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그랜의 <플라워 문>

영화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2021년

by 노용헌

데이비드 그랜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으며, 에릭 로스가 각본에 함께 참여했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07.jpg

데이비드 그랜의 2017년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플라워 문: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 그리고 FBI의 탄생’은 정말이지 독보적인 역작이다. 범죄와 인종차별을 다룬 ‘지극히 미국적인’ 이야기이며 한 나라의 과거와 미래를 함께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서부 개척 시대가 저물어 가던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토지 약탈 사건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내부적으로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는 수사기관의 연대기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오세이지족, 즉 본래 오하이오와 미시시피 계곡 부근에 터를 잡았으나 서쪽으로 계속 밀려나며 미주리와 캔자스를 지나 결국 180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미정부가 오클라호마에 지정한 ‘인디언 준주(Indian Territory)’에 모여 정착하게 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오세이지 영토에서 석유가 1894년에 처음 발견된 이후 부족은 이에 대한 채굴권을 가지고 땅을 개발업자들에게 임대하며 막대한 부를 손에 쥐게 된다. 돈에 눈먼 투기꾼들이 물밀듯이 몰려들며 개발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고, 시내는 착취와 범죄의 온상이 되었는데 미정부의 주도하에 매우 불합리하며 인종차별적인 ‘후견인 제도(guardianship)’가 도입되면서 백인 후견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재산을 대신 관리한다는 명목 하에 어마어마한 돈을 챙겼다.


더욱 끔찍한 것은, 1920년대 초반 이른바 ‘공포 정치(Reign of Terror)’ 시대에 수십 명의 오세이지족이 독살 등의 방법으로 의문스럽게 살해당했고, 사망 후 토지에 대한 수익권(석유 지분권 포함)을 상속받을 것을 노리고 원주민들과 결혼한 이들에게 넘어가 버렸다는 사실이다. 1923년 오세이지족의 요청으로 FBI는 창설 이래 거의 최초의 살인사건 수사에 착수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이후였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02.jpg

스코세이지 감독은 ‘플라워 킬링 문’을 통해 그의 야심찬 비전을 실현하고자 오랜만에 조우한 디카프리오 및 드니로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가장 신뢰해 온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의 신뢰를 받는 실력자들로는 세 차례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사일런스’, ‘아이리시맨’), 많은 호평을 받는 작곡가이자 ‘더 밴드’의 기타리스트이며 카유가족 및 모호크족의 후손이기도 한 로비 로버트슨 (‘코미디의 왕’, ‘컬러 오브 머니’), 그리고 1980년대 ‘성난 황소’로 첫 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그 이후의 모든 스코세이지 감독 영화를 편집한, 아카데미상 3회 수상에 빛나는 편집감독 셀마 슈메이커 등이 있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03.jpg

4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꽃들이 오클라호마주 오세이지 영토의 광대한 초원과 검은 산들을 뒤덮었다. 제비꽃, 클레이토니아, 그리고 파란색의 작은 꽃들. 오세이지족 출신 작가인 존 조지프 매슈스는 꽃잎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펼쳐진 광경이 마치 “신들이 색종이 조각을 흩뿌리고 떠나간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불안할 정도로 커다란 달 아래에서 코요테들이 울부짖는 5월이 되면 자주달개비, 노랑데이지처럼 키가 좀 더 큰 식물들이 작은 꽃들 위로 슬금슬금 번지면서 그들에게서 빛과 물을 훔쳐가기 시작한다. 작은 꽃들의 목이 부러지고 꽃잎들은 팔랑팔랑 날아간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땅속에 묻힌다. 그래서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은 5월을 ‘꽃을 죽이는 달(flower-killing moon)'의 시기라고 부른다. (P9)


1870년대 초에 오세이지족은 캔자스주의 고향에서 쫓겨나 오클라호마 북동부의 바위투성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 다들 아무 가치도 없는 땅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십 년 뒤 이 땅이 미국 최대의 석유 매장지 몇 군데를 깔고 앉아 있음이 밝혀졌다. 탐사에 나선 사람들은 이 석유를 손에 넣기 위해 오세이지족에게 임대료와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부족 명부에 이름이 실려 있는 사람들에게 20세기 초부터 1년에 네 번씩 수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겨우 몇 달러짜리 수표였지만, 세월이 흘러 석유 채굴량이 늘어나면서 그들에게 지급되는 돈도 수백 달러, 수천 달러로 늘어났다. 초원을 흐르는 개울들이 하나로 모여 흙탕물이 흐르는 널찍한 시머론강이 되듯이, 거의 매년 늘어난 지급액 덕분에 부족원들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수억 달러에 이르렀다(1923년만 해도 부족원들에게 지급된 돈은 3,000만 달러가 넘었다. 오늘날의 가치로 4억달러가 넘는 액수다). 오세이지족은 재산을 인구수로 나눴을 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 뉴욕의 주간지 <아웃룩>은 이렇게 외쳤다. “보라! 인디언들이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 (...) 은행가들도 부러워서 얼굴이 노랗게 질릴 만한 소득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사람들은 오세이지족의 부유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백인과 처음 만나 잔혹한 일을 당했을 때부터(이 원죄에서 미국이 태어났다) 굳어져 있는 미국 인디언의 이미지와 오세이족은 너무나 달랐다. 기자들은 “재벌 오세이지족”이나 “붉은 피부의 백만장자들”, 벽돌과 테라코타로 만든 그들의 저택과 샹들리에, 다이아몬드 반지, 모피외투, 운전기사가 딸린 자동차 등에 대한 기사로 독자들을 감질나게 만들었다. (P10-11)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06.jpg

이끼가 자라는 개울가를 가리키며 소년이 말했다. “사람이 죽어 있어요.”

인디언 여성으로 보이는 시체가 잔뜩 부풀어서 썩어가고 있었다. 똑바로 누워 있는 시체의 머리카락은 진흙 속에 헝클어져 있고, 텅빈 눈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더기들이 시체를 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P23-24)


몰리와 리타는 현장에 도착한 뒤 시체에 다가갔다. 악취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늘에서는 독수리들이 불길하게 빙빙 돌았다. 몰리와 리타도 시체의 얼굴만으로는 애나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얼굴이라고 해봤자 사실상 남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몰리가 빨아준 옷가지와 인디언 담요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리타의 남편 빌이 나서서 막대기로 시체의 입을 벌렸다. 금으로 때운 치아가 보였다. “확실히 애나로군.” 빌이 말했다. (P25)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08.jpg

산업도시들이 성장하고 도시 폭동이 빈발하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이른바 위험한 계층에 대한 두려움이 국가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하게 된 19세기 중반에야 미국에 경찰국이 생겨났다. 애나가 사망한 무렵에는 시민들이 치안을 담당하는 비공식적인 체제가 이미 사라졌지만,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었다. 특히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변방에 존재하는 곳에서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P27-28)


몰리의 제부인 빌 스미스가 가장 먼저 리지의 죽음에 의심을 품었다. 애니와 화이트혼의 살인사건 직후에 리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사나운 불도그 같은 빌은 당국의 수사에 대해서도 커다란 불만을 토로하며 스스로 조사를 하고 있었다. 몰리처럼 그도 리지가 앓던 병의 정체가 유난히 모호하다는 사실을 마음에서 떨쳐버릴 수 없었다. 어느 의사도 병명을 콕 집어 밝혀내지 못한 것이 이상했다. 리지의 사망원인 또한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다. 빌은 의사와 지역 조사관들과 의논하며 조사를 진행할수록, 리지의 죽음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는 확신을 얻었다. 리지는 독살된 것 같았다. 빌은 또한 이 세 사람의 죽음이 오세이지족 영토의 지하에 묻혀 있는 검은 황금과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P52-53)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04.jpg

미국 정부는 오세이지족에게 캔자스의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주민들이 사방에서 압박을 가했다. 나중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원의 집>을 쓴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가족들도 그런 이주민이었다. “왜 인디언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엄마?” 책 속에서 로라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그냥 싫어. 손가락 빨지 마라. 로라.”

“여긴 인디언의 땅이잖아요.” 로라가 말했다. “이 사람들이 싫다면서 왜 이 사람들의 땅에 온 거예요?”

어느 날 저녁 로라의 아버지가 정부가 오세이지족을 곧 이주시킬 것이라고 딸에게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로 온 거야. 로라. 백인들이 이 일대에 정착할 거다. 우리가 가장 먼저 와서 마음대로 고를 수 있으니 가장 좋은 땅을 얻을 거야.”

비록 책에서 잉걸스 일가는 병사들의 위협을 받으며 인디언 보호 구역을 떠나지만, 많은 이주민들이 무력을 동원해서 무단으로 땅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1870년에 오세이지족은 무덤이 약탈당하고 집에서 쫓겨나는 일을 견디다 못해, 캔자스 땅을 에이커당 1,25달러를 받고 이주민들에게 팔기로 했다. 그런데도 성급한 이주민들은 오세이지족 여러 명을 죽여 시체를 훼손하고 머리가죽을 벗겼다. 인디언실의 한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절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이들 중 누가 야만인인가?” (P58-59)


연달아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백인들의 질병”인 천연두까지 겪는 바람에 부족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한 추정치에 따르면, 오세이지족의 인구가 약 3,000명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70년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었다. 인디언실 관리는 이렇게 보고했다. “한때 이 일대 모든 땅의 확실한 주인이었던 영웅적인 부족의 흔적은 이 사람들이 전부다.” (P60-61)


흔들리는 수레를 타고 몰리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달렸다. 아직은 이곳의 그 무엇도 다듬어져 있지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마부와 몰리는 수레를 멈추고 야영준비를 했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진 뒤, 하늘이 피처럼 붉게 변했다가 검은색이 되었다. 짙은 어둠을 조금이나마 희석해주는 것은 달과 별뿐이었다. 오세이지족은 달과 별에서 많은 일족들이 내려왔다고 믿었다. 몰리는 안갯속의 여행자가 되었다. 밤의 세력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지만, 소리만 들릴 뿐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코요테들이 횡설수설하는 소리,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 그리고 악령이 깃들어 있다고들 하는 올빼미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 (P67-68)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10.jpg

몰리의 가족은 200년의 역사 위에 걸터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두 개의 문명 사이에 걸쳐져 있었다. 1890년대 말에 미국 정부가 동화 정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토지분할을 실시하면서 몰리 가족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정부는 오세이지족 보호구역의 땅을 160에이커씩 분할해서 진정한 ‘부동산’으로 만든 뒤, 부족원 한 사람당 한 필지씩 나눠주었다. 그리고 남는 땅은 이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이미 많은 부족에게 실시된 적이 있는 이 분할제도는 옛날식 공동체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미국 인디언들을 개인 재산 소유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인디언들의 땅을 손에 넣기가 쉬워지는 것 또한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오세이지족은 체로키 영토의 일부였으며, 오세이지족 보호구역의 서쪽 경계선 근처의 광대한 초원지대인 체로키 하구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미 보았다. 미국 정부는 체로키족에게서 이 땅을 사들인 뒤, 1893년 9월 16일 정오에 4만 2,000필지를 이주민들에게 선착순으로 나눠주겠다고 발표했다. 이주민 한 명은 한 필지만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자 며칠 전부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P71)


유정에서 기름이 터지면, 많은 오세이지족이 기름 기둥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달려갔다. 그들은 불꽃이 튀지 않게 주의하면서, 15미터나 18미터, 때로는 무려 30미터까지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석유를 눈으로 좇았다. 허공에서 호선을 그리며 커다란 검은 날개처럼 흩뿌려지는 석유는 죽음의 천사 같았다. 벌판과 꽃에 석유가 한 꺼풀식 내려앉았고, 인부들과 구경꾼들의 얼굴에도 얼룩으로 남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좋아서 서로를 끌어앉고 모자를 허공으로 던졌다. 토지분할이 실시되고 곧 세상을 떠난 빅하트는 “오세이지족의 모세”로 찬양받았다. 검고 미끈거리고 냄새가 나는 이 광물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건으로 보였다. (P79)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05.jpg

10번 탐정은 자신이 일종의 돌파구 앞에 서 있음을 깨닫고, 그 전화의 출발지인 랠스턴의 업체로 서둘러 달려갔다. 그 업체 주인은 애나의 집에 전화를 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전화기로 장거리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말도 했다. 랠스턴의 교환수 중 누구도 이 전화를 페어팩스의 교환수에게 연결해주었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이 업체 주인의 주장을 뒷받침해주었다. “수수께끼의 전화통화다.” 10번 탐정은 이렇게 썼다. 그는 랠스턴의 전화번호가 사실은 ‘차단막’ 역할을 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어떤 교환수가 뇌물을 받고, 처음 전화연결을 요청한 사람의 정체가 드러나 있는 기록 원본을 파기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고 애쓰는 듯했다. (P88-89)


1922년 3월 26일, 즉 스텝슨의 사망으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한 오세이지족 여성이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맞았다. 이번에도 철저한 독물검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7월 28일에는 30대 오세이지족 남성인 조 베이츠가 낯선 사람에게서 받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뒤 입가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도, 당국의 묘사에 따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독약이었다. 그는 아내와 자녀 여섯 명을 유족으로 남겼다. (P98-99)


〈워싱턴 포스트〉가 “이 도시의 범죄역사 중 가장 잔혹하다”고 표현한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것 같았다. 범인이 모종의 경고를 전달하려고 한 기색이 역력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점차 분명해지는 의심을 헤드라인에 실었다. “부유한 인디언들을 죽이려는 음모가 있는 듯.” (P100)


“우리는 지금 우리 돈을 원한다. 그것은 우리 돈이다. 어떤 독재적인 사람이 그것을 붙잡고 있어서 우리가 쓸 수 없게 되는 것은 (....) 우리 모두에게 부당한 일이다. 우리는 어린아이들 무리처럼 대우받고 싶지 않다. 우리는 성인이며, 우리 자신의 일을 충분히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 순혈 오세이지족인 몰리도 신탁기금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이 어니스트가 그녀의 후견인인데도 어쩔 수 없었다. (P114-115)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11.jpg

론의 죽음 이후 오세이지의 주택들 외부에 전구가 내걸리기 시작했다. 지붕과 창턱에서, 뒷문 위에서 전구들이 대롱거리며 어둠을 도려냈다. 오클라호마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포허스카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든 밤이면 친구들이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의 집 윤곽선을 그려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곳에 처음 온 사람은 석유로 부자가 된 것을 보란 듯이 자랑하는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오세이지족이 잘 알고 있듯이, 그 전구들은 오세이지족의 땅을 마르게 하고 변화시킨 무자비한 망령과 보이지 않는 손이 은밀하게 다가오는 것을 막기 위해 달아놓은 것이다. 다른 인디언 부족들은 오세이지족의 땅을 낙원에 버금간다며 부러워하지만, 그 망령과 보이지 않는 손은 그 땅을 망자들의 해골이 널린 죽음의 땅이자 골고다 언덕으로 바꿔놓았다. (....) 오세이지족의 땅에 항상 떠돌아다니는 질문이 있다.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P122-123)


톰 하이트는 치안관으로서 정식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으므로, 머리가 빙빙 돌 것 같은 지문의 형태를 해독하는 기법 등 새로 나온 과학수사 방법들을 익히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그는 젊었을 때부터 법을 수호하는 일을 하면서 수사관으로서 솜씨를 갈고 닦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패턴을 찾아내고 산만하게 흩어진 사실들을 모아서 사건의 앞뒤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위험을 피하려고 예민하게 굴면서도 거친 총격을 여러 번 경험했으나, 동생이 박사(한 요원은 그의 “직장생활 여기저기에 총알이 흩어져 있다”고 묘사했다)와 달리 거의 괴짜처럼 보일 정도로 총 쏘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자기 내면의 어두운 본능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가 보기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는 경계선은 아주 가늘었다. (P149)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07.jpg

후버는 오클라호마의 상황이 “심각하고 예민하다”고 보았다. 티포트 돔의 추문 이후 이토록 빨리 조금이라도 부정행위가 발생한다면 그의 공직생활이 아예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겨우 몇 주 전에 그는 화이트 등 특수요원들에게 보낸 ‘기밀’메모에서 “수사국은 공개적인 추문을 감당할 수 없다”고 이미 밝힌 바 있었다.

화이트는 후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왜 이곳으로 불려왔는지 분명히 깨달았다. 오세이지의 살인사건들을 해결하고, 더불어 후버의 목까지 보존하려면 소수의 노련한 요원들 중 한 명, 즉 카우보이 중 한 명인 화이트가 필요했다. “당신이 수사 지휘를 맡아주었으면 합니다.” 후버가 말했다. (P157)


피후견인이 특정한 상점이나 은행하고만 거래를 하게 만든 뒤, 리베이트를 챙기는 후견인도 있었다. 또는 사실 자기 집이나 땅을 사면서 피후견인의 집이나 땅을 구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후견인도 있었다. 심지어 아예 대놓고 돈을 훔치는 후견인도 있었다. 정부가 실시한 연구에서는 1925년 이전에 후견인들이 오세이지족 피후견인들의 계좌에서 적어도 800만 달러를 직접 훔쳤을 것이라는 추정치가 제시되었다. “우리 주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은 인디언들의 재산관리를 위한 후견인 제도일 것이다.” 한 오세이지족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후견인들이 많은 오세이지족의 돈을 수백만 달러나, 다시 말해서 수천 달러가 아니라 수백만 달러나 탕진해버렸다.”

화이트는 이른바 인디언 사업이라는 것이 치밀한 범죄임을 깨달았다. 사회의 다양한 부문들이 여기에 공범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사기꾼 후견인과 재산관리인은 대개 사업가, 목장주, 변호사, 정치가 등 백인 지도층 중에서 뽑힌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도둑질을 도와주고 은폐해준 치안관, 검사, 판사 등도 백인 지도층이기는 마찬가지였다(때로는 이들 자신이 후견인과 재산관리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24년에 인디언 권리연맹이 이른바 “부당이득과 착취의 흥청망청 잔치”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들은 오클라호마주의 부유한 인디언들이 어떻게 “과학적이고 가차 없는 방법으로 노골적으로 파렴치한 도둑질을 당하고” 있는지 기록했다. (P218)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12.jpg

그해 9월 어느 날, 보험설계사 행세를 하던 비밀요원이 페어팩스의 주유소에서 그곳의 여종업원에게 말을 걸었다. 요원이 인근에 집을 하나 사려고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하자, 여종업원은 이 지역에서 윌리엄 헤일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자신도 헤일의 목초지 외곽에 있는 집을 헤일에게서 샀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헤일의 땅 수천 에이커에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모두 불에 타고 남은 것은 재뿐이었다. 불을 지른 사람이 누구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헤일의 인부들이 헤일의 지시로 땅에 직접 불을 질렀다고 했다. 이 화재로 헤일은 모두 3만 달러의 보험금을 타냈다.

화이트는 의심이 가는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해보았다. 헤일이 어떻게 해서 헨리 온의 생명보험금 2만 5,000달러의 수령자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론이 1923년에 뒤통수에 총을 맞은 시신으로 발견되었을 때, 가장 분명한 살인동기를 지닌 사람은 헤일이었다. 하지만 보안관은 헤일을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다. 카운티의 다른 치안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허술함이 이제는 단순한 우연처럼 보이지 않았다. (P221-222)


화이트는 론의 사건을 계속 파고들다가 한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 헤일이 론을 계약자로 내건 생명보험에 들기 전에, 오세이지족의 광물신탁 중 론의 몫을 사들이려고 시도했음을 알아낸 것이다. 이 권리는 다이아몬드나 황금 창고보다도 훨씬 값진 것이었다. 헤일은 이 권리를 사고파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영향력 있는 백인들이 계속 로비를 하면 이 조항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다른 선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교육받은 인디언이 자격을 입증하는 서류만 있다면 자신의 광물권을 원하는 사람에게 팔거나 이전할 수 있도록 의회가 법을 곧 개정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법은 바뀌지 않았고, 화이트는 바로 이 때문에 헤일이 보험살인 음모를 꾸몄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석유에서 나오는 수익을 균등하게 배당받는 권리를 합법적으로 얻는 방법은 유산상속밖에 없었다. 화이트가 피살자들의 유언 검인 기록을 조사해보니, 살인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점점 더 많은 균등 수익권이 단 한 사람, 즉 몰리 버크하트의 손에 들어왔음이 분명해졌다. (P227)


화이트는 몰리의 가족들이 맞은 죽음의 패턴을 조사해보았다. 이제는 시간 순서조차 우연이 아니라 비정한 계획의 일부로 보였다. 자녀가 없는 이혼녀인 애나 브라운의 재산은 거의 모두 어머니인 리지에게 상속되었다. 살인음모의 주모자는 애나를 가장 먼저 죽임으로써, 그녀의 균등 수익권이 여러 상속자들에게 나눠지는 것을 방지했다. 그 뒤 리지가 자신의 균등 수익권 대부분을 딸인 몰리와 리타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했으므로, 그녀가 다음 목표가 된 것은 논리적인 결과였다. 그다음 차례는 리타와 빌 스미스 부부였다. 화이트는 이 두 사람을 폭파라는 이례적인 방법으로 죽인 데에도 사악한 논리가 숨어 있음을 깨달았다. 리타와 빌의 유언장에는, 만약 두 사람이 동시에 사망하는 경우 리타의 균등 수익권 중 상당부분을 살아있는 언니 몰리에게 상속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계획에 어긋나는 일이 하나 발생했다. 뜻하지 않게 빌이 리타보다 며칠 더 살아 있었기 때문에 리타의 재산 대부분이 그에게 상속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죽은 뒤 그 돈은 그의 친척들 중 한 명에게 상속되었다. 그래도 몰리 가족들의 균등 수익권 중 상당 부분이 몰리 버크하트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은 어니스트였다. 화이트는 헤일이 말 잘 듣는 조카를 통해 이 재산에 간접적으로 손을 뻗을 수 있는 채널을 비밀리에 만들어놓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화이트는 나중에 후버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헤일이 버크하트 형제를 통해 몰리의 식구들 모두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게 된 첫 계가가 바로 몰리였던 것 같다.”

화이트는 어니스트와 몰리의 결혼(애나가 살해당하기 4년 전)도 처음부터 음모의 일환이었는지, 아니면 헤일이 나중에 조카를 압박해서 아내를 배신하게 만든 것인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상상조차 힘들 만큼 뻔뻔하고 사악한 음모였다. 어니스트는 몰리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몰리와 함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내내 그녀의 가족들을 해치는 음모를 꾸며야 했다. 셰익스피어가 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대의 괴물 같은 얼굴을 가려줄

어두운 동굴이 어디 있을까? 그런 것을 찾지 말라, 음모여.

미소와 상냥함 속에 그것을 숨기라. (P228-230)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13.jpg

“그 시체를 보러 간 겁니까?” 검사가 브라이언에게 물었다.

“모두 그 목적으로 간 겁니다.” 브라이언이 말했다.

검사는 충격 받은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애나 브라운의 시체가 거기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모리슨도 구경꾼들 속에 있었다. 어니스트도 그 자리에서 몰리를 위로했다. 애나를 죽인 두 범인이 겨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니스트는 리타와 빌 스미스의 집이 폭파 되었을 때도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늦게 몰리와 함께 침대에 누울 때도 진실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범인을 찾아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동안 내내 범인을 알고 있었다. 모리슨이 애나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평결을 받았을 때, 몰리는 더 이상 어니스트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녀는 곧 그와 이혼했고, 그 뒤로 남편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후버에게 오세이지 살인사건 수사는 현대적인 수사국을 선전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가 바란 대로, 이 사건은 전문적이고 과학적이며 전국을 무대로 하는 수사기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P313-314)


화이트는 예전에 이런 어둠에 빛을 밝히려고 목사들에게 의지했지만, 이제는 과학적인 설명을 찾으려 했다. 교도소 내에서 헤일에 대한 신경검사와 심리검사가 시행되었다. 검사 담당자는 헤일에게 “억압이나 명백한 정신이상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지극히 사악한 요소들이 그의 기질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헤일은 문명인의 껍데기로 야만성을 감춘 채,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나라를 일구는 데 기여한 미국의 개척자 행세를 했다. 검사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뻔히 드러난 죄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의 형편없는 판단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의 정서는 적절하지 않다. (...) 그가 혹시 수치심이나 후회를 느꼈다 해도, 이미 그런 감정들을 잊어버렸다.” 화이트는 헤일의 심리를 분석한 검사자의 글을 읽어보았다. 그러나 과학을 뛰어넘는 사악함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헤일은 교도소 규정을 잘 따르면서도 계속 석방을 도모했다. 항소심을 맡은 법원에 뇌물을 주려고 시도했다는 말도 있었다. 이런 노력이 실패한 뒤에도 그는, 검사 담당자가 보고서에 썼듯이, “영향력있는 친구들을 통해 석방될 가능성이 높다”고 자랑했다. (P322-323)


레드 콘은 그 살인사건들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되는 오세이지족 여러 명의 이름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사건과 관련된 자기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내게 들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공포시대에 벌어진 일들을 우리는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해요.” 그녀가 설명했다.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매나 형제나 사촌을 잃은 오세이지족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 고통이 영영 사라지질 않네요.”

매년 6월이면 오세이지족은 여러 주에 걸쳐 주말마다 부족 전통 의식의 춤인 ‘인론슈카’를 추는 행사를 연다. 오세이지족이 1870년대에 보호구역에 처음 왔을 때 정착한 세 곳. 즉 호미니, 포허스카, 그레이스호스에서 각각 다른 시기에 열리는 이 행사는 사라져가는 전통을 보존하고, 부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때가 되면 흩어져 살던 오세이지족들이 모두 이곳으로 와서 행사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가족과 친구를 만나 야외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추억에 잠긴다. 역사연구가인 번스는 언젠가 이런 글을 썼다. “오세이지족이 그런 시련 속에서 아무런 상처 없이 살아남았다고 믿는 것은 망상이다. 우리가 그때 어떻게든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한 것들은 그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더욱 소중해졌다. 사라진 것들은 바로 예전 우리의 모습이므로 역시 귀중하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모아 우리의 존재 속에 깊숙이 보존해두고 내일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우리는 지금도 오세이지족이다. 우리는 선조들을 위해 노년에 이를 때까지 살아간다.” (P345-346)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14.jpg

화이트가 로슨의 거짓 자백이나 후버의 못된 저의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오세이지 살인사건들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흐릿하기만 한 검시 기록과 증인들의 증언과 유언 검인 기록을 살피는 동안, 수사국의 수사에서 몇 가지 빈틈이 점차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사당국은 헤일과 그의 공범들이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 범인을 모두 잡아들였다고 주장했다. 화이트가 리븐워스의 교도소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의기양양하게 사건을 종결했다. 헤일과 스물네 건의 살인사건이 아직 모두 연결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그가 정말로 그 모든 살인을 저질렀을까? 워싱턴에서 석유 사업가 맥브라이드를 납치한 사람이나, 달리는 열차에서 W.W.보건을 내던진 사람은 누구였을까?

헤일은 직접 피를 보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시켰다. 하지만 헤일이 자주 이용하던 패거리, 그러니까 브라이언 버크하트, 애사 커비, 존 램지, 켈시 모리슨 등이 미국 수도까지 맥브라이드를 미행했거나 보건과 함께 기차에 탄 증거는 없다. 이 두 사람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아무 벌도 받지 않고 빠져나간 듯하다. (P361-362)


“초창기 선교 기록에서 오세이지족은 대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묘사되었습니다. (...) 그들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고, 그 무엇에도 소유당하지 않았으므로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세이지족은 유럽 세계의 경제적 사업에 방해가 되었습니다. (...) 그들에게 익숙한 삶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두 세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우리는 강하고 용감하게 이 두 세계를 걷는 법을 배우며, 인디언이 아닌 사람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문화와 전통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 역사, 우리 문화, 우리 마음, 우리 고향은 앞으로도 언제나 초원을 가로질러 다리를 쭉 뻗으면서 아침 햇빛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심장 박동처럼 울리는 북소리에 맞춰 발을 내디딜 것입니다. 우리는 두 세계를 걷습니다.” (P375-376)


루이스의 살인사건을 기록한 이 원고를 다 읽은 뒤 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오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녀가 석유가 매장된 땅에 대한 균등 수익권 때문에 1918년에 살해되었다는 것, 대부분의 역사기록에 따르면, 오세이지족의 공포시대는 헤일이 애나 브라운을 살해한 1921년 봄에 시작해서 헤일이 체포된 1926년 1월에 끝났다. 하지만 루이스의 살인사건은 석유의 수익금을 노린 살인사건이 그보다 적어도 3년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레드 콘의 할아버지가 1931년에 정말로 독살된 것이라면, 헤일이 체포된 뒤에도 살인이 계속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사건들은 석유 수익금을 노리고 오세이지족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 사람이 헤일뿐만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헤일이 가장 오랫동안 가장 잔혹하게 피해자들을 살해한 인물일 수는 있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살인사건들이 존재했다. 그 사건들은 공식적인 추정치에 포함되지도 않았으며, 몰리 버크하트의 살해된 가족들이나 루이스의 경우처럼 조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중 일부는 아예 살인사건으로 분류되지도 않았다. (P392-393)


메콜리프가 자신의 할머니를 죽인 범인으로 의심한 후견인은 부족을 위해 일하는 저명한 변호사였으나 자신의 코앞에서 활동하는 범죄자들의 조직적인 활동에 단 한 번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살인범으로 의심되는 버트를 포함해서 여러 은행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인디언 사업’이라는 범죄에서 오히려 이득을 보고 있었다. 페어팩스의 타락한 시장은 헤일의 동맹이었으며, 본인도 인디언의 후견인이었다. 수많은 치안관, 검사, 판사도 역시 이 피묻은 돈에 손을 댔다. 1926년에 오세이지족의 지도자 베이컨 라인드는 이렇게 말했다. “백인들 중에도 정직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드물다.” 오세이지족의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 개릭 베일리는 “만약 헤일이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면, 그 지역의 유력한 시민들 중 상당수가 감옥에 갇혔을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정말로 사회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중요 인물들이 이 살인계획의 공모자였다. 그러니 이 공모자들 중 거의 모든 사람이 워싱턴에서 일어난 맥브라이드 살인사건의 범인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가 헤일뿐만 아니라, 거액의 돈을 부정하게 거둬들이고 있는 거대한 범죄 시스템을 무너뜨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P407)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15.jpg

“이 땅에는 피가 가득해요.” 웹이 말했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했다. 떡갈나무 이파리들이 바람 속에서 계속 바스락거렸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뒤, 하느님이 카인에게 했던 말을 웹이 되풀이했다.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다.” (P410)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09.jpg


keyword
이전 02화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