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2017년 10월 3일에서 10월 13일
모든 것이 갑작스러운 여행이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언니가 파리 시내 1 존에 집을 샀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까다롭고, 가리는 것 많은 언니가 집을 샀다니 엄마는 한달음에 짐을 꾸리셨다.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이유였다. 엄마의 원래 계획은 20일은 프랑스에서 보내고 10일은 영국에서 나와 함께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일주일 다른 나라를 함께 여행할 계획은 언니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젊은 시절 유학을 떠난 그녀는 엄마와 같이 여행을 다녀본 적이 많지 않았다. 언제나 마음 한편에 쌓여 있던 미안함을 이번 여행을 통해 풀 수 있기를 바랐다.
“너희들이랑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
엄마는 들뜬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이가 80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설렘이 묻어났다. 엄마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크로아티아처럼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르는 멀고 낯선 나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우신 듯 `내 나이가 어때서`를 흥얼거리셨다.
나와 길동무는 영국 런던에서, 엄마와 언니는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하여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에서 만나 차량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70대에 엄마는 차량 없이 배낭여행을 즐기셨다. 이제는 길을 잃거나 낯선 곳에서 오래 걸어 다니시기엔 힘에 부치신다고 하셨다.
“에휴 여행도 좋지만 이제 그만 다녀야겠다”
80대에 접어드실 때쯤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엄마 해외 나가서 차량을 렌트해서 다녀도 돼”
그 말에 눈이 반짝이신다. 장거리 비행기를 혼자 타시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휠체어 서비스를 받는 것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로 받아들이시는 듯했다. '노약자 서비스’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있어 신청을 망설이다가, 80세가 되어서야 신청하게 되었다. 지금은 더 일찍 신청하지 않으신 것을 후회하시는 듯했다. 다른 나라 입국 신고 시 영어가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도 한국말로 대답해도 잘 알아듣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웃는 얼굴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여권과 돌아가는 비행기 일정을 같이 내밀면 입국 심사에서 그냥 통과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신다.
새벽 5시, 영국 케트윅(Gatwick) 공항에 도착했을 때, 모나코 항공사는 자금 부족으로 항로를 사지 못하였고 항공 일정이 전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공항은 출발하지 못한 여행객들의 가방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앉아서 기다릴 만한 좌석은 찾을 수 없었다. 크로아티아에 가는 일은 단순히 여행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모셔오는 일이기도 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하는 상황과 급박함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았다. 다행히도 곧바로 가장 빠른 크로아티아행 항공권을 예약할 수 있었다. 직항은 없었고 경유해서 4시간 비행이면 나쁜 일정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예약했지만 경유지인 스플리트에서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자그레브에 예정보다 훨씬 늦은 저녁 10시 30분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려 차량을 찾으러 갔지만, 렌터카 업체가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미 문을 닫았다. 예약은 캔슬되었고 차량 없이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낯선 공항에서 막막하게 서 있었다. 이 여행 과연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