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요한 돈강> 2006년
<고요한 돈강>(1957), <고요한 돈강>(1931)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에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비교적 평등했던 우크라이나 카자크 집단에 계층분화가 극심해진다. 카자크의 상층부는 러시아 귀족과 지주로 변신해 부를 축적한다. 반면 하층집단은 농노들과 뒤섞이면서 권리가 하락하고 빈곤상태에 빠진다. 그렇게 자유민의 정체성을 상당 부분 잃어가던 카자크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벌어진 적백내전의 한복판으로 떨어진다. 카자크 상류층은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혁명세력인 ‘백군’에 가담했고, 무산계급으로 전락한 하류층은 혁명에 동참하는 ‘적군’으로 참전한다. 카자크 간의 전쟁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벌어진다.
[1]
가래로도 일구지 않았네, 그 이름도 드높은 우리의 땅은......
이름높은 이 땅은 말발굽으로 일구어지고
이름높은 이 땅에 뿌려진 것은 카자흐 머리
고요한 돈 강을 수놓는 것이 과부라면 아버지인 돈 강을 메우고 피는 건 고아들
아, 돈 강 물결은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로 넘쳐나네
오, 우리들 아버지 고요한 돈 강
오, 고요한 돈 강 어이하여 흐린 물결 흐려서야 흐르는가?
아, 고요한 돈 강 어이하여 물결 흐림 없이 흐를 수 없는 것인가!
우리 돈 강 물결 밑바닥에서 차가운 맑은 물이 솟아나는데
우리 돈 강 강물에 사는 은빛 물고기들이 물을 흐려 놓네
<카자흐 노래> (P13)
"얘, 아가야. 우리는 시시덕거리거나 늦잠을 자게 하기 위해 너를 데리고 온 것이 아니다. 자, 가서 우유를 짜 오너라. 그게 끝나면 페치카에 아침 식사를 얹어야 한다. 난 이제 늙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구나. 이제부터는 네가 모든 일을 처리해 줘야 되겠어. 그게 네 역할이야.“
그날 스테판은 또 스테판대로 어떤 꿍꿍이속이 있어서, 어린 아내를 헛간으로 끌고 가 심하게 때렸다. 때릴 때 배와 가슴과 등을 때려, 상처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했다. 그러고는 그날부터 이웃 처녀를 건드리거나 바람난 과부를 꾀어내느라 거의 밤마다 집을 비웠다.
1년 반쯤 지나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그녀는 그런 참혹한 학대를 받았다. 아이가 태어나자 스테판도 다소 기가 꺾였으나, 부부 사이는 냉담해져서 그는 집에서 밤을 지내는 일이 여전히 드물었다.
가축이 많은 큰 집은 아크시냐를 늘 일에 치이게 만들었다. 스테판은 빈둥거리며 제대로 일하지 않았다. 머리를 깨끗이 빗고는 친구들을 찾아가 담배를 피우거나 노름을 하거나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지껄여댔다. 그래서 가축은 아크시냐가 돌봐야 했고 집안일도 그녀가 맡아서 해야 했다. 시어머니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금만 힘겹게 일한 뒤에는 반드시 드러누워서 핏기 잃은 입술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고는, 고통 때문에 험해진 눈으로 천장을 노려보며 공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럴 때에는 커다란 검은 점이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 땀이 폭포처럼 흐르고, 눈에 눈물이 가득 괴어서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아크시냐는 일하다 말고 한구석에 몸을 숨긴 채, 공포와 연민이 뒤섞인 눈길로 시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P54-55)
밀은 뾰족한 초록빛 싹이 돋고 쑥쑥 자라 한 달 반쯤 지나면 떼까마귀가 몸을 숨겨도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된다. 대지에서 물을 빨아올려 이삭이 달리고 알맹이가 굵어져 향기롭고 달콤한 즙이 가득 채워진다. 그리고 꽃이 피기 시작하여 황금빛 꽃가루가 이삭을 둘러싼다. 주인이 들에 나와 바라보면 감출길 없는 기쁨이 넘쳐난다. 그러면 어디에선가 가축 무리가 밀밭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면서 무거운 이삭을 흙 속에 짓밟아 버린다. 짓밟힌 밀이 둥글게 흔적을 남기며 쓰러져 있는 곳은 보기에도 안타깝다.
아크시냐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황금빛으로 막 피어난 감정의 꽃을 그리고리가 억세게 짓밟아 버렸다. 갈가리 찢고 짓밟고 -- 그리고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멜레호프네 해바라기 밭에서 나온 뒤로 아크시냐의 마음 속은 마치 추수가 끝난 타작마당처럼 텅 비고 거칠어져 있었다. (P120)
“소러시아 놈들을 혼내 준 거요.”
외팔이 알렉세이가 점잖게 대답하고는 뺨과 눈을 찌푸렸다.
“어째서 혼내 준 거지요?”
“차례 때문이지요. 남의 앞에 끼어들지 말라고.”
포드코바가 앞으로 나가서 코피를 닦아 내며 설명했다.
“놈들에게 버릇을 가르쳐 준 거요!”
“어이, 뒤쫓아가지 않으면 벌판에다 불을 지를지도 몰라!”
“모두 놀라긴 했지만, 설마 불을 지르지는 않겠지?”
“그놈들, 화가 났으니 틀림없이 불을 지를 거야.”
“소러시아 녀석들은 성미가 몹시 급하니까.”
아포니카 오제로프가 콧방귀를 뀌었다.
낯선 남자는 그쪽으로 모자를 흔들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포니카는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로, 들쭉날쭉한 이 사이로 침을 탁 뱉어 그 침이 날아가는 쪽을 쳐다보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나는 카자흐요, 그런데 당신은 집시오?”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인이오.”
“바보같은 소리!”
아포니카는 또렷하게 말했다.
“카자흐는 러시아인에서 나왔습니다. 그건 알고 있겠지요?”
“그럼,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가르쳐 주지, 카자흐는 카자흐에서 나온 거야.”
“아니, 옛날에 농노들이 지주로부터 달아나 돈 강 언저리에 정착한 겁니다. 그들이 카자흐로 불리게 되었지요.”
“이봐, 당신은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게 좋아.” (P175)
오랜 예부터의 습관으로, 밀레로보로 가는 길을 혼자서 마차를 몰고 가다가 도중에 소러시아인들을 만나도 카자흐인은 결코 길을 양보하지 않았다. 니지네 야브로노프스키 마을 끝에서 밀레로보 앞까지 75킬로미터쯤 되는 사이에 소러시아인 마을이 죽 이어져 있었다. 비록 소러시아인들이 몰려들어 그를 죽이더라도 그러했다. 그러므로 대여섯 대 줄지어 함께 읍으로 갈 때에는 벌판 가운데에서 소러시아인들을 만나면 싸움을 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야, 소러시아 놈들! 길을 비켜! 카자흐 땅에 살면서도 길을 양보하기 싫다는 거냐, 망할 자식들!”
그러므로 파라몬 창고로 밀을 운반하는 소러시아인들에게는 목숨을 건 작업이었다. 달리 아무 까닭도 없이 그저 ‘소러시아인이다, 소러시아인은 때려 줘야 한다’고 해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P176-177)
앞머리를 꼿꼿이 든 크류티코프의 얼굴은 신문이나 잡지에 끊임없이 실렸고, 크류니코프의 수중에는 담배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니제고로드의 장사꾼들은 그에게 황금으로 만든 칼을 선사했다.
폰랜넨칸프 장군은 아스타호프가 죽인 독일 장교에게서 벗겨온 군복을 커다란 합판에 핀으로 고정시켜서, 그것을 받쳐 든 부관과 크류니코프를 자동차에 동승시키고는 전장으로 막 나가는 군대의 대열 앞을 지나가며 불을 토하는 듯한 연설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떠했던가? -- 자신과 같은 인간이 적병들을 쓰러뜨리고,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들이 죽음의 전쟁터에서 맞부딪치고, 서로가 동물적인 공포에 싸인 채 서로 베고, 무턱대고 서로 때려서 자신도 다치고 말도 쓰러지고, 그리고 누군가를 쏘아죽인 총 소리에 놀라서 이리저리 도망치고, 정신적으로 일그러져 서로 흩어져 갔던 것이다. 그것이 위대한 훈공이라고 불려진 것이었다. (P359-360)
페트로는 명령조로 말했지만, 동생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양심에 가책을 받아 못 견디겠어. 실은 레시뉴프 근처의 싸움에서 한 놈을 창으로 찔러 죽였어. 미친 듯이 말이야......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을 베어 죽인 걸까?”
“그래서?”
“결국 이유도 없이 한 인간을 죽인 거야. 그리고 그 새끼 때문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어. 밤마다 꿈에 보여. 내가 나쁜 건가?”
“네가 아직 심한 고생을 안 해 봤기 때문이야. 얼마 안 있으면 예사롭게 될 거다.” (P365)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속에 맞선 두 군대 사이에 있는 일선--마치 삶과 죽음을 나누는 듯한, 눈에 보이지 않는 일선에 대해 쓴 장면이 있다. 니콜라이 로스토프가 소속한 기병대가 돌격해 갈 때 로스토프가 머릿속에서 이 일선을 규정짓는 것이다. 오늘은 그 소설의 대목이 유난히 또렷하게 머리에 떠올랐다. 왜냐하면 오늘 새벽녘 우리는 독일 용기병을 습격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부터 그들 부대는 교묘한 포병의 엄호 아래 아군 보병을 압박해 왔다. 나는 아군 병사들이 --제241 및 제273 보병연대로 생각되는데-- 대열이 엉망이 되어 퇴각해 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포병의 엄호도 없이 2개 연대 보병만으로 돌격해 갔다가, 적의 포화를 맞고 3분의 1에 가까운 병력을 잃어버리는 실패를 맛보았으므로 사기가 뚝 떨어져 있었다. 우리 보병 부대는 독일 용기병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예비대로 숲 속에 대기하고 있던 우리 연대가 출동하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분명히 그랬다. 새벽 3시에 투이시비챠 마을을 떠났다. 새벽녘의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송진 냄새와 귀리 냄새가 강하게 풍겨 왔다. 숲 뒤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보리밭 안을 나아갔다. 말들은 콧김을 뿜고, 귀리 잎에 내린 이슬을 발굽으로 차서 떨어뜨리며 갔다. (P384)
“무엇 때문에 우리는 전쟁을 하는 거지?”
“모두가 하니까 했을 뿐이지.”
“좀더 가슴에 와 닿을 만한 얘기를 해 봐. 가슴에 와 닿을 만한 것을.”
“그렇게 성가시게 굴지 마라.”
“무슨 소리야? 넌 바보구나! 이 문제는 분명하게 해 두어야 해. 우리는 결국 부르주아를 위해 전쟁을 하는 거야. 알겠나? 그 부르주아란 무엇인가 하면 삼밭에 살고 있는 새란 말이야.”
그는 스리고리가 잘 알 수 없는 것을 설명하면서, 말 속에 후추처럼 톡 쏘는 신랄한 욕설을 간간이 섞었다.
“그렇게 떠들지 마라! 네가 쓰는 우크라이나 말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
그리고리는 상대의 말을 가로막았다.
“어쩔 수 없군. 자기도 우크라이나 사람인 주제에 어째서 알아듣지를 못한다는 거지?”
“좀 간단하게 말해 봐.”
“나는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게 아니야. 너는 황제를 위해서라느니 어쩌느니 하는데, 도대체 황제가 뭐야? 황제는 주정꾼이고 황후는 암탉이잖아? 나리들은 전쟁으로 돈을 실컷 벌지만 우린 뭐야, 그저 목을 죌 뿐이야. 그렇지 않아? 이를테면 공장은 달콤한 국물을 빨아먹지만, 병정은 이나 잡고 있어. 공장주는 여자를 안고 있지만 노동자는 벌거숭이야. 결국 그런 식이라고. 카자흐는 군대에 내보내지고 있어. 그러고는 나무 십자가 하나 서는 게 고작이지.”
그는 우크라이나 말로 말했으나 흥분하자 자꾸 러시아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그는 욕설을 섞어 가며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하루하루 그리고리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진실을 불어넣어 주었다. 전쟁이 일어난 진짜 원인을 설명해 주고, 러시아 정부의 태도에 비난과 조소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리는 거기에 반대하려고 했지만 가란쟈는 아주 간단한 질문으로 그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그러면 그리고리도 별수없이 거기에 동의하게 되었다. (P462)
“그렇지! 낡은 바지를 갈아입는 것처럼 정부를 바꿔 버리는 거야. 나리들의 양가죽 외투를 벗기고 코빼기에 주먹맛을 보여 주는 거야. 지금까지 백성들을 실컷 이용해 왔으니까.”
“그럼 새 정부가 생기면 전쟁은 어떻게 되지? 역시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닌가? 우리가 아니더라도 우리 자식이나 손자가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걸 아주 없애 버릴 수 있겠나!”
“그건 분명히 그래. 전쟁은 옛날부터 있었고, 온 세계 국가들이 지금처럼 어리석은 짓을 하면 언제까지 가도 전쟁은 그치지 않아. 하지만 만일 모든 국가에 노동자의 정부가 서면 전쟁은 없어지지. 그러지 않고는 안 돼. 지금의 정부 따위는 하루빨리 관 속에 처넣어 버리는 거다! 빨리 그렇게 해야 돼! 독일에도 프랑스에도, 모든 곳에 노동자와 농민의 정부가 선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싸울 일이 뭐 있겠나? 국가와 국가 사이의 싸움은 없어져 버리지. 온 세계가 하나가 되어 평화롭게 살게 되는 거야. 정말로!” (P464)
그러더니 그는 레닌의 말을 읽었다.
--현대의 군대를 보자. 거기에는 조직이라는 하나의 훌륭한 전형(典型)이 있다. 이 조직이 훌륭하다는 이유는, 그것이 탄력성이 풍부한 동시에 수백만 명의 인간에게 통일된 의지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그들 수백만 명은 나라 안 곳곳에 흩어져서 자기 집에 있지만, 내일 동원 명령이 내려지면 그들은 정해진 장소로 모여들 것이다. 오늘 그들은 참호 속에서 꼼짝 않고 있지만, 내일은 다른 대형을 취하고 돌격할 것이다. 오늘 그들은 적의 총탄이나 포탄에 숨어 기적을 나타내지만, 내일은 폭로전(暴露戰)에서 기적을 나타낼 것이다. 오늘 그들의 최전선 부대는 지하에 지뢰를 설치하지만, 내일은 비행기의 지시를 받고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할 것이다. 통일된 의지에 의해서 움직이는 수백만의 인간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그 결합과 행동의 형태를 바꾸고, 활동 장소나 방법을 바꾸고, 변화하는 상황이나 전투의 요구에 따라 용구나 병기를 바꿀 때, 그것을 조직이라 부른다. 부르주아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오늘은 혁명적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오늘은 혁명적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 사이의 동요, 그들의 적극성을 높이는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은 당신에게 투표용지가 교부된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감옥을 두려워하여 안락의자에 붙어 있는 자들을 의회로, 안락한 좌석으로 보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투표용지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조직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일은 당신한테서 투표용지가 회수되고, 당신에게 총과 훌륭한 장비가 갖추어진 속사포 따위가 주어질 것이다. 그때에는 그 죽음과 파괴의 도구를 받는 것이다. 전쟁을 두려워하여 우는 소리를 늘어놓는 감상적인 겁쟁이들에게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는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이룩하기 위해 쇠와 불로써 타도해야 할 자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그리고 만일 대중 사이에 증오와 절망이 있고 혁명적 상황이 존재한다면, 그때에는 새로운 조직을 형성하고, 죽음과 파괴에 필요한 무기를 자국(自國)의 정부와 부르주아를 향해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하라. (P486-487)
“그건 미시카 코셰보이가 산울타리 위에서 수탉이 시각을 알리는 것과 같다고 여기저기 떠들어 대고 있는 것과 같은 거야. 혁명이라는 것은 별 의미는 없어. 좀 엉터리 같은 거지. 알겠나. 우리들 카자흐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의 권력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이야. 니콜라이 니콜라에비치 같이 말이야. 우리에게는 강력한 차르가 필요해. 또한 우리는 농민들과 함께 걸어가는 게 아니야. 거위와 돼지는 친구가 되지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농민이란 토지를 얻을 일만 생각하고, 또한 노동자들은 임금을 올려 받을 것만 바라고 있거든. 그러니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이 주어지겠나? 우리는 토지를 가지고 있거든! 그 밖에 무엇이 또 필요하단 말인가? 열고 보면 텅 빈 자루겠지. 어쨌든 저런 차르는 안 돼. 분명히 말하는 게 좋겠지. 아버지 쪽은 그래도 강력했었는데, 이번 차르는 분명 얼뜨기 짓을 해가지고 1905년 때처럼 혁명이 일어나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지게 될 거야. 그렇게 되어 보게, 그 불똥이 우리에게 떨어질 테니, 묵은 원한이 확 타올라서 우리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해 주는 일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구. 어쨌든 귀를 잘 세우고 살펴야 해.”
“자네 생각은 언제나 삐딱해.”
그리고리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P531)
'나도 그 애에게는 남이다. 육친의 정을 그 애가 느끼는 것은 돈이 필요할 때뿐이지.... 못된 계집애다, 정부(情夫)를 가지고 있다니.... 어릴 적에는 잿빛 머리칼의 귀여운 애였는데..... 아, 아! 모든 게 왜 이렇게 달라지는 걸까!...... 노망 부릴 나이도 아닌데 머리가 흐리멍덩해져 버렸어. 미래에는 행복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왔는데, 이제 와 보니 들판에 서 있는 조그마한 예배당 같이 고독하다..... 더러운 손으로 돈 깨나 벌었지. 청렴결백해서는 돈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었어!...... 속임수도 쓰고, 구두쇠 짓도 해왔다. 그런데 이젠 혁명이 닥친 것이다. 내일은 고용했던 자들에게 내쫓기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게 참혹하게 되었다!..... 또한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블라디미르란 녀석은 멍텅구리이고...... 그러니 끙끙 앓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이젠 달리 도리가 없지.....‘ (P561)
“병사 여러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또다시 미궁에 빠졌습니다. 놈들은 우리들을 속이고 있는 겁니다! 혁명이 일어나서 모든 인민에게 자유가 주어졌다면 곧 전쟁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민도 우리도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말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옳소!” (P572)
“함락했다 해도 우리는 당신들과 행동을 같이 할 수 없소! 우리는 동포끼리 싸우고 싶지 않소. 동족을 적으로 삼고 싸우지 않겠다는 거요! 서로 물고 뜯으라는 거요? 그런 짓은 싫소! 이 세상에서 싸움질을 없애야 해요! 군부에 의해 권력이 세워진다는 것은 싫단 말이오. 이유는 그것뿐이오!”
카자흐들은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고함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P636)
“알렉세이, 인생이란 불가사의한 거야..... 인간이란 마치 장님처럼 손으로 더듬으면서 걸어가다가 만나고 헤어지고 때로는 서로 싸우고 짓밟는 거야. 이렇게 죽음 가까이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처럼 부질없는 짓을 해서 대체 어쩌자는 건지 회의가 생긴단 말이야. 내 생각으로는 인간처럼 무서운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거 같아. 아무리 버둥거려야 밑바닥까지는 알 수 없으니까.... 이렇게 지금 자네하고 함께 있지만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난 알 수 없거든. 자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혀 짐작이 안 가. 자네 역시 마찬가지야. 나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지 않는가.... 지금 내가 자네를 때려죽이려 하고 있는데도 자넨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채 건빵을 주니 말일세.... 사람이란 자신의 일조차 모르는 수가 태반이라고, 난 올 여름에 입원을 했었는데, 거기서 옆 침대에 모스크바 출신의 한 병사가 있었어. 이 녀석이 어찌나 호기심이 많던지, 카자흐는 어떤 생활을 하느냐고 미주알고주알 캐묻는 걸세. 놈들은 카자흐란 채찍만 갖고 사는 줄 알고 있어. 카자흐는 야만족으로 심장 대신 유리병이라도 들어 있는 줄 알고 있어. 우리도 똑같은 인간이 아닌가 말이야. 여자가 반하기도 하고, 아가씨를 귀여워할 줄도 알고, 남이 잘 되는 걸 보면 배아프기도 하고.... 알료샤, 자넨 어떤가? 난 말이야. 살고 싶어 미치겠어. 이 세상에 예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옥죄는 것 같다구! 어째서 그것들을 내 수중에 넣을 수가 없는 거지? 이걸 생각하면 억울해서 악을 쓰고 싶어져! 난 여자를 무척 좋아하거든. 한 여자 한 여자를 끔찍이 귀여워해 줄 자신이 있다구.... 예쁜 여자는 모조리 손에 넣고 싶어..... 그렇지만 세상 일은 그게 아니지. 죽을 때까지 오직 한 여자만 차지하고 살게 돼 있으니..... 쓸데없는 얘기라고 생각하나? 하긴 전쟁할 생각을 해야지?” (P675-676)
[2]
“그렇다면 독립할 경우, 대체 어떤 이익이 돌아온다는 건가?”
“직접적인 이익이 있지, 첫째로 정치적인 예속에서 벗어나는 거야. 러시아의 차르로 해서 잃은 우리의 질서를 회복하는 일일세. 이 지방으로 이주해 온 모든 이민족들을 추방해서 다른 지방으로 이주시키는 거야. 그리고 10년 동안 외국에서 기계를 수입해다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부를 10배 이상 늘려야 해. 이 토지는 우리들 거야. 우리 조상의 피로, 우리 조상의 뼈로 살이 찐 토지야. 그런데도 우린 러시아에 정복당해 400년 동안 러시아의 이익을 지켜 줌으로 써 자신의 것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어. 우린 바다로 나가는 출구도 갖고 있네. 우린 매우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군대를 갖게 될 걸세.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라 하더라도 우리의 독립을 막을 순 없을 걸세!”
중키에 날씬하고 어깨가 넓은 이즈바린은 전형적인 카자흐였다. (P690-691)
노보체르카스크는 볼셰비키 혁명을 피하려던 모든 피난민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난날 붕괴한 러시아군의 고위층이었던 거물급 장군들은 반동적인 돈 카자흐들을 주축으로, 그곳을 발판으로 소비에트화한 러시아에 대해 공세를 피려고 돈 하류 지대로 잇따라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P698)
사람들은 정열에 불타는 그의 연설 첫마디에서부터 신념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카자흐를 러시아의 노동계급과 농민에 맞서 싸우게 충동질하는 카레진의 배신적 정책에 대해, 카자흐와 노동자의 공동 이익과 손해, 그리고 카자흐 반혁명세력에 대항하려는 볼셰비키가 추구하는 목적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노동자 카자흐 제군에게 형제의 손을 뻗치려 합니다. 그리고 백위군 도당과의 투쟁에서 우리는 카자흐 귀환병 제군에게서 충실한 동맹자를 발견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카레진의 비호를 받아 온 부르주아 병아리들과의 싸움에 있어서도 우리의 힘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몇 세기에 걸쳐 근로자 대중을 노예화한 놈들과의 전투에도 우리는 손을 맞잡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나팔을 부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비, 빌어먹을! 좋아, 죽여 없앨 테다!” (P728)
연단에서는 포드쵸르코프가 얘기하고 있었다.
“제군, 나는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볼셰비키도 아니오. 내가 목표로 삼는 것은 오직 하나의 정의일 뿐입니다. 즉 모든 근로자들의 행복과 형제의 결합인데 그것은 그 어떤 압박도 받지 않는 것이어야 하고 부농, 즉 부르주아 및 부자를 없애야 하며 모두가 자유롭고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볼셰비키는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또한 그 때문에 투쟁하고 있습니다. 볼셰비키가 -- 그것은 노동자들이며 우리 카자흐와 마찬가지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노동자인 볼셰비키들은 우리보다 의식이 확고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무지하지만 그들은 도시에서 우리보다도 생활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나는 볼셰비키의 당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볼셰비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734)
“흔히 보아 온 일이지만, 카자흐들이 아타만 부대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땐 말일세, 먼저 트렁크와 자신의 소지품과 말 따위를 열차에 싣는 일부터 하게 되지, 열차가 떠나서 보로네지 근처까지 가면 거기서부터 돈 강을 건너게 되는데, 그때 기관사는 속력을 늦춰 열차를 서행시키는 걸세..... 정말로 느리게 느리게 나가지.....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니까. 마침내 열차가 다리에 이르면-- 그 소동이란 말도 말게! 카자흐들은 마치 미치광이처럼 떠들어 대는 거야, ‘돈 강이다! 우리들의 돈! 고요한 돈 강이야! 우리의 친아버지, 우리를 길러 준 어버이여, 오라!’ 그러면서 창가에 달려들어 철교 난간 위로 모자, 외투, 바지, 각반, 셔츠, 그 밖의 온갖 것을 강 속으로 던지는 걸세.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선물을 돈 강에다 바친다는 뜻이지. 강 위를 보면 아타만 병사의 모자가 마치 백조나 꽃처럼 둥둥 떠내려간다네. 대체로 그런 식이라구. 워낙 오래 전부터 그런 관습이 있어 왔거든.”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말이군!” (P736)
연대가 휴식 없는 전투에 들어가고 이어졌다. 끊기는 꼬불꼬불한 전선이 나타나게 되고서부터, 그리고리는 적과 부딪치거나 직접 얼굴을 맞대기도 하면서 무엇 때문이든 그가 싸워야 했던 볼셰비키와 이들 러시아병들에 대해 언제나 싫증나지 않는 호기심을 기울였다. 4년간에 걸친 전쟁 초기에 레시뉴프 근처 언덕 위에서 비로소 오스트리아, 헝가리 군의 어마어마한 장비의 부산한 움직임을 보았을 때 일어난 소박한 어린애스런 감정이 그의 속에 영원히 도사린 것 같았다. ‘인간이란 대체 뭘까? 인간이란 어떤 걸까? 그의 생활에는 굴보스카야 부근에서 체르네초프의 부대와 싸웠던 시기마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시 그는 누가 자신의 적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 대부분은 돈 장교와 카자흐들이었다. 여기서는 러시아병과 전혀 다른 무리들과 대결해야 했다. 그들은 대군을 이루어 소비에트의 토지를 짓밟고 그가 생각했던 대로 카자흐의 소유지와 부속지를 횡령하려고 밀려왔던 것이다. (P991)
기마병 하나가 태양을 머리 꼭대기에 받으면서 지나간다. 태양이 내리쬐고 있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온통 보랏빛 눈. 그렇지만 그 밑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예부터 내려온 아름다운 행동이 펼쳐져 있다. 그것은 대지의 해방이다. 태양은 눈을 좀먹고, 그것을 집어삼키고, 그 밑으로 습기를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수증기와 안개의 밤. 그러자 -- 그 이튿날에는 벌써 얼음층이 옅게 요란한 소리로 무너져 내리고 길과 바퀴 사이에선 넘쳐흐르는 녹색 물이 거품을 일으키고 말발굽 아래에선 녹은 눈덩이가 여기저기 튀어 오른다. 따뜻해진다. 모래 언덕의 눈이 녹으면서 서서히 알몸을 드러낸다. 점토질의 토양과 썩은 풀이 원시적인 냄새를 풍긴다. 한밤중에 기습이 힘찬 소리로 길어대고 눈사태에 파묻린 단애가 신음하고 빌로도처럼 검은 모습을 드러낸 전답이 흐릿하게 비쳐온다. 저녁나절에 초원의 시냇물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 얼음을 깨뜨렸는가 싶으면 어머니의 유방같이 팽팽하게 충만된 물이 그것을 싣고 간다. 갑자기 겨울의 종말에 놀란 사람은 모래질의 강가에 서서 얕은 데를 둘러보고 땀을 흘리며 자꾸만 귀를 움직거리고 있는 말에게 채찍을 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는 티없는 백설이 수줍은 듯이 푸른 기를 띠고, 졸린 것 같은 하얀 겨울이 질펀히 누워 있는 것이다..... (P1007)
‘좀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싸우고 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싸워 왔다.’ 그리고리는 썰매에 등을 기대고 덧옷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소의 느린 걸음걸이에 흔들리면서 줄곧 한가지만을 생각했다. ‘세상에는 진실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해치우고 그 해치운 쪽이 상대방을 집어삼킨다...... 그런데 난 나쁜 진실을 찾아 걷고 있었다. 영혼이 병들어 이쪽으로 넘어지다가는 저쪽으로 뒹굴었다..... 옛날에 타타르인이 돈으로 쳐들어와서 토지를 뺏고 노예로 만들었다는데, 지금은 러시아가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다. 난 결코 화해하지 않을 거다! 놈들은 내게도 카자흐에게도 타인이다. 카자흐는 이제 제정신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전선은 버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도 나처럼 아! -- 이미 늦었다.’ (P1073)
몇 날이 비구름의 그늘에 덮인 것처럼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이제까지의 모색이 무의미하고 공허한 것으로 여겨졌다. 무엇을 그리도 생각할 것이 있었단 말인가. 어째서 몰이꾼들에게 쫓기는 이리같이 출구를 찾아 헤매고 모순의 해결을 찾아 우왕좌왕했던 것일까? 어차피 인생이란 그 날개 밑에서 편안히 쉴 수만은 없다는 진리는 애초부터 알지 않았던가. 지금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누구나 혼자만의 진리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만의 길이 있다고 여겨졌다. 한 조각의 빵을 위해, 몇 뼘도 안 되는 땅을 위해, 살아갈 권리를 위해서 인간은 싸워 왔다. 그리고 태양이 인간을 비추고, 혈관 속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는 동안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P1107)
카자흐의 길이 토지를 갖지 않은 러시아 농부와, 공장 노동자의 길에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놈들하고의 싸움은 필연이다! 놈들의 발밑에서 피를 흘린 카자흐의, 비옥한 돈의 토지를 죽음을 걸고 빼앗아야 한다. 놈들을 타타르처럼 이 영토에서 추방해야 한다! 모스크바를 혼내 줌으로써 굴욕적인 강화를 얻어내야 한다! 좁은 길에서는 부딪치지 않고서 지나갈 수가 없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 그렇다면 이쪽에서 밀쳐내야만 한다. 힘겨루기는 끝났다. 빨갱이 부대를 카자흐 땅에 끌어들여 싫도록 힘을 겨뤄 봤으니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 자, 이번에 내버려 둘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흰 갈기처럼 얼어붙은 돈 강 위를 달려가면서 그리고리는 두서없이 치밀어 오르는 증오에 시달리며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순간 그의 심중에 또 다른 생각이 번뜩였다. ‘부자와 가난뱅이가 싸우는 것은 좋다. 하지만 카자흐와 러시아여선 안 된다...... 미시카 코셰보이나 코트랴로프는 분명 카자흐지만 뼛속까지 빨갱이다!......’ 그러나 그는 애써 이런 생각을 떨쳐버렸다. (P1108)
30분 뒤, 기병대가 밀집한 라바대형으로 연연히 흘러가기 시작하자 그리고리는 강렬하게 솟구쳐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그는 지금껏 이같이 많은 인원을 지휘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우월감에 찬 기쁨의 한 구석엔 불안이, 씁쓸한 비애가 고통스럽게 꿈틀거렸다. ‘큰 실수 없이 내 임무를 다할 수 있을까? 나에게 과연 수천 명의 카자흐를 통솔할 만한 능력이 있을까? 나의 지휘 하에는 일개 중대가 아니라 일개 사단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배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무식한 카자흐에 불과한 내가 수천 명의 생명을 손아귀에 쥐고 그들에 대해 책임을 짊어질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반대하여 행동하느냐에 있다. 인민에 반대하여..... 그렇다면 대체 누가 옳다는 말인가?’
그리고리는 밀집대형을 이루어 지나가는 부대를 이를 악물고 바라보았다.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권력의 힘은 그의 눈앞에서 퇴색하고 있었다. 불안이, 괴로운 고통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견딜 수 없는 무게로 짓눌려 양쪽 어깨를 굽히게 하는 것이었다. (P1143-1144)
[3]
다리야는 그렇게 말하고 히죽 미소 지었는데, 그 심술궂고 교활해 보이는 미소 속에서 한순간 나탈리야는 이전의 다리야를 발견했다.
“그렇게는 도저히 안돼. 다 틀렸어. 늘 죄와 무서운 심판에 겁을 먹고 지내왔었는데..... 내가 이제부터 자신에게 가하려는 심판보다 더 무서운 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나타시카, 나는 이제 모든 게 다 싫어졌어! 인간이란 것이 아주 싫어진 거야..... 나는 분별없이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것 같아. 나에게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무도 없었단 말야. 가슴 아프게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래!”
나탈리야는 생각을 돌이켜 자살 같은 것은 생각지 말라고 열심히 설득했다. 하지만 다리야는 처음에는 멍하니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가 정신이 들자 성난 듯이 도중에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그만둬, 나타시카! 충고를 듣거나 생각을 바꾸라는 말 따위를 들으러 온 게 아냐. 내 슬픔을 털어놓아서 오늘부터는 아이들이 나에게 오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온 거야. 의사가 그러는데 내 병은 전염된다더군. 나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아이들에게 전염되면 나쁠 거라구. 알겠지, 바보야? 어머님에게도 말씀드려 줘. 내 양심이 용서하지 않거든. 하지만 목을 매어 죽을지언정 지금 당장 내 입으론 말 못해.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조금 더 살면서 이 세상을 즐기고, 그 뒤에 작별할 테야. 이제껏 살아 봤지만 지금 도대체 무엇을 안단 말이야? 마음이 아플 정도로 돌아다녔어도 우리 주위의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내가 해온 생활도 그런 생활이었어. 꼭 눈뜬장님 같았던 거지. 그래도 읍내에서 돌아와 가지고 돈 기슭을 바라보며, 이제는 이런 경치와도 영영 작별해야 하는가 문득 생각하자니 웬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 돈에 잔물결이 일어 그것이 햇살을 받으니까 은빛을 띠고 반짝반짝 빛나더군.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눈이 아픈 듯 부시고,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어. 그런데 나는 지금껏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거야...... ” (P1501-1502)
그리고리가 괴로워한 것은 그가 나탈리야와 살았던 6년이란 세월 동안에 자기 나름으로 나탈리야에게 애정을 기울이고, 어느 샌가 그녀에게 정이 든 탓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죽게 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그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만일 나탈리야가 생전에 못마땅한 짓을 하고 애들을 데리고 친정에 돌아가 있었거나, 혹은 그녀가 믿음을 저버린 남편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며 조금도 화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죽게 된 것이었다면, 그리고리도 틀림없이 이토록 강하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후회스런 마음으로 이렇게까지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리니치나의 이야기에 의해서 나탈리야가 자신의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용서했다는 것, 임종 무렵까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 모든 게 그의 괴로움을 한층 더 깊게 하고, 그의 양심에 끊임없이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으며, 지나온 세월과 그 무렵 자신의 행위를 싫든 좋든 간에 돌이키게 했다....... (P1553)
적위군 제9군 소속 제22와 제23 두 개 사단의 여러 연대는 9월말까지 그들이 점령한 돈좌안의 여러 촌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적(敵)과 우군은 돈을 사이에 두고 대치해 있었는데, 그때 돈의 강폭은 가장 넓은 곳도 160미터 이상은 안 되고 곳에 따라서는 60미터밖에 안 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적위군은 적극적으로 강을 건너려 하지 않았다. 근처 얕은 여울에서 돈 강을 건너려고 시도하기는 했으나, 그럴 때마다 격퇴 당했다. 그 지역의 전선 전체에는 2주일 동안 대포와 소총의 사격전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P1606)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건강하던 자가 이제는 벌써 그의 몸을 깨끗이 씻기우고 있다. 멀쩡한 카자흐를 잃게 된 거야! 바로 얼마 전에 우리 집을 찾아오기도 했고, 다리야를 물에서 끌어올렸을 때는 돈의 물가에 서 있었지 않았던가. 아, 프리스탄, 프리스탄! 하필이면 너의 몸에 적탄이 맞다니.... 그리고 아니쿠시카로 말하면..... 몹시 쾌활하고, 술꾼이고, 잘도 웃더니, 이젠 벌써 고인이 되고 말았구나.....’ 그때 판테리에 프로코피에비치는 두냐시카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자 뜻밖에도 아니쿠시카의 미소 짓고 있는 콧수염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 또렷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이미 숨을 쉬지 않는, 머리가 엉망으로 으깨어진 현재의 아니쿠시카 모습은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마구 그리고리를 자랑했는데....’ 그는 베스프레브노프와 주고받은 말을 생각해 내고는 자신을 꾸짖었다. ‘그런 그리고리도 지금쯤 총탄에 찢겨 어디엔가 쓰러져 있을는지도 모른다. 아, 제발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 늙은이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간단 말인가?’ (P1616)
“허, 이런 곳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다니! 하기야 요즘 세상에서는 별로 드문 일이 아니지. 마치 유대인처럼 지구 위에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까. 쿠반에서는 말이오. 막대기를 공중에 내던지면 그 막대기가 돈의 카자흐에게 맞는 답니다. 어느 곳이나 카자흐들로 가득 차 넘치고 있지만, 지하에 묻힌 자들은 훨씬 더 많소. 나는 이번 철수 중에 갖가지 인간을 신물 나도록 보아 왔소. 모두 궁해서 얼마나 딱한 형편인지 말을 할 수조차 없소. 그저께 정거장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까, 옆에 안경을 쓴 훌륭한 부인이 있더라구요. 그 부인은 안경을 끼고 이(貳)를 찾습디다. 이란 놈들이 그 부인의 몸을 기어 돌아다니고 있었거든요. 부인은 그놈들을 손가락으로 움켜쥐긴 했지만, 시큼한 야생 사과라도 깨문 때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그 불쌍한 이를 눌러 죽일 단계가 되자, 더더욱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고 비스듬히 틀더군요. 그 부인은 얼마나 그게 지겨운 일이었겠소? 그런데 다른 완강한 녀석들은 말이오. 사람을 죽이는데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입술조차 일그러뜨리지 않아요. 나는 눈앞에서 그런 억센 녀석들이 카르므이크인 3명을 칼로 쳐서 베고, 그 피 묻은 칼을 말갈기로 씻어 내는 걸 보았소. 그 뒤에는 궐련을 꺼내어 한 모금 빨고 말을 타더니, 나에게로 다가와서 ‘이봐, 영감,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당신 모가지도 베어 줄까?’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젊은이, 그게 무슨 말이오? 목을 잘리면 어떻게 빵을 먹으라는 말이오?’했더니, 녀석은 소리내어 웃고 가버립디다.”
“사람 죽이는 일을 이 죽이는 것보다 더 태연스레 하고들 있지요. 혁명 때문에 사람 생명이 아주 하찮아지고 만 겁니다.”
주인은 생각이 깊은 척 한마디 거들었다.
“사실, 그대로지요. 사람은 가축이 아니라, 무엇이든 익숙해져 버려요. 그래, 내가 그 부인에게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보아하니 이 근처 보통 여자들과는 달리 보이는데요’ 물었더니, 부인은 나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그레치힌 소장의 아내에요.’하더군요. 아이구, 이 부인이 장군의 부인이시군. 나는 생각했소. 그런 분이 글쎄, 사나운 고양이가 벼룩을 덮치듯이 이를 잡고 계셨던 거요! 그래서 나는 ‘영부인, 실례입니다만 그렇게 하시다간 그 벌레놈들을 없애시는 데 성모제(聖母祭)까지 걸리실 겁니다. 손톱만 아프실 뿐입니다. 벌레놈들을 몽땅 한 번에 잡아 죽이셔야 합니다’ 말했더니, ‘어떻게 해야 되지요?’ 묻습디다. 그래서 나는 ‘옷을 벗어 그걸 바닥의 단단한 곳에 펴놓고는 병으로 벌레놈들을 두들겨 으깨십시오’ 가르쳐 주었소. 그러자 장군 부인은 옷을 벗고 양수(揚水) 펌프장 쪽으로 가서 그 옷을 녹색병으로 힘 있게 두들겨댑디다! 나는 그 부인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소 -- 하느님은 참 다양하게 많이도 만드셨다. 하느님은 저런 고귀한 분에게도 벌레들을 보내 주셨다. 이들이 그 달콤한 피를 빨아먹게 해주신 것이다. 이들도 일하는 사람의 피만 빨아먹을 수는 없으니까.... 하느님은 인간들과는 다르시다. 하느님은 분명하게 알고 계시다. 때로 하느님은 인간에게 은총을 내리신다. 그것은 아주 공평하게 행해지며 도저히 인간들이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이다....”
(P1692-1693)
“내 집으로 갑시다. 이 집에서는 그리고리 혼자 살게 하고, 재산은 나누면 되니까.”
“함께 살아선 안 돼요. 오빠는 틀림없이 아크시냐를 끌어들일 텐데요.”
“설사 괜찮다고 해도, 나는 당신 오빠와 한 지붕 밑에서는 살지 못하오.” 미시카는 잘라 말했다.
두냐시카는 놀라서 눈썹을 추켜올렸다.
“무슨 말예요, 미샤?”
“당신도 알고 있지 않소?”
“그건..... 오빠가 백위군에 있었기 때문예요?”
“그렇소.”
“당신은 오빠를 싫어하시는군요..... 두 분은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내게 악마가 되었소. 그래도 좋다고 하라는 거요? 친구이긴 했지만, 우리의 친구 관계는 오래 전에 끝나버렸소.”
두냐시카는 물레 쪽으로 갔다. 물레의 바퀴가 똑같은 간격을 두고 덜커덕덜커덕 소리를 냈다. 순간, 물레의 실이 끊어졌다. 두냐시카는 한 손으로 바퀴 가장자리를 누르고 실을 이으며 남편을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그리고리가 돌아오면, 백위군 카자흐 부대에 있었다고 해서 어떻게 되지요?”
“재판이 있을 거요. 군법회의가....”
“그러면 무슨 죄를 받나요?”
“그건 나도 모르오. 나는 재판관이 아니니까.....”
“총살형 같은 게 될까요?”
미시카는 미샤토카와 포류시카가 잠들어 있는 침대 쪽을 보고 고른 숨결을 엿듣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아마 그럴 거요.” (P1752)
“어째서 당신은 여기서 모반을 일으키는 거요? 당신은 어디로, 어느 함정 속으로, 이곳 카자흐들을 밀어 떨어뜨리려는 거요? 이 제기랄 놈의 전쟁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과부로 만들었는지 모르시는 거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었는지 모르시오? 그런데도 또다시 새로운 불행을 우리에게 걸머지게 할 작정이오? 루베지누이 부락에서 왔던 해방 황제란 건 도대체 무슨 놈의 황제요? 당신은 우선 자기 집안의 질서나 제대로 바로잡고, 혼란을 수습하고, 그 뒤에 어떻게 사는 게 좋은가, 어떤 정권을 받아들일 것인가, 어떤 정권이 좋지 않은가를, 우리에게 가르치시오! 당신의 집에선 말이죠, 부인이 목에 멍에를 걸고, 그걸 벗지 못하고 있어요. 훤히 다 아는 일예요! 그런데도 당신은 콧수염이나 기르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인심을 어지럽히는 거예요. 당신들 집의 경제 상태도 말이죠, 만일 바람이 집을 밑에서 떠받쳐 주지를 않는다면, 벌써 오래 전에 나자빠졌을 거예요. 당치도 않은 선생이 있었던 것이죠? 왜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있어요? 코빨갱이 아저씨, 내가 거짓말을 하는 줄로 생각하세요?”
군중들의 낮은 웃음소리가 술렁였다. (P1837)
“나는 포민 패거리들과 자네와의 관계를 알고 있어. 자네는 저 패거리 사이에서는 나와 마찬가지로 이단자야. 무엇이 자네를 소비에트 정권에 반항하도록 만들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나는 흥미가 없네. 만일 내 판단이 옳았다면, 그건 자네의 과거와 체포될 걱정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나?”
“자네는 그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래, 그렇지. 그저 무심결에 나온 말이야. 그런데 이번에 나에 대한 얘기를 좀 들어주게. 나는 전에는 장교이고 사회혁명당 당원이었지. 그런데 나중에 스스로 정치적 신념을 낱낱이 재검토해 봤더니..... 군주제만이 러시아를 구할 수 있단 생각이 들었어. 군주제만이 말이야. 신의 섭리가 우리 조국이 갈 길을 밝히고 있는 거야. 소비에트 권력의 상징은 MOLOT(망치)와 SERP(낫)이지. 그렇지 않아?”
카파린은 모래땅에 ‘MOLOT, SERP'라고 나뭇가지로 써 보였다. 그러고는 뜨겁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리고리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자아, 이걸 거꾸로 읽어 보게, 읽었나? 알겠나? PRESTOLOM(제위에 의해서)이 되네. 즉 제위에 의해서만 혁명과 볼셰비키 정권은 종말을 고하는 거야! 이것을 알았을 때 나는 얼마나 신비로운 공포에 휩싸였던지! 난 두려움에 떨었지. 왜냐하면 이것은 즉 우리의 동요에 종말을 지시하는 하늘의 계시이기 때문이야......”
카파린은 흥분해서 숨을 헐떡이면서 입을 다물었다. (P1863)
“나는 1914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잠깐 쉰 일은 있었지만 계속 전장에 있었지. 그런데 그 하늘의 계시니 신의 가르침이니 하는 것 말이네만..... 신이란 존재하지 않네. 따라서 하늘의 계시 따위도 있을 까닭이 없지 않나? 그런 어리석은 일을 믿는 것을 나는 벌써 옛날에 그만뒀네. 1915년 뒤로 전쟁이라는 걸 지겹도록 보아 왔기 때문에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지. 신은 없어. 만일 신이 있다면 인간을 그토록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도록 내버려둘 턱이 없지. 우리 전장의 전투원들은 신을 믿지 않아. 신은 늙은이나 여자들에게만 존재하는 거지. 늙은이나 여자들이 그것으로 위안을 얻는다면 그렇게 해두는 게 좋기 때문이야. 하늘의 계시 따위는 있지도 않고, 군주제도 있을 수 없는 거야. 백성은 그걸 물에 장사지내버린 거야. 게다가 지금 자네가 보여 준 그 여러 문자를 거꾸로 읽는 것은 실례되는 말이지만 아이들 장난일 뿐으로,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내가 좀 알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자네가 그런 것을 인용해서 얘기하는가 하는 것이야. 좀 더 솔직하고 간단하게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사관학교에도 가지 않았고, 장교는 됐지만 배운 것은 별로 없어. 나에게 좀 더 배운 것이 있었다면 아마 봄 홍수로 섬에 갇힌 이리처럼 섬에 자네들과 함께 나자빠져 있지는 않았을 거야.” (P1864)
"아가야..... 아가야......“
그러면서 그리고리는 아들을 끌어안았다. 건조한, 미쳐버릴 듯이 타오르는 눈으로 아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모두 어떻게 지내니?...... 고모도 포류시카도 잘 있니?”
여전히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미샤토카는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두냐시카 고모는 잘 있고, 포류시카는 작년 가을에 죽었어요..... 목에 병이 나서요. 미하일 아저씨는 군대에 갔어요.”
이렇게 해서 그리고리가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몽상하던 일이 드디어 실현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는 아들을 팔에 안고는 자신이 태어난 집 문 앞에 섰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남겨진 모두였다. 그것이 지금도 그를 이 대지와 차가운 태양 아래 빛나고 있는 거대한 세계로 이어 주고 닿게 해주는 모두였다. (P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