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염소의 축제>를 읽고

영화 <그때 그 사람들>(2005), <남산의 부장들>(2020)

by 노용헌

<염소의 축제>는 페루 출신의 스페인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의 2000년 발표된 장편소설이다. 1961년 5월 30일 도미니카 공화국의 한 고속도로에서 총성이 울려 퍼진다. 1930년부터 이어진 트루히요의 기나긴 독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소설 <염소의 축제>는 바로 이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도미니카 대통령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1891~1961)는 193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래 ‘후진국을 혼란과 무지와 야만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도미니카 공화국을 32년간 통치했고, ‘조국의 아버지’ ‘자선가 ’ ‘수령님’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무소불위의 지도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이라는 핑계로,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며 수많은 탄압을 자행했다. 그는 국민의 일상생활과 정신까지 완벽하게 지배하고자 했던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제목에 등장하는 ‘염소(el Chivo)’는 도미니카 국민이 트루히요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던 별명이다. 염소는 번식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악마주의의 육욕적 관점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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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토니오는 순진한 사람들과 바보들과 천치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인간의 허영심과 탐욕과 우둔함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착취하는 데 대가인 그 앞에 처음으로 굴복했고 패배했던 것이다. 긴 세월 동안 그는 트루히요와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최근 2년간 아마디토도 그랬다. 지금 하려는 행동을 그때 했다면, 이 나라와 델라 마사 가족은 그 많은 비극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타비토도 살아 있으리라.

그는 뒤에서 아마디토와 터키인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끔씩 임베르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토니오의 침묵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본래 말수가 적었다. 특히 타비토가 죽은 이후 그는 과묵한 사람에서 거의 말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동생의 죽음은 그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그는 염소를 죽이겠다는 생각 하나만을 품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P142)


그는 불과 1미터 거리에 있었다. 안토니오는 트루히요의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을 견디지 못해 쉴 새 없이 눈을 깜빡거렸다.

“사람을 죽여야만 할 때 내 손은 떨지 않네.”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통치한다는 것은 종종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네. 난 이 나라를 위해 수없이 그렇게 해야만 했지. 그러나 나는 신의를 존중하는 사람이네. 나한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을 절대 버리지 않아. 난 그를 죽이라고 지시하지 않았네. 그가 런던에 있을 때 루이스 베르나르디노를 죽인 사건 기억하나? 그때도 내가 손을 써서 감옥에 가지 않도록 했지. 그건 정치적 위험을 감수한 것이었네. 옥타비오의 죽음과 관련된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네. 자네와 자네 가족은 위원회 조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네.”

그는 뒤로 돌더니 천천히 조금 전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 왜 안토니오는 그를 죽이지 못했을까? 4년 반이 지난 지금도 그는 자기 자신에게 똑같이 묻고 있었다. 트루히요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극적인 사건에 비꼬는 말을 덧붙이는 것과 같았고,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하는 연극의 일종이었다. 독재정권은 바로 트루히요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런 감상적인 연극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그렇다면 안토니오는 그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단점을 가진 인간이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거기에 없었다. 그가 얼마 안 되는 오라시오 추종자들과 함께 독재자와 맞서 전투를 벌였을 때도 그는 여러 번 목숨을 건 행동을 했었다. 그것은 두려움보다 더 난해하고 딱히 뭐라고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마비 상태, 즉 결단력과 이성과 자유의지가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고음의 목소리와 위선자의 시선을 지녔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몸단장에 신경 쓰고 장식한 그 남자가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건, 친구건 적이건 모든 도미니카 사람들에게 주문을 걸 듯 행사하던 활동 불능 상태였다. 날조된 연극의 유일한 관객이었던 안토니오 역시 그 순간 마비 상태가 되어 그런 빤한 거짓말을 잠자코 듣기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죽이지 못했고, 국가의 역사가 되어버린 악마의 연회도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P157-158)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염소의 축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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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때 그 사람들>과 <남산의 부장들>은 동일한 사건, ‘김재규, 차지철 갈등’과 ‘박정희 암살’ 실화를 담은 영화다. 이 두 영화처럼 <염소의 축제>는 독재자의 말로(末路)를 보여준다. <그때 그 사람들>은 블랙코미디이고, <남산의 부장들>은 필름누아르에 가깝다. <그때 그 사람들>이 모든 인물을 희화화한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인물의 내밀한 심리 묘사에 보다 집중한다. 소설 <염소의 축제>를 읽다보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독재자의 최후는 총격에 의해 끝난 도미니카 공화국의 대통령인 트루히요와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박정희(1962~1979)의 두 인물들이 서로 점철(點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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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어요. 이 배은망덕한 나라를 위해. 염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이 나라 사람들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노력하고 싸웠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말했어요. 그는 하느님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모든 성인들과 우리의 성모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아니, 악마에게 말했는지도 몰라요. 울부짖으며 애원하고 있었어요. 왜 자기에게 그토록 많은 시련을 주느냐고 물었어요. 그가 짊어져야 했던 자식들의 십자가. 그를 죽이려고 했고 그가 평생을 통해 이루었던 일을 망가뜨리려는 음모들에 대해 늘어놓았어요. 그러나 그것을 불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는 살아 있는 적들을 어떻게 분쇄해야 할지 알고 있었어요. 젊었을 때부터 그렇게 해왔지요. 그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비열한 행위, 그가 방어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행동이었어요. 이제 왜 그랬는지 난 알아요. 수많은 처녀를 유린했던 그 빌어먹을 음경이 더 이상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그것이 그 거인을 울게 했던 거예요. 정말 웃기지 않아요?” (P360-361)


‘과거의 일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라고 우리니아는 생각한다. ‘여기에는 그 당시의 것들이 아직도 공중에 떠다니고 있어.’ (P366)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염소의 축제 2>


한국의 현대사인 10월 26일에 관한 소설은 김진명 장편소설 <10.2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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