 주장이 강하게 들어있는 작품일 것이다.     

“이런 사진들을 촬영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10년 동안 포크랜드 로드(Falkland Road)에서 촬영을 여러차례 시도해 왔지만, 매번 사람들은 적대적인 감정으로 나를 대했고, 때론 나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한 여자는 내게 쓰레기와 물을 뿌리고, 꼬집기도 했다. 여러 남자들이 나를 에워싸며 위협하기도 했고 한번은 소매치기가 내 수첩을 훔쳐갔고, 술 취한 사람에게 얼굴을 맞기도 했었다. 그러나 몇일이 지나도 내가 계속 찾아오자, 사람들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서서히 난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다”고 그녀는 책 서문에 쓰고 있다. <Falkland Road>     

나는 당신이 "바라보기의 방식way of seeing"이나 "관점point of view"을 개발하거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라보기의 방식"은 당신이 누구인지어떻게 생각하는지어떻게 이미지를 만드는지를 말한다그것은 당신 안에 있는 것이다그것이 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 Mary Ellen Mark     

필라델피아 태생의 여성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그녀는 그동안 창녀, 방황하는 청소년, 인도 서커스단, 각국의 저명인사 등 국적과 계급을 초월한 사람들의 삶을 담아 왔다. 그녀는 다른 사진가들보다 대상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소외계층을 다룬 숱한 사진가들이 대개 사회의 어두운 면면을 고발하거나 관찰자의 입장에서 관조하는 성향을 보였다면, 그녀는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피사체를 포용한다. 그것은 아마도 단순히 대상을 훔치기보다는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해 그들과 함께 사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메리 엘렌 마크는 1981년, [Falkland Road–Prostitutes of Bombay]에서 인도 신분 계급의 최하위층인 창녀들의 생활상을 강렬한 컬러 사진으로 표현해냈다. 이후 시애틀 뒷골목의 부랑 청소년들, 약물 중독자 등을 다룬 [Streetwise]을 발표하고,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녀는 계속해서 주변인들의 소외된 삶을 비추었다. 그녀의 사진은 인간의 마음속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환기시킨다.    

  

소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은 인도의 빈민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린이 실종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홉 살 아이의 눈으로 인도 슬럼가의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9살 주인공 ‘자이’는 똑똑한 친구 ‘파리’와 집안이 가난해 항상 일하는 ‘파이즈’와 함께 어른들이 해결하지 않는 실종사건을 해결하고자 나선다. 인도출신 영국 작가인 디파 아나파라(Deepa Anappara)가 인도에서 기자로 일하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영화 <살람 봄베이Salaam Bombay>는 1988년 칸 영화제에서 당시 31세이던 미라 네어(Mira Nair)에게 제3세계 영화감독 최초로 신인감독상과 황금 카메라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다. 도둑 누명을 벋는데 필요한 돈을 벌러 대도시 봄베이로 가출한 시골 서커스단 출신의 소년 크리슈나가 겪어야만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창녀 가족과 친해지고, 마약판매에 발을 들여놓고, 끝내 창녀의 남편을 죽이는 스토리 전개도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령?”

파이즈는 알라신이 정령을 만들었대요좋은 사람나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좋은 정령나쁜 정령이 있대요나쁜 정령이 바하두르를 납치했을지도 모른대요.”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P59>     

가출하지 않으면 메이플 타워 같은 고층 아파트의 그늘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거라고옴비르는 생각했다아버지의 부서진 희망이 고작 열 살인 자신의 가녀린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바하두르가 가출한 것이 맞는다면왜 가출을 했는지 옴비르는 이해할수 있었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P117>   

  

개들은 쓰레기에 코를 처박은 채 뼈다귀를 찾아다니는 중이고어린아이들은 캔과 유리병을 열심히 찾아서 모으고 있다쓰레기에서 나는 악취를 줄이기 위해 불을 붙인 쓰레기 더미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아이들을 보니 멘탈의 소년들이 떠오른다그 아이들도 플라스틱 병을 주워 모았지만쓰레기 더미가 아니라 선로에서였다파리는 멘탈이 구루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 인물일 뿐이라고 말한다나는 아니라고 맞설 수가 없다도서관에서 받은 녹색 카드가파리는 이야기 전문가라고 말해주고 있으니까.

나는 쓰레기장을 더 잘 보려고 일어선다사람들이 쓰레기를 갖다 버리기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키카르나무들과 가시덤불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아직 살아 있는 나무도 있지만나뭇잎은 검댕이 묻어 까맣고 바람이 마기 국수 봉지와 비닐봉지를 나뭇가지에 붙여놓았다

쓰레기장 너머에는 담이 있고 그 담 너머에는지금은 스모그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고층 아파트 단지가 있다엄마는 그곳에 사는 부자들이 이 쓰레기장을 없애려 한다고 말한다악취 때문에 아파트값이 내려가기 때문이란다여러 해 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때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시 정부가 이 쓰레기장을 폐쇄하기로 약속했는데 이제껏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정부가 항상 우리만 무시하는 줄 알았더니 부자들을 무시할 때도 있나 보다참 희한한 세상이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P172-173>    

 

란디는 젊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이다유령시장에 있는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라는 뜻이다.

성매매업소들이 있는 골목에 가본 적은 없지만시장에서 란디들을 본 적은 있다란디들이 차오멘과 차트를 사고 있었는데화장을 너무 두껍게 한 탓에 땀 흐른 자국이 흉터처럼 분명하게 보였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P177-178>      


그러나 이 도시의 어딘가에 사는 소녀가강 건너에 살거나 이 근처 동네에 사는 소녀가아니 이 나라의 모든 소녀가인적이 끊긴 길을 혼자 걸어가다가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거야. (그럴 때 교차로의 여왕에게 도움을 청하면여왕의 정령이 나타나서 소녀를 도울 거야소녀를 괴롭히려던 남자는 소위 참교육을 받게 되는 거고. (교차로의 여왕은 살아서 아직도 딸을 죽인 놈들을 찾고 있어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도시의 모든 여자모든 소녀에게 이렇게 말할 거야두려워하지 마나를 생각해그러면 내가 네 옆에 있을게.”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P158>     

디파 아나파라는 ‘작가의 말’에서 “궁극적으로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은 그 아이들에 관한, 오직 그 아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다. 나는 그 아이들이 통계수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맞서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 숫자 뒤에 숨겨진 그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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