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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an 31. 2023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영화 <제인 에어> 2011년

영화 <제인 에어>(1996), 영화 <제인 에어>(1970), 영화 <제인 에어>(1944)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는 1816년 4월 21일 요크셔 주의 손턴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자매들과 함께 잠시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영양실조와 폐렴으로 두 언니를 잃었다. 1831년 샬럿은 에밀리와 함께 로헤드에 있는 사립 기숙학교에 들어갔으나 에밀리는 심한 향수병에 시달려 3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갔고, 샬럿은 그곳에서 3년간 교사생활을 했다. 1846년 아버지의 백내장 수술을 위해 맨체스터로 동행한 샬럿은 그곳에서 <제인 에어>를 쓰기 시작했고, 그 시기에 여동생 에밀리와 앤 그리고 남동생까지 모두 잃었다. 서른여덟 살에 아버지의 부목사인 아서 벨 니콜스와 결혼하였고, 늦은 나이에 임신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 병이 겹쳐, 결국 결혼 9개월 만에 눈을 감고 말았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  

이 붉은 방에서의 소란이 있은 뒤 나는 중병을 오래 앓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도 그 여파를 감지하고 있다. 그렇다. 리드 부인. 난 당신 덕택에 끔찍스러운 정신적 고통의 진미를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용서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소행을 당신 자신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내 심금을 온통 갈기갈기 찢으면서도 당신은 그저 나의 못된 성벽을 뿌리 뽑고 있는 것이라고만 알고 계셨으니까요.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1, P32>     


그날 밤 애보트 양이 베시에게 들려준 얘기를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아버지가 가난한 목사였다는 것. 어울리지 않는 짝이라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니가아버지와 결혼하였다는 것. 리드 외조부는 딸이 말을 안 듣자 화가 나서 돈 한 푼 주지 않고 딸과 절연하였다는 것. 결혼한 지 일 년밖에 안 되었을 때 아버지가 자기 교구에 있는 공장촌의 빈민들을 방문하러 갔다가 당시 유행하던 티푸스에 걸렸고 어머니 또한 아버지에게서 감염되어 두 사람이 모두 한 달 사이에 세상을 떴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 베시는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제인 양도 불쌍한 처지야.”

“그래요.” 하고 애보트가 받았다. “만약 저 아이가 마음씨도 곱고 귀엽게 생겼다면 처지에 동정이 갈 거예요. 하지만 저렇게 밉상이어서야 어디 정이 가야지요.”

“크게 정이 가진 않지요.” 하고 베시는 맞장구를 쳤다. 

“어쨌건, 조지아나 정도로 예쁘게 생겼다면 같은 처지라도 더 동정을 살 터인데.”

“그래요. 난 조지아나가 귀여워 죽겠어요!” 하고 열을 내며 애보트가 말했다. “정말 귀염둥이지 뭐예요! 긴 고수머리에 파란 눈, 그리고 고운 얼굴색, 정말 그려놓은 것 같아요! 베시, 오늘 저녁엔 녹인 치즈를 바른 토스트를 먹고 싶네요.”

“나도 그래요. 붉은 양파를 곁들여서. 자, 내려가 봅시다.”

두 사람은 방을 나갔다.   (P42-43)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처럼 딱한 것은 없단다. 특히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아이가 그렇다.” 하고 그는 말을 시작하였다. “못된 사람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아니?”

“지옥에 갑니다.” 내 입에서 단박에 나온 정통적인 답변이었다. 

“그러면, 지옥은 또 뭐냐? 말해 볼까?”

“불길이 타고 있는 구렁입니다.”

“그런 구렁에 빠져서 영원히 불타고 싶으냐?”

“싫어요.”

“그렇게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답을 하고 보니 마땅찮은 것이었다. “건강하게 지내서 죽지 말아야 합니다.”  (P54)     


“만약 내가 네 처지라면 난 그 선생을 미워할 거야. 그리고 아마 반항도 할 거야. 선생님이 회초리로 때리면 나는 그것을 빼앗아버릴 거야. 선생님 보는 앞에서 분질러버리고 말 거야.”

“설마 그러기까지 하려고. 하지만 만약 그런다면 브로클허스트 씨한테 학교에서 쫓겨나게 될 거야. 그러면 친척되는 분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니. 성급한 행동을 해서 네게 관계된 친척들에게 누를 끼치기보다는 자기만이 느끼는 고통을 꾹 참고 견디는 편이 훨씬 좋아. 게다가 성서에도 적혀 있지 않니? 악을 보답하기를 선으로 하라고.”

“그렇지만 매를 맞는다든가, 학생들이 잔뜩 있는 방 한 복판에서 벌을 선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야. 너는 상급생이고 난 훨씬 나이가 아래지만 나 같으면 못 견딜 것 같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경우엔 참고 견디어내는 것이 의무인 거야. 참고 견디어내는 것은 정해진 운명인데 견딜 수 없다고 투덜대는 것은 어리석고 허약한 소치인 거야.”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나는 이 인종(忍從)의 교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자기에게 벌을 과한 위인에게 표시하는 그녀의 관용은 이해할 수도 없었고 공명이 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헬렌 번스는 내게는 보이지 않는 빛으로 사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헬렌의 말이 옳고 내 생각이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P95-96)     

 

하지만 고생살이!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내가 이제 원하는 것은 어디 다른 곳에서 봉사하는 것이다 그만한 일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 이것쯤은 실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할 수 있어. 할 수 있고말고. 목적은 힘든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예리한 두뇌만 갖고 있다면. 이런 두뇌를 깨우쳐보려는 듯이 나는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쌀쌀한 밤이었다. 나는 숄로 어깨를 감싸고 열심히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냐?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 사람들 틈에 끼어 새 집에서 새 직업을. 이 이상의 것을 희구했댔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변화를 바랄 뿐이다. 모두들 어떤 방법으로 새 직업을 얻을까? 모두들 친구들한테 부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겐 친구가 없다. 친구들이 없는 사람도 이 세상엔 꽤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서둘러서 자기 스스로 원조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방법이란?’  (P153-154)     


여성은 대체로 평온한 존재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오빠나 동생들과 똑같이 자기의 능력과 노력을 발휘할 터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너무도 가혹한 속박. 너무나 완전한 침체에 괴로워한다는 점에선 여성도 남성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여성들이란 집안에 처박혀서 푸딩이나 만들고 양말이나 짜고 피아노나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의 소견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P198)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인간은 완전한 신에게만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힘을 사사로이 제 것인 체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힘 말이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상한 행동을 가리키며 ‘이것을 옳다고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힘 말입니다.”

“‘이것을 옳다고 할지어다.’ 바로 그 말이오. 아가씨가 말한 바로 그 말을 구하고 있던 참이오.”

“그럼. 그 행동이 아무쪼록 올바른 것이기를 바랍니다.”하고 일어서면서 나는 말하였다. (P251)     

인생의 모든 흐름이 소용돌이치고 왁자지껄해지고 물거품과 소음이 부서지는 곳으로 말이오. 길은 두 가지밖에 없소. 험한 바위 너설에 부딪혀 온통 바스러져 버리든가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나처럼 커다란 파도에 실려 보다 평온한 물길로 나서게 되든가.  (P259)     


'아름다움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사람의 눈 속에 있다‘는 말은 참으로 진리다. 로체스터 씨의 핏기 없는 올리브 색의 얼굴, 네모진 넓적한 이마, 굵직하고 짙은 눈썹, 움푹한 눈, 또렷한 이목구비, 굳게 다문 냉혹한 입. 한결같이 정력과 결단력과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세상 통념으로 보면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아름다움 이상의 것이었다. 나를 완전히 지배하고 내 감정을 송두리째 내 지배하에서 빼앗아가서 자기 지배하에 묶어두는 흥미와 힘으로 넘쳤다. 그때까지 그를 사랑하리라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다. 내가 내 마음속에 싹튼 사랑의 싹을 발견하고 그것을 뿌리 뽑으려 무던히도 애썼다는 것을 독자는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사랑의 싹이 새파랗고 힘차게 다시 솟아나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나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P317-318)     


예감이란 이상한 것이다. 공감이 또한 그렇고. 전조 역시 그렇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합해지면. 아직 인간의 정신이 해결의 열쇠를 발견치 못한 신비가 된다. 여태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결코 예감이란 것을 비웃지 않았다. 그것은 나 스스로가 이상한 예감을 가진 경험이 있었던 까닭이다. 공감이 존재함을 나는 믿는다. 예를 들자면 그것은 멀리 떨어져 있고 오래 떠나 있어 서로 만나지 못하고 또 아주 남남처럼 되어버린 친지들 사이에 생겨나는 것으로서, 그들이 서로 소격(疏隔)해 있지만 각자의 연원을 찾아 올라가보면 결국 그 근원은 하나라는 확증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용은 인간의 이해력을 혼란케 하는 것이다. 또 전조란 것은 아마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감에 불과할 것이다.  (P407)        

[내 삶의 주인]

그는 껄껄 웃고 두 손을 맞비볐다. “아아, 당신을 보고 듣고 하고 있으니 참 기분 좋군!”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여자는 좀 괴짠가? 신랄한가? 나는 이 조그마한 한 사람의 영국 아가씨를 영양(羚羊)처럼 부드러운 눈을 가지고 있고 극락의 천녀(天女)처럼 아름다운 터키 황제의 후궁들 전부하고도 바꾸지 않겠어!” 

터키 후궁과의 비유가 또 내 비위를 건드렸다. “전 터키 후궁의 대역(代役)같은 건 절대로 안 하겠어요. 그러니 절 그런 것과 똑같이는 보지 마세요. 만약 그런 종류의 여자가 좋으시거든 지체 마시고 이스탄불의 노예 시장으로 가세요. 그리고 여기서는 시원스럽게 쓰질 못해 애쓰시는 모양인 그 돈을 노예 대량 매입에나 쓰세요.”

“그러면 당신은 무얼 하겠소. 자네트? 내가 검은 눈을 가진 수많은 육체를 흥정을 하는 동안에 말이오.”

“노예가 된 사람들, 당신의 그 후궁의 여자들도 포함해서 말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자유를 설교하는 선교사가 되어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겠어요. 저는 거기 들어갈 허가를 받아가지고 여기저기서 반란을 선동하겠어요. 그리고 당신은 높은 양반이시긴 하지만, 순식간에 우리 친구들의 손으로 족쇄가 채워질 거예요. 그리고 저는 여태까지 어떤 전제군주도 쓴 적이 없을 만큼 관대한 인권 확인의 칙허장에 서명을 하실 때까지는 그 구속을 풀어드리지 않겠어요.”

“당신의 자비심에 나를 맡겨야겠군. 제인.”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2, P64-65>    

 

‘그렇게 상처 입고 타서 그을린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직 너희들의 내부에는 생명의 의식이 남아 있음에 틀림없다. 충실하고 진실한 뿌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면. 그러나 다시는 푸른 잎을 피울 수가 없으리라. 다시는 새들이 너희들의 가지 위에서 집 짓고 노래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쾌락과 사랑의 시절은 너희에게서 떠나갔다. 그러나 너희는 외롭지 않다. 너희는 썩어가면서도 서로 위로해 줄 친구가 있는 것이다.’   (P78)     


“그대는 이 여인을 아내로 삼겠느뇨?” 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 그의 입이 열렸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분명한 목소리가 말했다. 

“이 결혼식은 계속할 수 없습니다. 장애물이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목사는 고개를 들어 발언자를 쳐다보고는 말없이 서 있었다. 서기도 마찬가지였다. 발밑에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로체스터 씨의 몸이 약간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다시 단단히 발을 고쳐 디디고 나서 머리도 눈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계속해 주십시오.”

그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이 말을 하고 난 후 교회 안은 깊은 침묵에 잠겨버렸다. 얼마 안 있다 우드 씨가 말했다. 

“지금 주장에 대하여 조사를 하고 그 진위를 판명하기까지는 식을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이 예식은 더 진행을 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 등 뒤의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본인은 이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이 결혼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애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P102-103) 

    

"장애란 이전의 결혼이 존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로체스터 씨에게는 현재 살아 있는 아내가 있습니다.“

천둥소리를 듣고도 떤 적이 없는 내 신경은, 이 나지막한 말소리를 듣고 떨렸다. 나의 피는 여태까지 서릿발이나 불꽃에서도 느낀 적이 없던 격렬한 폭력을 이 말에서 느꼈다. 그러나 나는 침착했고 의식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나는 로체스터 씨를 바라보고, 그도 나를 쳐다보게 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한 바위로 변해 있었다.  (P104)     


그는 듣기에도 무서운 절규를 터뜨리며 광녀가 발작적으로 요동을 치는 가운데 그 일을 끝냈다. 그러고 나서 로체스터 씨는 구경꾼들을 돌아보았다. 그는 쓸쓸하고 쓰디쓴 웃음을 띠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바로 내 처올시다.” 그는 말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부부간의 포옹이며, 이것이 내 무료함을 달래주는 사랑의 행위올시다. 그리고 여기 있는 이 처녀야말로 내가 얻기를 원하고 있는 여인이오.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지금 지옥의 문턱에 엄숙하고 침착하게 서 있으면서 악마의 난동을 태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 여자가 말이오. 나는 그 처참한 스튜를 먹고 난 후의 입가심으로 이 여자를 원했던 거요. 우드 씨, 그리고 브리그스 씨. 이 차이를 보아주시오. 이 맑은 두 눈과 저 새빨간 눈알. 이 얼굴과 저 가면. 이 모습과 저 덩치를 좀 비교해 보란 말이오. 그러고 나서 나를 심판해 주시오. 복음을 전도하는 목사님과 법률을 지키는 분이여.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오.’라는 말을 잊지 마시오! 자 이제 돌아들 가시지요. 나는 이 귀중한 나의 보물을 감춰두어야겠소.”

우리는 모두 물러나왔다.  (P112-113)     


나는 그의 설교에 의해서, 보다 기분이 좋고 마음이 안정되고 머릿속이 계발되기는커녕 오히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맛보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들은 웅변은 실망이라는 침전물이 가라 앉아 있는 심연의 밑바닥으로부터, 그칠 줄 모르는 동경과 불안정한 갈망이라는 충격으로 뒤흔들리고 있는 심연의 밑바닥으로부터 뿜어나온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세인트 존 리버스가 순결하게 살아왔고 양심적이고 열정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지각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부서진 우상과 잃어버린 낙원에 대해 남모르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근래에는 될수 있는 대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건만, 내게 달라붙어 무자비하게 나를 괴롭히는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아직 하느님의 평화를 발견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P228-229)     


오늘 아침 시골 학교가 열린 것이다. 학생은 스무 명이었다. 그러나 글을 읽을 줄 하는 애가 셋 있었고 글을 쓰거나 산수를 할 줄 아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뜨개질 할 줄 아는 아이가 몇 있고 바느질을 할 줄 아는 아이가 두서넛 되었다. 애들은 이 지방 특유의 사투리를 썼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애들과 나는 서로의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몇몇 아이들은 버릇없고 난폭하고 다루기가 힘들뿐 아니라 무지했다. 그러나 나머지 애들은 양순하고 배우려는 의욕이 있고 나를 기쁘게 해주는 성질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남루한 옷차림의 농부의 자식들도 인간으로서는 좋은 가문의 자제 못지않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날 때 타고나는 훌륭한 소질이나 세련이나 지성이나 고운 마음씨의 싹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 못지않게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잊어서는 안 되었다. 나의 의무는 이러한 싹을 기르는 것이었다. 그 의무를 다하는데 나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P242)             


“하느님과 자연은 당신을 선교사의 아내로 만들려고 정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자연이 당신에게 주신 것은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신적인 재능입니다. 당신은 사랑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고 노동을 위해 생겨났습니다. 당신은 선교사의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작정입니다. 나의 아내가 되는 겁니다. 나는 당신을 요구합니다. 그건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전 합당치 않아요. 제겐 하느님의 소명이 없었어요.”    (P326)     

“....사랑이란 말 자체가 우리 사이에서는 불화의 씨예요. 만약에 정말 애정이 있거든 내놓아 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죠? 어떤 기분일까요? 제발. 오빠. 결혼 계획은 포기해 주세요. 잊어버려 주세요.”

“안 돼요. 이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한 계획이고. 나의 대목적(大目的)을 달성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재촉하지는 않겠어요. 내일 나는 케임브리지로 갑니다. 거기에는 작별 인사를 해두고 싶은 친구들이 많으니까요. 두 주쯤 집에 없게 될 겁니다. 그동안에 나의 청을 잘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만약에 당신이 거절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을 거절하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 하느님은 나라고 하는 수단을 통해서 숭고한 생애를 당신에게 열어주시려는 겁니다. 나의 아내로서만이 당신은 그리로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내 아내가 되기를 거절한다면, 그건 영원히 이기적인 안일과 불모의 어둠 속에 당신 자신을 가둬놓는 일입니다. 그런 경우, 신앙을 거부한 자들 중의 하나로 꼽히고, 이교도만도 못한 인간이 된다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말을 끝마쳤다. 나에게서 돌아서며 그는 한 번 더 ‘강을 바라보고, 언덕을 바라보았다.’  (P340)   

  

나는 그와의 싸움을 중지하고 그의 의지의 분류에 뛰어 들어 그의 존재의 심연 속으로 흘러 들어가, 거기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지난날 다른 남성에 의하여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음의 자유를 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에 의해 마음의 자유를 잃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나 이제나 나는 바보였다. 그때 굴복했더라면 그것은 신조의 과오였으리라. 그리고 이제 굴복한다면 판단의 과오가 될 것이었다. 시간이라고 하는 조용한 매개물을 통해 지난날의 위기를 돌아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그때의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했었다.   (P359)     


“저는 부자일 뿐만 아니라 독립해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저의 주인은 제 자신이에요.” 

“그럼 나와 함께 있어주겠다는 말이오?”

“네, 반대만 안 하신다면. 저는 당신의 이웃이 되고 간호부가 되고 가정부가 되겠어요. 당신이 쓸쓸하시니 말동무가 되어드리고, 책을 읽어드리고, 함께 산보하고, 곁에 앉아 있고, 보살펴드리고, 눈이 되고 손이 되어드리겠어요. 제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지 마세요. 제가 살아 있는 한 다시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어요.”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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