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1981년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1946년
1927년 미국에서는 2년 동안이나 타블로이드 신문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한 잡지 편집자가 자신의 아내와 그녀의 정부인 외판원에 의해 살해당한 이 사건은 세간의 이목을 모아, 법정 증언 등을 포함한 사건의 전말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사화되었다. 뉴욕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제임스 M. 케인은 이 사건을 접하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이 사건을 다루었던 타블로이드 신문처럼, 치정과 폭력과 성(性)이 뒤섞인 자극적인 이야기를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채 마치 한 편의 기사를 쓰듯 써 내려갔다. 케인에게 ‘타블로이드 살인 사건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한 이 소설은 ‘느와르 소설’ 장르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 년 전에. 미인 대회에서 우승했지. 디모인에 있는 고등학교 미인 대회에서. 거기 살았거든. 부상이 헐리우드 여행이었어. 내 사진을 찍어 대는 열다섯 명의 사내 녀석을 거느리고 여왕처럼 떠났어. 그런데 이 주 뒤 난 그 간이식당에 있었어.”
“돌아가지는 않았어?”
“사람들이 신나게 입방아 찧도록 해 주고 싶지 않았어.”
“영화에 출연했어?”
“스크린 테스트를 했어. 얼굴은 괜찮았어. 그런데 요즘은 말을 하잖아. 영화에서 말이야. 내가 말을 시작하니까. 카메라 앞에서 말이야, 내가 어떤 애인지 알아차리더라고. 나도 그랬고. 아이오와 디모인의 싸구려 계집애에게는 딱 원숭이 정도 만큼의 기회밖에 없었어. 아니, 원숭이보다 못하지. 어쨌든 원숭이는 웃길 수라도 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역이라곤 역겨운 것뿐이었어.”
“그런 다음엔?”
“그런 파티가 뭘 뜻하는지 알지?”
“알아.”
“그런 다음 그가 왔어. 그를 선택했고 그렇게 그가 나를 도와줬지. 그에게 눌어붙어 있을 작정이었어. 하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맙소사, 내가 작고 하얀 새처럼 보여?”
“차라리 지독한 고양이처럼 보이는데.”
“잘 봤어, 그렇지. 그게 당신 매력이야. 당신이라면 항상 속일 필요가 없으니까. 게다가 당신은 깨끗해. 개기름이 흐르지 않아. 프랭크, 그게 뭘 뜻하는지 알기나 해? 당신은 개기름이 흐르지 않는다고.”
“짐작할 수는 있어.”
“그렇지 않을걸. 그게 여자에게 뭘 뜻하는지 남자는 알 수 없어. 개기름이 흐르는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그가 건드릴 때마다 역겹고 구역질이 나지. 난 정말로 그렇게 지독한 고양이는 아니야, 프랭크. 그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뿐이지.”
“당신 뭘 하려는 거여? 날 놀리는 거야?”
“아, 알았어. 그럼, 난 지독한 고양이야. 하지만 내가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개기름이 흐르지 않는 사람하고라면 말이지.”
“코라, 나와 함께 달아나는 건 어때?”
“생각해 봤어. 많이 생각해 봤지.”
“저 그리스인을 버리고 날라 버리자. 그냥 날라 버리자.”
“어디로?”
“어디든지. 어디든지. 그게 어딘지 알아?”
“어디나. 우리가 선택하는 어디든지.”
“아니, 그렇지 않아. 그건 간이식당이 될 거야.”
“지금 간이식당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야. 길에 대해 얘기하는 거라고. 재미있어. 코라. 게다가 나보다 더 길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걸. 난 길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대해 훤해. 게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아. 그게 우리가 원하는게 아닌가? 그저 한 쌍의 방랑자가 되는 것. 우린 정말 방랑자잖아.” (P25-27)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코라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뒷자석으로 넘어왔고, 나는 앞으로 넘어갔다. 계기판 불빛으로 렌치를 살폈다. 렌치에 피 몇 방울이 튀어 있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 마개를 뽑아 피가 사라질 때까지 렌치에 부었다. 어찌나 부어 댔던지 와인이 닉의 몸까지 흘러갔다. 그런 다음 젖지 않은 닉의 옷자락으로 렌치를 닦아 뒷자리의 코라에게 넘겨줬다. 코라는 렌치를 좌석 밑에 놓고는 렌치를 닦은 닉의 옷 부분에 와인을 더 끼얹었다. 문에다 대고 병을 깨서 그의 몸 위에 놓았다. 그런 다음 차를 출발시켰다. 깨진 병 틈으로 쿨렁쿨렁 와인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P68)
“그 여자가 그리스인을 죽였다면, 그녀는 당신도 죽이려 했던 거잖아, 안 그래? 그녀가 그냥 빠져나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만약 그렇게 한다면 누군가 당신이 아주 웃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그런 문제에 있어 그녀가 그냥 빠져나가게 내버려 둔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풋내기인 거야. 그녀는 보험금 때문에 남편을 죽였어. 그리고 당신도 죽이려고 했고. 그렇다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 되지 않겠나, 안 그래?”
“그 여자가 그랬다면 내가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녀가 그랬는지 아닌지 모르잖아요.”
“당신에게 그걸 증명한다면, 당신은 고소해야지, 안 그래?” (P95-96)
“할 일이라곤 축전기를 설치하는 것뿐이야. 그러면 생맥주를 팔 수 있지. 병맥주보다 낫고 돈이 더 남아. 저번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예쁜 유리잔을 봐 뒀어. 길쭉하고 멋진 것들이지. 사람들이 술 따라서 마시기 좋아할 만한 거였어.”
“그래서 지금 축전기와 유리잔을 구해야 한다는 거지. 안 그래?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비어 가든 같은 건 ‘원하지’ 않아.”
“프랭크, 전에 뭔가 ‘되고’ 싶은 적 없었어?”
“내 말 듣고 이해 좀 해 봐. 난 이곳에서 떠나 버리고 싶어. 주위를 둘러볼 때마다 매번 빌어먹을 그리스인의 유령이 달려 드는게 보이지 않고, 꿈에 그의 메아리가 들리지 않고, 라디오에서 기타 소리가 나올 때 마다 매번 깜짝 놀라지 않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떠나야만 해. 내 말 듣고 있어? 여기서 나가야만 해. 아니면 돌아 버릴 거야.”
“내게 거짓말하고 있지?” (P134)
“그런데 왜 안 되지? 우리 잘하고 있잖아. 왜 여기서 살면 안 되지? 들어 봐, 프랭크. 당신이 날 알게 된 이래 계속 날 부랑자로 만들려고 했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할 거야. 얘기했지. 난 부랑자가 아니라고. 난 뭔가 ‘되고’ 싶어. 여기 살자. 우린 떠나지 않아. 맥주 판매 허가증을 얻자고. 우린 꽤 벌게 될 거야.” (P135)
“당신은 뭐가 더 나은가? 날 새킷에게 넘기려고 하지 않았어? 똑같은 거 아닌가?”
“그래.”
“그러면 비겼네. 다시 비겼네. 출발점으로 바로 돌아왔네.”
“아주 그렇지는 않아.”
“오, 아니, 우린 그래.” 그때 나는 조금 지쳤고,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야. 우리가 원하면 뭐든지 할 수 있지.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고 돈에 대해 웃어넘길 수도 있고 침대에 함께 있는 악마가 얼마나 신나는 녀석인지 야단법석 떨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야. 그 여자와 떠나려고 했어. 코라. 고양이를 잡으러 니카라과로 가고 있었다고. 그런데 떠나 버리지 않은 이유는 돌아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우린 서로 사슬로 묶여 있어. 코라. 우선 산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했지. 그게 아니었어. 산이 우리 위에 있었고, 그날 밤 이래로 산은 언제나 거기 있었어.”
“그게 당신이 돌아온 유일한 이유야?”
“아니, 그건 당신과 나 때문이야. 다른 사람은 없어. 당신을 사랑해. 코라. 하지만 당신이 사랑 안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야. 그건 미움이야.”
“그러면 날 미워해?”
“모르겠어. 하지만 우린 적어도 평생에 단 한 번, 진실을 말하고 있잖아. 그게 돌아온 이유의 일부야. 당신도 그걸 알아야 돼. 그리고 내가 여기 누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그것도 이유야. 이제 당신도 알고 있지.” (P160-161)
그 일로 난 걸려들었다. 이번엔 카츠가 우리 몫으로 얻어냈던 1만 달러, 우리가 번 돈, 가게의 권리증 등을 모두 차지했다. 날 위해 정말로 최선을 다했지만 처음부터 두들겨 맞았다. 새킷은 내가 미친 개이며, 시민의 안전을 위해 처치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부 다 추리해 냈다. 우리가 돈을 차지하려고 그리스인을 살해했으며, 그런 다음 내가 그녀와 결혼했고, 내가 그 돈을 전부 다 차지하려고 그녀를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멕시코 여행에 관해 코라가 알아내자 조금 서둘렀다는 것. 그게 다였다. 부검 보고서도 있었다. 그녀가 임신했다는 게 드러났고, 그는 그것도 나의 범행 동기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P168)
7호실에 자기 형을 살해한 녀석이 있다. 그는 자신이 살인한 게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이 했다고 말한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두 개의 자아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즉 그게 무의식이라고 말했다. 난 정말로 놀랐다. 정말로 내가 하고서 알지 못하는 건 아닐까? 맙소사 난 그걸 믿을 수 없다! 난 그러지 않았다! 그녀를 그렇게도 사랑했다. 분명히 얘기하겠는데, 그녀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 빌어먹을 놈의 무의식. 그걸 믿지 못하겠다. 그건 그저 판사를 바보로 만들려고 이 녀석이 생각해 낸 허튼소리일 뿐이다.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고 하는 것이다. 난 하지 않았고, 난 그걸 안다. 코라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녀에게 이 말을 꼭 해 줄 것이다.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