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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영화 <로빈슨 크루소> 1997년

by 노용헌

<로빈슨 크루소>(1946), <로빈슨 크루소>(1954), <로빈슨 크루소>(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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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실제로 무인도에 갇혀 살았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알렉산더 셀커크(1676~1721)라는 선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은 듯하다. 셀커크는 윌리엄 댐피어가 이끄는 여러 척의 사나포선이 스페인 상선들을 목표로 나섰던 항해에 참여했다. 1704년 토머스 스트래들링 선장과 언쟁을 벌인 그는 칠레 해안에서 약 560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에 있는 후안페르난데스 제도의 한 작은 섬에 홀로 내리게 된다. (그가 내렸던 마사테라 섬은 이제 공식적으로 로빈스 크루소 섬으로 불리고 있다. 디포가 크루소가 산 것으로 묘사한 섬은 북쪽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카리브 해에 있는데도 말이다!) 4년 반이 지난 후 셀커크는 우즈 로저스 선장이 지휘하는 영국 배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 배 역시 셀커크를 섬에 내려두고 떠난 선단에 속해 있었다. 1711년 영국으로 돌아온 셀커크는 1713년부터 이듬해까지 리처드 스틸이 <디 잉글리시맨>에 그의 이야기를 실으면서 매우 유명해졌다. 디포 역시 셀커크를 직접 만났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 선원이 겪은 이야기는 단지 출발점에 불과했다. (P14-15)


애초에 나로 하여금 아버지의 집을 떠나게 했던 사악한 힘, 큰 재산을 모아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지게 했던 그 힘 때문에 나는 모든 훌륭한 조언이나 애원, 심지어 아버지의 명령도 귀에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게 뭐였든 바로 그 사악한 힘이 다시 내 앞에 있는 길 가운데서도 가장 불행한 길을 선택하게 했다. 아프리카 해안으로 가는 배에 오르고 만 것이다. 뱃사람들 사이에 기니라고 알려진 곳으로 떠나는 배였다.

배를 탈 때마다 선원으로 일하지 못했던 건 큰 불행이었다. 만일 그랬더라면 몸은 평균 이상으로 고달팠겠지만, 여행을 하며 선원이 해야 할 일을 배우고 여러 가지 요령을 익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더라면, 선장까지는 몰라도 항해사나 부선장 정도는 될 능력을 갖출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늘 상대적으로 불행한 길을 택하곤 했고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머니에 돈도 있고 괜찮은 옷까지 걸쳤던 터라 나는 배에 오르면 늘 신사 행세를 하곤 했다. 그래서 배에서는 아무런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냈고,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P64)


그런 난리 속에서 항해사가 묶어놓은 보트를 풀더니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뱃전 너머 바다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열한 명이나 되는 우리는 모두 보트에 옮겨 타고는 신의 자비와 거친 바다에 목숨을 맡겼다. 폭풍이 상당히 약해지기는 했지만 해안을 때리는 파도는 여전히 끔찍할 정도로 거셌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폭풍이 부는 바다를 일컫는 말처럼 그야말로 ‘광란의 바다’라 할만 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파도는 보트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모두 물에 빠져 죽게 되리라는 건 너무 뻔했다. 돛을 펴려 해도 보트에는 그런 게 달려 있지 않았다. 설령 돛이 있었더라도 아무런 소용도 없었을 것이다. 육지 쪽으로 열심히 노를 저으면서도 마치 곧 처형당할 사형수들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해안에 가까워지면 보트가 내려치는 파도에 수천 개로 조각나리라는 걸 모두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더없이 진지한 태도로 목숨을 신께 맡긴 상태였다. 바람은 우리를 해안으로 몰아갔고 우리는 육지를 향해 노를 저으며 스스로 파멸을 앞당기는 중이었다. (P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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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며 바닷가를 걸어다녔다. 그리고 내가 정말 구원을 받아 살아남은 건지 몸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빠져 죽고 나만 홀로 살아남은 게 틀림없었다. 그 이후 배에 함께 탔던 사람들이나 그들이 남긴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이런저런 모양의 모자 네 개와 짝을 잃은 신발 두 짝만 밀려 올라왔을 뿐이다.

좌초한 배로 눈길을 돌렸지만 부서지는 파도와 물거품이 너무 거대해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워낙에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다. 세상에! 내가 어떻게 이렇게 먼 해안까지 올 수 있었단 말인가. (P102)


내게 힘을 주는 사실이 세 가지 있었다. 첫째, 바다가 매우 잔잔했다. 둘째, 밀물이 해안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셋째, 약하긴 하지만 육지 쪽으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원래는 보트에서 쓰던 부러진 노 두세 개와 연장통에 든 연장 외에 찾은 톱 두 개, 도끼 하나 그리고 망치 하나를 뗏목에 추가로 싣고 출발했다. 한 1마일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단지 원래 처음 도착했던 모래밭에서 제법 떨어진 곳을 향하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말이다. 뗏목이 향하는 쪽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앞쪽 어딘가에 작은 만이나 강어귀가 있어 그곳을 항구로 삼아 짐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P108)


우선 내 상황에 필요한 몇 가지 조건을 미리 정해 두기로 했다. 첫째, 조금 전에도 말했듯 위생적이고 물이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둘째,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어야 했다. 셋째, 사람이든 짐승이든 굶주린 존재들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넷째, 혹시 신의 가호로 배가 나타날 경우 구출되기 쉽도록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이어야 했다. 섬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미리 정한 조건에 맞는 장소를 찾던 나는 높이 솟은 어떤 벼랑 옆에서 작은 평지를 발견했다. 평지와 벼랑이 만나는 곳은 벽처럼 경사가 급해서 누구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벽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는 마치 문이나 동굴 입구처럼 움푹 파인 곳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동굴이 있거나 바위 안쪽으로 들어갈 곳이 있지는 않았다. (P117)


우선 내가 처한 상황이 암담하기만 했다. 내가 표류한 섬이 있는 곳은 내가 탄 배가 지나던 항로 주변이 아니라, 배가 맹렬한 폭풍에 밀려 원래 가던 길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 만난 장소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나는 사람들이 교역을 위해 오가는 항로에서 뚝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내가 그렇게 적막한 곳에서 외로이 죽어야 하는 건 하늘이 정하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신께서는 스스로 만드신 존재를 이렇게 완전히 파멸시켜 불행하게 만들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홀로 남게 함으로써 철저히 버리실 수가 있는가? 이런 삶에 감사를 드리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P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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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벽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되었고, 벽을 매우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기로 했다.

참고. 이 벽은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미 말한 적이 있는 내용은 일기에서 제외한다. 벽을 세우고 마무리를 하고 보강하는 데 적어도 1월 3일부터 4월 14일까지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만 말하면 충분할 듯싶다. 그렇게 오래 걸렸지만 지름이 8야드인 반원 모양으로 총 길이는 24야드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반원의 중심에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P139)


그런 상황에 마주친 내가 얼마나 놀라고 혼란스러웠는지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종교적인 사고에 기반을 두고 행동해 본 적이 전혀 없었다. 사실 내 머릿속에는 종교적인 개념은 거의 들어 있지 않았으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단지 우연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흔히 사람들이 말하듯 신이 내키는 대로 만든 결과라고 믿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가 무엇인지, 그분은 어떻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장하시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곡물이 자라기에 알맞지 않은 곳에서, 그것도 어떻게 씨를 뿌려졌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움트는 싹을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셔서 씨도 뿌리지 않은 곳에서 곡물이 자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렇게 하신 이유는 오직 그 황량하고 불행한 곳에서 내가 먹고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P142)


모든 게 당연한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하나님의 뜻이라며 독실한 믿음으로 감사하던 마음이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나는 기적이라도 벌어진 거처럼 기묘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야 마땅했다. 열 개도 넘는 알곡이 멀쩡하게(나머지는 쥐들이 모두 못쓰게 해버린 상태였다.) 자루에 남아 있었다는 건 나로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거나 미리 정해 두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높은 바위 옆 그늘진 곳에 아무렇게나 던진 씨앗에서 어떻게 그렇게 금방 싹이 터 땅을 뚫고 나올 수 있었는지도 놀랍게 느껴졌다. 만일 그때 다른 곳에 떨어뜨렸다면 씨앗들은 모두 말라버리거나 못 쓰게 되었을 것이다.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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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을 겪고도 너는 참회할 줄 모르는구나, 이제 널 죽여야겠다.”

그렇게 말을 하더니 나를 죽이려고 손에 든 창을 들어 올렸던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그렇게 끔찍한 광경을 본 내가 얼마나 두려웠는지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록 꿈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 끔찍한 기분이었다는 말이다. 잠에서 깨어나 내가 겪은 일이 그저 꿈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에도 어떤 기분이었는지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애석하게도 종교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때는 8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이어진 끔찍한 바다 생활, 그리고 나와 똑같은 사악하고 세파에 찌든 사람들과 나눈 뻔한 대화 때문에, 아버지 덕택에 받은 좋은 교육은 모두 잊어버린 상태였다.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우러러 공경하거나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선한 일을 해보려는 욕심이나 악한 일을 멀리하려는 양심도 없는 어리석은 마음만이 온통 나를 지배했다. 나는 다른 평범한 뱃사람들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경솔하며 사악한 존재였다. 위험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살아난 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P154-155)


“주여! 비참한 제 꼴을 보십시오! 병에 걸린다면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죽을 게 뻔합니다. 저는 어쩌란 말이십니까?”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고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가 해주셨던 훌륭한 조언이 머리에 떠올랐다. 처음에 말했지만, 그 조언은 이제 예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말해 내가 바보처럼 고집을 부린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않을 것이고, 나는 훗날 아버지의 조언을 무시했던 일을 오랫동안 돌아보게 될 거라 하셨다. 후회할 때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을 수 있다고도 하셨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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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내게 왜 이러시는 걸까? 나는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대접을 받는가?

그 물음이 마치 불온한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금세 양심이 고개를 들었다. 생각건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철면피로다! 그대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묻는단 말인가! 끔찍하게 낭비한 인생을 뒤돌아보고 그대가 하지 않은 일은 무엇인지 되물어 보라. 그대가 이미 오래전에 죽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라. 그대가 야머스 정박지에서 빠져 죽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해적들에게 배를 빼앗길 때 싸움에 휘말려 죽지 않은 건 왜일까? 아프리카 해안에서 맹수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건 왜지? 아니면 바로 이곳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죽을 때 바다에 빠져 죽지 않은 건? 지금 스스로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고 묻는가?’ (P160-161)


7월 4일. 아침부터 성경을 펼쳐들고 신약성서부터 시작해서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과 밤에 조금씩 읽기로 스스로 정했다. 얼마만큼 읽을지 미리 정하지는 않았고 그저 내키는 만큼 읽었다. 진지하게 성경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깊게, 진심으로 내가 과거에 얼마나 부도덕하게 살았는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전에 꾸었던 꿈에서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많은 잘못을 하고도 후회하지 않다니.’ 그 말이 머리에서 심각하게 떠올랐다. 참회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하나님께 진정으로 빌던 나는 바로 그날, 신의 뜻에 의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다.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나는 책을 던지듯 내려놓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마음을 다해 미칠 듯한 기쁨에 빠진 듯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시여! 임금과 구주이신 예수님이시여, 절 참회케 하소서!”

태어난 후 처음으로 제대로 기도를 올린 게 그날인 것 같다. (P165)


그렇게 계속 전진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서쪽으로 내리막인 탁 트인 지역이 나왔다. 내가 선 곳 옆 언덕가에서 신선한 물이 조그맣게 솟아나와 반대편인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주변 지역에는 산뜻하고 푸릇푸릇한 식물들이 우거졌으며 모든 게 봄철처럼 풍성하고 푸른 모습이어서 마치 잘 가꾼 정원처럼 느껴졌다.

멋진 골짜기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서 그 모든 게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여전히 괴로운 마음 한쪽으로 은밀한 즐거움이 솟기도 했다. 나는 그 땅의 왕이며 주인이었고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소유권이 있었다. 만일 어디론가 옮겨 갈 수만 있다면 영국에 영지를 가진 다른 영주들처럼 온전히 후대에 물려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P169)


그러나 나는 전혀 새로운 생각을 스스로 단련하기 시작했다. 매일 성경 말씀을 읽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 위로가 될 내용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아침, 매우 울적한 마음으로 성경 책을 열었다가 이런 구절을 보게 되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갑자기 그 구절이야말로 내게 하는 소리처럼 생각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구절이 그런 식으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눈에 띌 수 있단 말인가?

“만일 하나님이 날 버리시지만 않는다면 세상이 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한들 문제 될 것이 무엇이며, 아무리 나쁜 결과를 얻는다 해도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반대로 세상을 모두 가진다고 해도 그 대신 하나님의 호의와 축복을 잃는다면 그런 큰 상실을 다른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상황에 있는 것보다 섬에 홀로 버려진 채 사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날 섬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P185-186)


그렇지만 그런 연장에 만족하고 인내로 견뎌내며 비효율적인 상황을 참아냈다. 씨앗을 뿌린 후 땅을 고를 써레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무겁고 큰 나뭇가지를 사용했다. 밭을 고른다기 보다는 긁어대는 꼴이었다.

곡식이 알곡을 맺어 수확을 할 때까지 울타리를 치고 짐승들로부터 지키고 거둬들인 다음, 집으로 가져와 탈곡을 해서 보관하기까지 얼마나 필요한 게 많은지는 이미 설명한 바가 있다. 그다음으로는 곡식을 갈려면 맷돌이 필요했고 걸러낼 체도 있어야 했으며, 빵으로 만들려면 효모와 소금이 필요했고, 구울 화덕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나는 그런 연장들 하나 없이 끝까지 해냈다. 곡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P1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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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을 끝없이 공부하며 지키는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도움을 받아 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전혀 다른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온갖 사물에 품었던 셍각들이 모두 달라졌다. 세상은 이제 내게서 멀리 떨어진 곳이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이었다. 나는 세상에 대한 기대도 미련도 모두 버렸다. 다시 말해 내게 세상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곳이었다. 마치 내세에서 살다가 떠나온 곳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말한 것처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섬에서 살면서도 무엇보다도 세상의 사악함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도 내게는 없었다. (P204)


한마디로 말해 온갖 사물의 성질을 겪어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은 우리에게 소용이 있는 만큼만 좋은 것이었다. 무엇이든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쌓아둔다고 해도, 결국 우리가 쓰는 만큼만 좋은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제일 탐욕스러운 수전노라고 해도 만일 나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면 욕심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가진 게 너무 많아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갖지 못한 것 말고는 욕심이 생길 틈이 없었다. 갖지 못한 것들은 시시한 물건들이지만 간절히 필요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게는 돈이 금화와 은화를 합쳐 36파운드 정도 있었다. 아, 그렇게 귀찮고 한심하고 쓸모없는 물건이라니!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돈을 한 웅큼 주고 담배 파이프 열두 개를 얻거나 곡식을 갈 수 있는 손 맷돌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속으로 가끔 했다. 아니, 쌓인 돈을 몽땅 주고서라도 영국에서 난 순무나 당근 씨앗 6페니어치를 얻거나 또는 콩 아니면 잉크 한 병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만족했을 터였다. 그때는 돈이 있어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었고 도움이 될 것도 없었다. 돈은 그저 서랍 속에 들어 있었고, 우기가 오면 동굴 속 습기에 점점 곰팡이만 슬고 있었다. 서랍이 다이아몬드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해도 별로 다를 건 없었다.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가치가 없었다. (P205-206)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하나님의 배려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아무리 힘들고 불행하더라도 스스로 처한 상황에 더할 나위 없는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불행한 일을 만나면 ‘나처럼 불행한 이가 또 있을까?’ 라고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생각해 보라고 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둘러보고, 만일 하나님께서 정하신다면 자신이 얼마나 더 나쁜 상황에 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P207)


여러 번의 기적이 연이어 일어나 매일 먹을 수 있게 된 빵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려야만 했다. 내가 음식을 구해 먹고사는 것은 기적, 그것도 하나님이 까마귀들을 명하여 엘리야를 먹이는 일 만큼이나 큰 기적이었다. 아니, 수많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 세상 어디라 해도 이 섬보다 내가 표류하기에 더 좋은 곳은 없었다. 어떤 면으로 보면 고통을 안겨 주는 다른 사람들도 없었고, 굶주린 짐승도 살지 않았으며 내 목숨을 노리는 사나운 늑대나 호랑이도, 내게 고통을 줄 독을 품은 동물도, 그리고 날 잡아먹을 야만인도 섬에는 없었다. (P209)


그 사건은 어느 날 정오 무렵, 배로 가던 길에 벌어졌다. 해변에 찍혀 있는 사람의 맨발 자국을 본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모래밭에 난 발자국은 너무나 선명했다. 나는 마치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아니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서 있었다.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귀를 기울이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다. 좀 더 멀리 둘러보려고 높은 지역으로 올라가 보기도 했다 해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찾아봤지만 발자국은 단 한 개뿐이었다. 다른 발자국을 찾지 못한 나는 다시 그리로 돌아가서 혹시 주위에 다른 흔적이 있는지, 아니면 혹시 헛것을 보지는 않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발자국은 발가락과 뒤꿈치를 포함해서 너무나도 선명한 발바닥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 자리에 찍힌 것인지는 알 수 없었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온갖 생각을 해가며 정신이 나가 버린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나 무서운지 발밑의 땅바닥이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두세 걸음 걸을 때마다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덤불과 나무가 이상한 모양으로 보였고, 멀리서 본 나무 밑동이 사람인 줄 알고 놀라기도 했다. 온갖 모양이 어찌나 두려운 상상을 자아냈는지, 머릿속에서 순간마다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떠올랐는지는 도저히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집으로 가는 내내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생각이 내내 머리를 채웠다. (P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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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을 발견한 해변에서 매우 멀리 떨어졌는데도 당황이 될 정도로 자꾸 무서운 기분이 들었고 웬지 불길한 생각만 머리에 떠올랐다. 가끔은 악마가 틀림없다고 상상하기도 했고 그런 추정을 뒷받침하는 그럴듯한 이유도 있었다. 악마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라면 어떻게 이런 곳에 나타날 수가 있겠는가? 그들이 타고 온 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째서 다른 발자국은 하나도 남지 않았을까? 진짜 사람이라면 여기에 오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P236)


변화무쌍한 신의 섭리에 달린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묘한 것인가! 자신이 처한 주변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감정이 이렇게 저렇게 바뀌게 되는 비밀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오늘 사랑하던 걸 내일이면 미워한다. 오늘 찾던 걸 내일이면 피한다. 오늘 갈망하던 걸 내일이면 두려워한다. 아니, 생각만으로 걱정에 벌벌 떤다. 발자국을 발견했을 때 내 상황이 그런 생각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것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내가 처한 괴로움이란 오직 인간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후 홀로 남아 끝없는 바다에 둘러싸인 채 다른 모든 인간들과 만나지 못하고 스스로 침묵의 삶이라고 부르는 형벌을 치르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마치 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시거나, 스스로 만드신 모든 생명체 사이에 나타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나와 같은 종인 인간을 본다는 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일이며, 하나님께서 제일 큰 축복을 내려주시는 일이며, 날 구원해 주시는 최고의 축복 바로 다음 가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혹시라도 다른 사람을 보게 될까 봐 두려워하며 떨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섬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이 말없이 서 있는 모습을 보거나, 혹시 그 사람의 그림자라도 보게 되는 날이면 땅속 깊이 가라앉아 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태세가 아닌가!

순식간에 변하는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P238-239)


그들을 죄인으로 판단하고 처단할 수 있는 권한이 어찌 내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벌주지 않으셨으며, 그들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서로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내리는 집행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자들이 내게 지은 죄는 무엇이며, 그들이 서로 상대를 가리지 않고 피를 뿌려대며 싸우는 상황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니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심판을 내리실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야만인들이 그런 행동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 확실했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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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에서 온갖 잔학한 행동을 일삼고 수백만 명을 학살한 스페인 사람들의 행동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었다. 학살당한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야만인인 데다 우상에게 사람의 몸뚱이를 바치는 등 잔인하고 야만스러운 몇 가지 의식을 관습으로 행하긴 했지만, 스페인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당시 식민지에서 원주민들을 뿌리 뽑듯 죽이는 일에 대해서 심지어 스페인 사람들마저도 더할 나위 없이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던가, 그리고 유럽의 다른 모든 기독교 국가들도 그런 행위는 학살이라 할 수 있으며 끔찍하고 비정상적인 잔인성을 드러내는 짓으로,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변명을 늘어놓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았다. (P257)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가며 맞게 되는 위험한 순간에 하늘이 내려주신 자비로움과 처음 마주했을 때 머리에 떠오르곤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구원을 받고 있는가, 의심에 빠져 이리 가야 할지 저리 가야 할지 머뭇거리는 순간에(흔히 진퇴양난이라고 부르는) 한쪽으로 가려는 우리를 잡아 이끄는 은밀한 암시는 또 어떤가, 아니, 기분이나 성향으로 봐도 또는 아무리 곰곰이 따져도 어디로 가야 할지 뻔한 상황에서도,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고 어떤 힘을 지녔는지도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우러나와 강제로 반대편 길을 택하게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나중에 보면 우리가 갔어야 했던 그 길,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그 길은 파멸로 이르는 길이었음이 밝혀지곤 한다. 그런 생각을 여러 번 거듭한 나는 나중에는 스스로 지킬 확실한 규칙을 만들었다. 언제든지 뭔가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때 또는 이리로 가야 할지 저리로 가야 할지 골라야 할 때, 그런 식의 은밀한 암시나 마음이 기울어지는 느낌이 있다면 무조건 그것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P26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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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마치 정말 전혀 위험하지 않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매우 유익한 생각이 많이 떠올랐는데, 특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이란 한없이 선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보고 알 수 있는 범위를 매우 좁게 해주셨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깨닫는다면 정신이 혼란스러워지고 마음이 약해질 만한 수천 가지 위험의 한가운데를 걸으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위험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차분하고 평온하게 지낼 수 있다. (P286-287)


가능하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야만인 하나를 손에 넣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문제는 그 결심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결정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그럴듯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나는 그저 야만인들이 해변에 나타나는지 자주 나가서 감시하고 나머지는 상황에 맡겨 두기로 했다. 혹시 기회가 온다면 실행 방법은 그때 가서 되는대로 하면 될 것 같았다. (P291)


세상에 사는 많은 그분의 피조물들은 스스로 받은 재능과 정신적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힘과 이성, 정서와 친절함, 은혜를 느끼는 감정, 잘못을 보면 느끼는 분노, 감사하는 마음, 진실함, 충성심 그리고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남의 선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그들에게도 부여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런 능력들을 발휘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들은 부여받은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오히려 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능력에다 성령이라는 위대한 가르침의 빛,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까지 추가로 갖고 있었다. (P302)


오랫동안 프라이데이와 대화를 나누며 그가 변치 않는 마음으로 날 따르고 있으며, 어떤 수를 써도 내게서 떠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 건 함께 살던 사람들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과 내가 함께 가서 사람들을 바꾸어놓으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그럴 의향도 의욕도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전에 말했듯 나는 여전히 섬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깊게 하고 있었다. 프라이데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들은 이야기, 이를테면 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열일곱 명이나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적거리지 않고 프라이데이와 일을 시작했다. 여행에 사용할 커다란 카누를 만드는 데 적절한 나무를 찾는 일이 우선이었다. 섬에는 작은 함대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나무가 많았다. 그것도 카누가 아니라 제법 큰 배들을 만들 수 있을 만큼 굵은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배를 만드는 일이 끝나면 물에 띄울 수 있을 만큼 물과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여야 했다. 내가 맨 처음에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었다. (P326)


내 섬에 사람이 늘어났고 스스로 보기에도 날 따르는 신민이 너무 많았다. 가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꽤 왕처럼 보인다는 생각에 즐겁기도 했다. 무엇보다 섬 전체가 내 소유였으니 통치권은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온 국민은 내게 완전히 복종했다. 나는 절대적인 군주이자 법률을 세우는 이였다. 그들은 모두 내가 목숨을 구해 준 사람들이었고 혹시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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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앞에 있는 세상 가운데 조금밖에 보지 못한다. 우리는 세계를 만드신 위대한 조물주에 즐거운 마음으로 기댈 만한 이유가 있다. 그분은 스스로 만든 생명을 완전한 궁핍한 상태로 두시지 않으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늘 감사해야만 할 뭔가를 주시기 때문이다. 가끔 구원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아니, 어떤 때는 파멸을 불러오리라 생각했던 대상이 구원해 주기도 한다. (P359)


배를 완전히 되찾자마자 선장은 총을 일곱 발 쏘도록 지시했다. 성공했을 경우 그렇게 신호를 보내기로 나와 미리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도록 앉아서 해안을 바라보고 있던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했다는 신호를 확실하게 본 후에 나는 몸을 눕혔다. 너무나 피곤한 하루를 보낸 탓에 곤히 잠들었다가 총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벌떡 일어선 나를 누군가 “총독님, 총독님.” 하며 불러대는 소리가 들렸다. 선장의 목소리였다. 서둘러 바위 벽 꼭대기로 올라갔더니 그곳에 섰던 선장이 배를 가리키며 나를 양팔로 껴안았다.

“내 친구이자 구원자시여, 저기 당신의 배가 있습니다. 저 배는 물론 배에 탄 사람들과 실려 있는 모든 게 당신 것입니다.”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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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섬을 떠났다. 배에 올라 달력을 확인했더니 1686년 12월 19일이었고, 섬에서 산 지 28년 하고도 두 달 그리고 19일이나 지난 후였다. 살리에 있는 해적들 소굴에서 처음으로 탈출했던 날과 같은 달 같은 날에 두 번째 감금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 배를 타고 길고 긴 항해를 거쳐 나는 1687년 6월 11일 영국에 도착했다. 고국을 떠난 지 35년 만의 일이었다. (P392)

영화 로빈스 크루소 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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