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수학교육 에세이, 네모돌이 12편
사실 네모돌이의 글을 처음 쓸 때는, 네모돌이의 교육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잘 알 수 없던 때였다. 다행스럽게 이 글을 쓰고 좀 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네모돌이의 교육방향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지엽적인 교육방법만 고집하다가 결국 실패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일단 가장 힘든 고비는 넘긴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식으로 아이들이 나를 괴롭혀줄지 잘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또 고민해 보도록 하자. 그리고 혹시 아이 교육을 할 때 내 방식을 참고하시려 하는 분들에게 미리 말씀드리자면,
교육에 절대적으로 성공하는 방법은 없다
나는 네모돌이의 상황을 고려한 끝에, 지엽적인 학습방법을 쓴 것이 아니라 먼저 집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데 중점을 뒀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저 방식이 독이 되거나, 아니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아이의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사항은 아이의 상황이다. 머리가 바빠서 이해를 못 하는 건지, 아니면 공부에 흥미가 없는 건지, 아니면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자세에 문제가 있는지,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기대를 온전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으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가 볼 수 없다. 아이가 어떻게 컸으면 하는 자신의 왜곡된 가치관으로 아이를 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문제점으로 보인다. 게으르거나, 정직하지 못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는 이 모든 것들을 감정 없이 그냥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정리해야 한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을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아이를 보는 것이 어려우면 그냥 상담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는 것이 훨씬 낫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교육실패의 원인이 부모님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보통 아이의 상황에 대한 파악이 끝나면, 이제 교육방법을 고민하면 될 것 같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게 바로 이 글을 쓰는 이유인데, 교육을 하는 사람, 즉 나 자신에 대한 파악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르치는 사람이 교육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쓸 수 있는 방법이 한정되어 있다. 설사 교육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 있다. 일단 내 경우를 보면, 나는 엄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나와 같이 있으면 애들은 긴장하지 않고 퍼질러진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선생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보통의 부모라면, 일단 자기 자식의 교육에 있어서 감정적이 되지 않는 일이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의 교육에 적합한 방법을 알고 있더라도 실천할 수 없다.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 안 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알고 있어도, 실제로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없는 방법은 하려고 노력하면 안 된다.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시도하다가 서로에게 더 큰 상처만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자기자신을 너무 신뢰하지는 말도록 하자.
그럴 때는 그것을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교육을 맡기거나, 아니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방법을 찾아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이게 내가 쓴 방법인데, 실제로 수학교육 자체는 학교 선생님에게 맡기고, 나는 네모돌이가 하고 싶은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다.
네모돌이가 유튜브 제작하는데 컨텐츠를 지원해 주거나, 애니 덕질하는데 필요한 굿즈를 구입하기 위해 서울이나 거리상 먼 동네까지 태워다 주거나, 이런 일 말이다. 물론 나와 같이 게임을 하기 위해 문제 푸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 주고 있긴 하지만, 그건 교육이라고 보기엔 좀 민망한 수준이다.
그래야만 네모돌이가 행복한 상태에서 모든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네모돌이에게 수학교육을 시키겠다고 뭔가 지엽적인 방법을 더 쓰려고 했다면, 아마 네모돌이는 더 짜증을 냈을 확률이 크다. 나중에 네모돌이가 나한테 제대로 된 수학지식을 익힐 때가 오긴 하겠지만, 지금은 그 때가 아니다. 모든 것에는 준비과정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부터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면 장님이 이끄는 지팡이를 잡고 낭떠러지로 가는 것과 비슷한 결과가 나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