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옥의 묵시록> 1979년
폴란드 출신 조셉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소설 <암흑의 핵심>은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으로도 번역되어있다. 소설은 서술자 말로가 들려주는 체험담의 줄거리로 비교적 간단하다. 젊은 시절 아프리카의 벨지엄령 콩고의 어느 회사 소속 기선의 선장으로 취직한 그가 우여곡절 끝에 콩고 강 상류의 오지로 배를 몰고 가서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커츠라는 주재원을 데리고 나오는 이야기이다. 커츠라는 인물의 타락적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내면적인 어둠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식민지 개척자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그들의 통치는 착취 행위에 불과했고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그들은 정복자들이었어.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포악한 힘뿐인데,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은 못 되지. 왜냐하면 누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고 하는 사실에서 생기게 된 우연한 결괴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p15)
<.... 아프리카로 나가시는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야 그 이론을 증명할 수가 있답니다. 그건 바로 우리나라가 그 멋진 보호령의 소유를 통해 거둘 수 있는 이득에서 내가 차지하는 몫이기도 하답니다. 단순한 재산적 이득은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게 내버려 두겠습니다. 내 물음이 무례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선생은 내가 관찰하게 된 최초의 영국인이었어요....> 나는 전형적인 영국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서둘러서 그에게 말해주었지. <내가 만약에 전형적인 영국인이라면 이렇게 선생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않을 거요.> <선생의 말씀은 꽤 깊이가 있습니다만 아마도 틀렸을 것입니다.> 그는 웃으면서 말하더군. <화내는 것이 태양에 노출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니 피하도록 하십시오. 아듀. 당신에 영국인들은 이 말을 뭐라고 하지요? ‘굿 바이’라고 하던가요. 아, 굿 바이. 아듀. 열대 지방에 가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냉정을 지키는 일이지요.....> 그는 내게 경고하는 의미로 집게손가락을 쳐들어 보였다네. <냉정을 잃지 않도록 하세요, 냉정을. 아듀.> (P27)
내가 치르게 될 정확한 대가(代價)는 계산하지도 않고, 그저 저항하고 더러는 공격해야만 했던 적도 있어. 공격이야말로 저항의 한 방편에 불과하니까. 그간 나는 폭력의 화신, 탐욕의 화신 및 열망의 화신 등을 겪어본 적이 있는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들은 모두 강인하고 정력적이며 눈이 충혈된 악마 같은 존재로서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몰아세우고 있었다네. 그러나 그 언덕에 올라서자 나는 그 대지의 눈부신 햇빛 속에서 결국은 모종의 탐욕에 젖어 무자비한 우행(愚行)을 범하고 있는 어떤 맥빠지고 눈빛이 흐리면서도 잘난 척하는 악마 같은 인간과 사귀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더군. 그가 얼마만큼이나 음험한 인간일 수 있는가를 나는 그후 몇 달이 지나 몇천마일을 더 들어가서야 알아낼 수 있게 되어 있었다네. 그래서 잠시 동안 나는 마치 어떤 경고를 받은 양 공포에 질린 채 서 있었지. 결국 나는 그 언덕을 비스듬히 내려와서 앞에서 보았던 나무숲을 향해 갔다네. (P37)
자네들도 아다시피 나라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증오하고, 혐호하고 또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그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정직하기 때문이 아니고 그저 거짓말이 내게는 무섭기 때문이야. 거짓말 속에는 죽음의 색깔이 감돌고 또 인간 필멸의 냄새도 풍기는 것이 아닌가. 바로 거짓말의 이런 속성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서 증오하고 혐오하는 바이며 내가 잊어버리고 싶은 바이기도 하다네. 그리고 그런 속성은 마치 무언가 썩은 것을 한 입 물었을 때처럼 나를 비참하게 하고 또 구역질나게 한다네. (p61)
영화는 1979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 의해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으로 만들어졌는데, 배경과 인물등에서 다르다. 배경은 아프리카 콩고에서 베트남으로, 신비스럽고 카리스마적인 제왕 커츠는 주재원에서 대령으로 바뀌었다. 공포스럽게 원주민들을 지배하는 ‘커츠’라는 인물의 묘사는 원작과 같다. 영화에서 전쟁의 광기, 살인과 약탈 등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결국은 광기와 환각에 의한 살인, 살인을 위한 살인으로 이어지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얼토당토한 목적 없는 전쟁, 전쟁을 위한 전쟁을 이야기한다. 커츠 대령 역할은 오슨 웰스와 진 해크먼에게 제안했지만 거절 당하고 말론 브란도가 맡았는데 원작 소설을 읽지 않고 대본 숙지도 안하고 체중도 엄청 찐 상태로 촬영장에 나타나 촬영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감독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말하길 " 이 영화의 주제는 반전“ANTI-WAR”이 아니라 반 거짓말“ANTI-LIE”이다"라고 한다.
... 이 세계의 정복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우리들과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약탈 행위가 아닌가. 그러므로 그 행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구. 이 불미스런 행위를 대속(代贖)해 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어요. 그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 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 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이 있어야지.... (p15-16)
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나는 일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구. 그건 자아 발견을 할 수 있는 기회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 자신의 실체를 아는 것인데, 이 실체야말로 다른 사람들로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해. 다른 사람들로서는 외양만을 볼 수 있을 뿐 그 외양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결코 알 수 없는 법이야. (P66)
여러 달 동안, 아니 여러 해 동안, 그는 단 하루도 못 살 것 같은 절박한 삶을 살면서도, 그곳에서 용감하고 무모하게 살고 있었는데, 그가 파멸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보아도 오직 그의 젊음 덕분이요 깊은 생각을 거부하는 대담한 성격 덕분이었어. 그래서 나는 일종의 감탄이랄까 아니면 부러움이랄까 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 그 매력적 아름다움이 그를 충동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그로 하여금 위해(危害)를 받지 않도록 해주었던 거야. 그가 밀림으로부터 얻어내고자 한 것은 숨을 쉴 공간과 뚫고 나갈 공간뿐이었어.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가능한 한 최대의 위험과 최악의 궁핍을 감수하면서라도 존속하며 전진하는 것이었거든. 일찍이 절대적으로 순수하고 비타산적이며 비현실적인 모험 정신이 한 인간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면, 그 정신의 지배를 받은 사람은 다름아니라 바로 그 얼룩백이 옷을 입고 있는 젊은이였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 나는 그가 가지고 있던 그 겸허하면서도 분명한 불꽃을 부러워할 지경이었어. (P125)
커츠 대령이 죽기 직전에 한 말은 “끔찍하다 끔찍해(The horror! The horror!)”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말로는 커츠의 약혼녀에게는 거짓말로 이야기한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엔트로피entrophy”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나라가 미국과 같은 소비를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라 꿈꾸지만, 만약 개발도상국 몇 개 국가가 미국과 같은 소비를 하게 된다면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몇 년 안에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
진실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옷을 벗어버린 진실이지. 바보들이야 입을 벌리고 몸을 떨고 있겠지만, 용감한 인간이라면 진실을 알면서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 것이네. 그러나 적어도 그는 강기슭에 살고 있는 그 원주민들에 못지않게 인간적인 자질을 가지고서, 즉 자기 자신의 타고난 힘을 가지고서 그 진실을 대면해야 해. 원칙만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구? 원칙만으로는 안 되지. 원칙이란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서 몸에 걸친 옷이라든가 예쁜 천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몸을 세차게 흔들기만 해도 그 천은 떨어져나가게 되지. 그래서 그런 걸로는 안 되고 사려 깊은 믿음이 필요하게 돼. 그 악마가 벌이는 듯한 소동 속에서 내가 일종의 호소력을 느꼈느냐구? 그렇다네. 호소를 들었지. 그러나 내게도 하나의 목소리는 있었고, 좋든 나쁘든, 내 목소리는 결코 묵살될 수 없는 언변이기도 하지.
<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P82-83>
<무서워라! 무서워라!>
나는 촛불을 끄고 선실에서 나왔어. 백인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더군. 나는 지배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는데, 지배인이 눈을 치켜뜨고 캐묻는 듯한 눈초리를 내게 던졌지만 나는 그걸 성공적으로 무시해 버렸지. 그는 몸을 뒤로 기댄 채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그때 그 특유의 미소는 겉으로 표현되지 않은 채 깊이 숨어 있던 그의 야비함을 감추고 있었어. 작은 파리떼들이 램프며 식탁보며 우리 손등이며 얼굴에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듯 계속 덤벼들고 있었지. 별안간 지배인의 사동(使童)이 문간에서 그 검은 머리를 무례하게 들이밀더니 혹독한 경멸의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어.
<미스터 커츠, 그분 죽었어요.> (P158)
나는 그만 그녀에게 <그 소리가 지금 들리지 않습니까>라고 소리칠 뻔했어.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어둠이 끈질긴 속삭임으로 그 소리를 되풀이하고 있는 듯했고, 그 속삭임은 마치 바람이 처음 일 때처럼 위협적으로 부풀어오르는 듯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그분이 남긴 마지막 말씀을 말해 주십시오. 제가 의지하며 살아갈 말씀 말입니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말하더군. <제가 그 분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계시잖습니까. 저는 그분을 사랑했습니다. 그분을 사랑했지요!>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말했어.
<그분의 마지막 한마디는 당신의 이름이었습니다.> (P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