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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Dec 24. 2024

두려움에 매몰되기 보다는

두려움에 매몰되기 보다는 

눈이 스르륵 떠진 일요일 아침. 어제는 무척이나 생산적인 날을 보내 만족스러운 하루였지만 조금은 무리했나 싶을 정도로 피곤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기에 오늘은 일찍 일어나지 못해도 어쩔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알람 없이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니. 이렇게나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 있다니 복권에 당첨된 것만 같다. 

덕분에 나에겐 수영으로 하루를 시작 할 수 있는 옵션이 생겼다. 주말은 7시 15분부터 8시 45분까지 할 수 있다. 덕분에 30분정도 밍기적거릴 수 있는 여유에 행복 예감 가득이다.

과거의 나는 언제나 전투적이었다.

예를 들어 운동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나의 상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스스로를 질책하고 채근하기 바빴다. 학교에 근무할 때 출근 시간이 8시까지였고 문래동에서 강남까지 출근 시간은 차로 (막히지 않을 때) 30분 거리였는데 학교 근처 수영장 6시 매일 반을 다닌 적이 있다. 5시 반에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매일 전투하듯 수영장에 다녔던 나는 당시 한창 이혼 소송 중에 있었고 기간제 교사에 대한 커리어 고민, 경제적 어려움과 아이와도 떨어져 지내고 있어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마음의 여유가 없고 체력도 바닥인 데다가 여러 일로 마음이 한창 베이고 아프던 시절이니 스스로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힘든 일이 일어나곤 있지만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찾고 힘든 일이 나를 무너뜨릴 수 없게끔 심리 상담이나 코칭과 같은 정서적 지원을 받았을 테지만 과거의 나는 그런 힘든 일을 겪는 나를 용서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행복이나 정서적 지원 같은 걸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말이 아닌 상태에서 스스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상태였으니 이런 시도들이 오래갈 리 없었다. 그럴수록 흐지부지 그만두는 나에 대해 혐오감은 깊어져만 갔다.

나를 질책하는 습관은 꽤나 오래 지속되었는데 특히 병가 기간엔 더욱 심해졌다. 내가 아프게 된 것의 책임을 결국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렸고 오랫동안 나를 벌했다. 다행히 나에게 주어졌던 3년이란 시간 동안 과거의 여러 사건으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 자신과 마주한 덕분에 드디어 스스로를 이해하고 그간의 일들을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었다.

수영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런 과거의 시절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지금 나는 거창하게 하러 가는 게 아니라 20분도 채 안 돼 물 밖으로 나온다. 수영을 오래 하신 분들이라면 '에게게 겨우 그만큼 하러 아침부터 수영하러 나온다고?' 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운동량이다. 과거의 나라면 그런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나를 비난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의 현재 목표는 아침에 일어나서 수영장에 가서 그저 몸을 잠깐 담그고 샤워하고 나오는 것이다. 그동안 아파서 꼼짝할 수 없었기에 운동 자체가 큰 부담이었고 나의 무능력으로 이어지는 그런 부정적인 대상이었기에 그간 그런 것에 길들여진 몸을 부지런한 몸으로 바꾸고 긍정적인 경험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수영이 운동이라기보다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쯤으로 만들고 싶은 게 현재 나의 목표다.

적당히 수영하고 나와 샤워하던 도중 얼마 남지 않은 바디 솝을 쥐어 짜내다가 그만 비누 한 방울이 왼쪽 눈에 들어가는 참사가 벌어졌다. 코도 아니고 볼도 아닌 왼쪽 눈에 정통으로 들어가다니 덕분에 샤워 시간이 길어졌다.

간밤의 업데이트로 차 충전이 전혀 되지 않았다. 가까운 충전소로 가는 길, 가뜩이나 우중충한 날씨에 자잘하게 짜증이 난 나를 달래기 위해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로 향했다.

차가운 녹차 한 잔을 들이킬까?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개운하고 시원해 내 마음도 탁 트일 것 같다. 아냐, 아침이니 카페인 들어간 음료는 피해야 할 것 같은데. 음 그래도 오늘은 녹차 마시고 싶다, 흠, 막상 드라이브 스루의 마이크 너머로 들려오는 'What can I get for you?' 라는 질문에 고민 끝 나의 선택은 시럽을 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소이 라떼. 북미 두유는 그 자체로 달큰해서 고소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돈다. 할로윈이 가까이에 왔음을 알 수 있는 스산한 바람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아침이 어쩐지 런던의 흐린 날씨와 닮아 있어 선택한 메뉴다. 결국 고민하다 내린 선택은 늘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니,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오늘이다.

배터리를 충전 시작과 함께 한 모금, 왜 스타벅스 종이컵의 첫 모금은 이렇게나 뜨거울까? 입술에 닿은 플라스틱 컵 뚜껑이 뜨거워 한 모금 들이킬 용기가 나지 않아 나에게 언제나 첫 모금은 김부터 빨아들이는 것이다.

하루에도 이따금씩 말도 안 되는 두려움이 올라온다.

그때마다 그 두려움에 매몰되기보다는 두려움이 나의 인생을 조종하게 둘 순 없다고,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두렵다는 이유로 나의 소중한 미래와 현재를 희생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지난주는 이틀간 무기력에 넉다운 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과거의 무기력은 오늘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 오늘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새로운 날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라이팅게일

#병가일기말고 #활주일기_5

#You_Will_Never_Walk_Alone

#공황장애극복 #우울증극복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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