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라쇼몽In The Woods> 1950년
영화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들 중, 라쇼몬과 덤불속으로 두 단편을 이어서 영화를 만들었다. 주 이야기는 덤불속의 인간들의 이기주의, 엇갈린 진술속에서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진실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무엇이 진실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라쇼몬]
비는, 라쇼몬을 감싸고 멀리서부터 솨아 하는 소리를 모아 왔다. 저녁 어둠이 점차 하늘을 가라앉히고 올려다본 문의 지붕은 비스듬하게 튀어나온 기와 끝으로 묵직하고 어둔 구름을 받치고 있었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릴 여유가 없다. 가리고 있다가는 담벼락 아래나 길바닥 위에서 굶어 죽을 뿐이다. 그리고 이 문 위로 실려 와 개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든지 가리지만 않는다면..... 하고 하인의 생각은 몇 번이나 똑같은 길을 오가던 끝에 마침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않는다면’ 이라는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국 ‘않는다면’에 머무를 따름이었다. 하인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에는 긍정하면서도 이 ‘않는다면’의 매듭을 짓기 위해서 당연히 그 뒤에 따르게 될 ‘도둑놈이 되는 수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용기를 내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P48-49)
그 머리카락이 한 올씩 뽑히는 데 따라 하인의 마음에서는 공포심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리고 동시에 노파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조금씩 솟구쳤다. 아니, ‘노파에 대한’이라고 하면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모든 악에 대한 반감이 시시각각 더 강해져만 갔던 것이다. 이때 누군가가 이 하인에게 조금 전 문 아래서 생각하고 있던, 굶어 죽을 것인가, 도둑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새삼 끄집어냈더라면, 아마도 하인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굶어 죽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그럴 정도로 이 남자가 악을 증오하는 마음은 노파가 바닥에 꽂아 둔 소나무 가지처럼 기세 좋게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인은 물론, 어째서 노파가 죽은 자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합리적으로는 그것을 선과 악 중 어느 쪽으로 정리해야 할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인에게 있어서 이 비 오는 밤에 라쇼몬 아래서 죽은 자의 머리카락을 뽑는다는 행위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용서할 수 없는 악이었다. 물론 하인은 조금 전까지 자신이 도둑이 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P51-52)
“나는 검비위사(檢非違使)에 속한 관리 같은 게 아냐. 그저 이 문 밑을 지나가던 나그네지. 그러니까 너를 포승으로 묶어다가 어떻게 하겠다는 둥 그런 소린 안 해. 단지 지금 이 문 위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만 나한테 이야기하면 돼.” (P53)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하인의 마음속에 어떤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까 문 아래 서 있을 때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용기였다. 또한 아까 이 문 위로 올라와 노파를 붙잡았을 때의 용기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용기이기도 했다. 하인은 굶어 죽을지 도둑이 될지에 대한 고민만 없앤 것이 아니었다. 그때 이 남자의 마음이 어땠는가 하면, 굶어 죽는다는 선택지는 거의 떠오르지조차 않을 정도로 의식 저 너머에 밀려나 있었다.
“진정, 그렇단 말이지?”
노파의 이야기가 끝나자 하인은 빈정대는 듯한 음성으로 못을 박았다. 그러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갑자기 여드름을 만지작대던 오른손을 뻗어 노파의 멱살을 움켜쥐며 물어뜯을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좀 벗겨 먹어도 원망할 건 없겠군. 나도 그렇게 안 하면 굶어 죽을 테니까 말이야.”
하인은 재빨리 노파의 옷을 벗겨 냈다. 그러고 나서 발을 붙잡고 매달리려던 노파를 거칠게 시체들 위로 걷어차 떨쳐 내버렸다. (P55)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타당한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동하라.”
-엠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
[덤불 속]
검비위사에게 대답한 나무꾼의 이야기
그렇습니다. 저 시신을 발견한 것은 제가 틀림없습죠. 저는 오늘 아침, 언제나처럼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그랬더니 산그늘 덤불 속에 저 시신이 있었습니다. 있었던 장소 말씀입니까? 야마시나 역로에서 네다섯 정쯤 떨어져 있을 겁니다. 대나무에 비쩍 마른 삼나무들이 섞여 있는, 인적이 드문 장소입죠.
시신은 연한 남색 옷에 도시에서들 쓰는 두건을 쓴 채로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P206)
검비위사에게 대답한 유랑 승녀의 이야기
저 죽은 사내와 어제 마주친 건 사실입니다. 어제.... 그러니까, 정오 무렵이었을 겁니다. 마주친 곳은 세키야마에서 야마시나 쪽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저 사내는 말에 탄 여자와 같이 세키야마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어요. 여자는 삿갓을 썼기 때문에 얼굴은 못 봤습니다. 본 거라곤 그저 하기가사네(萩重)같은 옷 색깔뿐입니다. (P207)
검비위사에게 대답한 방면(放免)의 이야기
제가 포박한 사내 말씀입니까? 그놈은 분명히 다조마루라는 악명 높은 도둑입니다. 다만 제가 붙잡았을 때에는 아마도 말에서 떨어졌는지, 아와타구치의 돌다리 위에서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시각요? 시각은 어젯밤 초경 무렵이었습죠. 언젠가 제가 잡을 번했다가 놓쳤을 때도 똑같이 이 감색 옷에 날밑 붙은 칼을 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 말고도 보시는 바와 같이 활 같은 걸 가지고 있는데요. 그렇습니까? 시체가 된 남자가 가지고 있던 것도.... 그럼 그 사람을 죽인 것은 이 다조마루가 틀림없습니다. (P208-209)
검비위사에게 대답한 노파의 이야기
네, 저 시체는 제 사위입니다. 하지만 교토 사람은 아닙니다. 와카사의 국부 소속 사무라이입니다. 가나자와 출신의 다케히로라고 하고, 나이는 스물여섯입니다. 아뇨,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원한 같은 거 살 리가 없습니다. (P209)
다조마루의 자백
저 사내를 죽인 것은 납니다. 하지만 여자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디로 갔느냐? 그건 나도 모릅니다. 잠깐, 좀 기다리세요. 아무리 고문을 해도 모르는 걸 불 수는 없잖습니까. 게다가 나도 이쯤 되면 비겁하게 딴소리는 안 할 생각입니다.
나는 어제 정오 조금 지나서 저 부부와 마주쳤습니다. 그때 바람이 부는 바람에 삿갓에 드리운 천이 날려서 얼핏 여자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주 살짝, 보였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이미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어쩌면 그게 이유 중 하나였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 여자의 얼굴이 보살처럼 보였던 겁니다. 나는 그 순간 사내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여자를 빼앗자고 결심했습니다. (P210-211)
사내의 목숨을 끊지 않고, 그렇습니다. 나는 그때까지도 사내를 죽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엎드려 울고 있는 여자를 뒤로하고 덤불 바깥으로 도망치려 하는데 여자가 갑자기 내 팔에 미친 듯이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띄엄띄엄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당신이 죽든지 남편이 죽든지 어느 한쪽이 죽어 달라, 두 사내에게 수치를 당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괴롭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중 어느 쪽이든 살아남은 사내를 따르겠다. 그렇게 헉헉대며 말하는 겁니다. 그 순간 사내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격렬하게 치밀었습니다.(음울한 흥분). (P213)
기요미즈데라(淸水寺)에 온 여자의 참회
그 연한 감색 옷을 입은 사내는 저를 욕보이고 나더니 묶여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비웃는 듯한 웃음을 날렸습니다. 남편은 얼마나 원통했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을 쳐 봐야 온몸을 감고 있는 밧줄은 한층 더 몸을 바짝바짝 조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엉겁결에 남편 곁으로 쓰러지듯 달려갔습니다. 아뇨, 다가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내는 순식간에 저를 넘어 뜨렸습니다. (P215-216)
“여보. 이렇게 된 이상 당신과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대로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죽어 주세요. 당신은 제 부끄러운 꼴을 보셨습니다. 저는 이대로 당신 혼자 남겨 둘 수는 없습니다.”
저는 죽을힘을 다해 거기까지 말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저는 찢어질 듯한 가슴을 억누르면서 남편의 칼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도둑놈에게 빼앗긴 건지 칼은 물론이고 화살조차 덤불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단도만은 제 발밑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단도를 치켜들고 한번 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목숨을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저도 바로 가겠습니다.” (P216-217)
무녀의 입을 빌린 혼백의 이야기
나는 간신히 삼나무 밑동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일으켰다. 내 앞에는 아내가 떨어뜨리고 간 단도가 저 혼자 반짝이고 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단숨에 내 가슴에 박아 넣었다. 뭔가 비릿한 덩어리가 입에서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고통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가슴이 차가워지자 한층 더 주변이 괴괴해지고 말았다. 아, 어찌 이리도 고요하단 말인가. 이 산기슭 덤불에는 작은 새 한 마리 지저귀지 않는다. 오직 삼나무와 대나무 가지 끝에 쓸쓸한 햇살만이 감돌고 있다. 햇살이, 그것도 점점 엷어져 간다. 어느새 삼나무도 대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거기 쓰러진 채 깊은 정적에 둘러싸여 있다.
그때 누군가 살금살금 내 곁으로 다가오는 자가 있다. 나는 그쪽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어느새 흐린 어둠이 자욱하다. 누군가, 그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가만히 내 가슴의 단도를 뽑았다. 동시에 내 입속에는 다시 한 번 피가 넘쳐흐른다. 나는 그로써 영원히 중유(中有)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P220-221)
영화 <라쇼몽>은 이처럼 엇갈리는 진술 속에는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담겨있다. 좀처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이때, 실은 그 현장을 목격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나무꾼이다. 그는 마사코가 싸우기 싫어하는 두 남자를 부추겨서 결투를 붙여놓고 도망쳤고, 남은 두 남자는 비겁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개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나무꾼이 이야기를 마치자 승려와 나무꾼 모두 지옥 같은 인간 세상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지만, 청자는 '그런 그들에게 인간사란 다 그런 것'이라며 비웃는다. 그때 버려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청자는 아이는 버려둔 채 아이에게 둘러져 있던 비단옷을 가져가려 한다. 이것을 본 나무꾼은 청자를 이기적이라며 비난하지만, 이를 들은 청자가 이야기 속에서 모두가 잊고 있었던 단검의 행방을 들어 오히려 나무꾼의 도덕성을 힐난한다. 부인이 사용했던 단검은 결국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것을 나무꾼이 가져갔던 것. 즉, 나무꾼은 사무라이가 죽고 부인과 도적이 그 자리를 떠났을 때 그곳으로 가서 몰래 단검을 가져왔던 것이다.
1951년 베니스 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전 세계에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플래시백이라는 영화 기법을 캐릭터의 주관적인 스토리를 들려주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BBC 선정 역대 최고의 외국 영화에서 4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1위 역시 구로사와 감독의 작품인 7인의 사무라이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해진다. 이 영화는 그러한,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
- 구로사와 아키라의 연출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