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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Dec 11. 2024

시월애(十月愛)

시월애(十月愛)




토요일 아침부터 두근두근하다. 요즘은 뭔가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기대감에 사무친다. 


토요일의 아침 수영 시간은 고맙게도 6시가 아닌 7시 15분부터다. 평소보다 조금은 느긋하게 일어나 준비할 수 있다. 우리집 뒷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 뒤로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풍경이 반갑다. 준비를 막 마치고 나서려는데 이런, 핸드폰 배터리가 5%네. 폰을 잠시 충전하면서 책을 읽는다. 거실 창을 뒤로 한 채 책을 펼치니 고맙게도 아침 햇살이 훌륭한 독서등 역할을 해준다. 아직은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의 햇빛이 종잇장 위로 내려앉아 오묘한 은빛이 감돈다. 좋아하는 책과 빛의 조화가 어쩐지 감동적이다. 이 분위기 대체 뭔데!?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하루인데 이미 나는 오늘과 사랑에 빠졌다. 


요즘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읽고 있다. 사실 나는 '1984'니, '동물농장'이니 그의 대표작을 기사나 다른 책의 인용구에서 접했을 뿐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의 솔직하고 거침없으면서도 가식 없음, 그의 용기와 애정이 듬뿍 담긴 신랄한 비판에 섹시함을 느낀다. 이것이 옳다 싶으면 뒤도 안 돌아보며 강한 신념으로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 했을 뿐 아니라 글도 본인이 옳다 믿고 판단되면 해당 신념에 반대하는 이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의견을 내는 데 문제가 없는 그가 너무 멋지다. 내가 사랑하는 영국여인인 Karen Floyd 은 동의 안 할지도 모르지만 내 눈엔 얼굴도 잘생겼다.


얼마 전 한국에서 책을 주문하면서 평소에 관심 있었던 그의 에세이집을 구입했다. 나에겐 유명한 작품 자체보다 작가가 왜 그런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먼저 그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고 작품을 읽으면 책 읽기가 더욱 풍성해진다.


차를 몰고 집 앞 모퉁이를 도는데 이른 아침부터 눈 비비며 강아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항상 웃는 얼굴인 이웃집 아저씨가 저 멀리 보인다.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드니 그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오늘 하루 시작이 너무 좋은데? 게다가 약속이나 한 듯 내가 좋아하는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가 흘러나온다. 오늘은 멋진 영국 남자들 덕분에 행복하네.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세 번 만에 숨이 트였다. 숨이 트인 날은 첫 바퀴만 돌아도 알 수 있다. 숨쉬기가 힘들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다, 그래 오랜만이다 이 느낌.


왜 이제껏 나는 수영장에 오지 않았을까. 그래 나 수영 좋아했어. 이 자유로운 느낌 때문에. 얇은 수영복 속 안에 나를 넣어두고 오롯이 내 힘으로만 나아가며 중력에서 자유로운 느낌이 마치 하늘을 나는 것과 닮아 있어 좋아했다고.


한껏 개운해진 기분으로 수영장 밖을 나오니 가을 하늘이 청명하다. 


왜 10월이 되면 이상하게 모든 게 갑자기 기다렸다는 듯이 선명해지는 걸까. 하늘은 별안간 난데없이 새파래지고 높아지며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해지고 모든 게 필터를 낀 듯 선명해진다. 세상이 이렇게나 예쁜 곳이었다고?


나무는 저마다 다른 색으로 갈아입는다. 그래 10월은 이런 계절이었지.

내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 보듯 감탄할 거야.


모든 건 반복되고 한결같아 지루해 보여도 세상은 늘 새롭다.



#병가일기말고 #활주일기_3

#시월애 #공황장애극복 #우울증극복 #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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