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애(十月愛)
토요일 아침부터 두근두근하다. 요즘은 뭔가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기대감에 사무친다.
토요일의 아침 수영 시간은 고맙게도 6시가 아닌 7시 15분부터다. 평소보다 조금은 느긋하게 일어나 준비할 수 있다. 우리집 뒷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 뒤로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풍경이 반갑다. 준비를 막 마치고 나서려는데 이런, 핸드폰 배터리가 5%네. 폰을 잠시 충전하면서 책을 읽는다. 거실 창을 뒤로 한 채 책을 펼치니 고맙게도 아침 햇살이 훌륭한 독서등 역할을 해준다. 아직은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의 햇빛이 종잇장 위로 내려앉아 오묘한 은빛이 감돈다. 좋아하는 책과 빛의 조화가 어쩐지 감동적이다. 이 분위기 대체 뭔데!?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하루인데 이미 나는 오늘과 사랑에 빠졌다.
요즘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읽고 있다. 사실 나는 '1984'니, '동물농장'이니 그의 대표작을 기사나 다른 책의 인용구에서 접했을 뿐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의 솔직하고 거침없으면서도 가식 없음, 그의 용기와 애정이 듬뿍 담긴 신랄한 비판에 섹시함을 느낀다. 이것이 옳다 싶으면 뒤도 안 돌아보며 강한 신념으로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 했을 뿐 아니라 글도 본인이 옳다 믿고 판단되면 해당 신념에 반대하는 이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의견을 내는 데 문제가 없는 그가 너무 멋지다. 내가 사랑하는 영국여인인 Karen Floyd 은 동의 안 할지도 모르지만 내 눈엔 얼굴도 잘생겼다.
얼마 전 한국에서 책을 주문하면서 평소에 관심 있었던 그의 에세이집을 구입했다. 나에겐 유명한 작품 자체보다 작가가 왜 그런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먼저 그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고 작품을 읽으면 책 읽기가 더욱 풍성해진다.
차를 몰고 집 앞 모퉁이를 도는데 이른 아침부터 눈 비비며 강아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항상 웃는 얼굴인 이웃집 아저씨가 저 멀리 보인다.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드니 그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오늘 하루 시작이 너무 좋은데? 게다가 약속이나 한 듯 내가 좋아하는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가 흘러나온다. 오늘은 멋진 영국 남자들 덕분에 행복하네.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세 번 만에 숨이 트였다. 숨이 트인 날은 첫 바퀴만 돌아도 알 수 있다. 숨쉬기가 힘들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다, 그래 오랜만이다 이 느낌.
왜 이제껏 나는 수영장에 오지 않았을까. 그래 나 수영 좋아했어. 이 자유로운 느낌 때문에. 얇은 수영복 속 안에 나를 넣어두고 오롯이 내 힘으로만 나아가며 중력에서 자유로운 느낌이 마치 하늘을 나는 것과 닮아 있어 좋아했다고.
한껏 개운해진 기분으로 수영장 밖을 나오니 가을 하늘이 청명하다.
왜 10월이 되면 이상하게 모든 게 갑자기 기다렸다는 듯이 선명해지는 걸까. 하늘은 별안간 난데없이 새파래지고 높아지며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해지고 모든 게 필터를 낀 듯 선명해진다. 세상이 이렇게나 예쁜 곳이었다고?
나무는 저마다 다른 색으로 갈아입는다. 그래 10월은 이런 계절이었지.
내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 보듯 감탄할 거야.
모든 건 반복되고 한결같아 지루해 보여도 세상은 늘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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