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장금 Sep 10. 2021

나는 평생 투잡을 했다 (월급을 벌어준 3가지 취미)

마지막 취미는 최고의 가치인 동시에 "최장금"이란 퍼스널 브랜딩의 구축


나는 평생 투잡을 했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직장의 월급만으로 생활한 적이 거의 없다.

투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음에도, 투잡을 안 한 날들이 없었다. 

작지만 늘 다른 수입이 있었고, 아주 가끔은 월급보다 부수입이 더 많을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가졌던 모든 취미는 돈을 버는 취미였다. 

아니, 누구나 가지고 있던 취미를 나는 돈으로 만들었다. 

 





1. 소싯적엔 유흥을 좋아했다. (라디오 작가)



친구와 술을 사랑했고 사람들 속에 지내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유흥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꽉 짜인 월급에 유흥비 지출까지 더하려니 늘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그렇다고 술을 끊을 수는 없고. ( 지금은 끊었다. 줄였나? ㅎ)


퇴근길 라디오를 듣는데 술자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사연으로 나왔다.

내가 겪은 에피소드와 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5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선물로 준다고 했다.  

뜨아아아. 눈이 번쩍했다. 저런 걸 라디오에 사연으로 보내면 선물을 주는구나. 

내 사연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당장 보내봐야겠다.

그렇게 처음 보냈던 사연이 운 좋게 전국의 방송을 타게 되었다.

사연을 보내고 까마득히 잊어 정작 내 사연이 방송되는 건 듣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시키지도 않은 택배가 집에 도착했다. 고가의 화장품이었다. 오잉, 주문한 적 없는데... 뭐지? 

뭔가 착오인 듯해서 발송처에 연락해보니 라디오 사연 채택 선물이라고 했다.

꺄악!!!




날이면 날마다 유흥을 즐기느라 누구보다 바쁜 삶에, 재치와 에피소드가 넘치던 시절이었다.

살면서 경험한 시시콜콜한 일들을 조금씩 각색해 각 라디오 방송국에 업로드했다.

그 시절은 술을 너무 좋아해서 퇴근하면 술 먹고 실컷 놀다 와서 글 쓰고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술의 감성이 더 해진 글은 채택률이 더 높았다. 3개를 적으면 2개는 무조건 방송되었다.

그렇게 수년간 자칭 라디오 사연 제조기로 생활했다.



내 일상을 이야기하 듯 방송국 홈피에 적어두면 상품권과 선물이 빵빵 오니 이만큼 좋은 취미가 있을까? 

남편은 생활비를 파격적으로 아낄 수 있는 내 취미 생활을 응원하진 않았어도 반대하진 않았다.

(술 먹고 많이 놀기. 집에 늦게 오기.)


아주 후회막급한 건 그 많은 일기를 방송국 홈피가 아닌 내 홈피에 적은 후
복사 붙여 넣기를 했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책 한 권은 족히 만들 수 있었던 방대한 에피소드들이 남았을 텐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다시 써라 해도 그때의 감성이 아니라 못 적겠고.
아이고 아까워라...


라디오는 사연 하나당 최소 5만 원 상당의 현물이나 지류 상품권이 기본이다. 

비싼 코너에 당첨되면 아주 고가의 선물이나 200만의 상품권을 줬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시절 우리집엔 한 달에 적으면 10회 많으면 30회 이상 택배나 등기가 왔다. 



냉장고에는 홍진경 만두가 떨어질 날이 없었고, 

다양한 온, 오프라인 상품권에 식료품, 화장품, 가전, 식기류, 신발, 옷, 차량용품, 자전거, 헬스기구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방송국에서 보내줬다. 

마트를 갈 필요가 없었다. 

생활비가 들지 않았고, 유흥비 역시 방송국에서 보내준 지류 상품권으로 충당했다. 

화장품은 물론 커튼과 침구를 바꿔야 할 때도 방송국에서 어김없이 보내줬다. 

가장 주력은 sbs 라디오의 컬투쇼였다.



평생 취미일 줄 알았는데 온 신경과 에너지가 술 먹고 노는데만 집중되어 있으니, 

어느 날 너무 지치고 공허한 생각이 들었다. 

몸도 많이 상하고 사람들 속에 피곤했나...?


그 속에 있을땐 몰랐는데 거시적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니 인생을 너무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 아침에 칼로 무 자르듯 유흥과 라디오 작가를 관뒀다.

너무 홀가분했다. 수입이 줄었지만 유흥을 같이 끊었기에 생활엔 별로 지장이 없었다. 


라디오 사연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재치가 사라진 것 같다.

매사 진지하다. 가끔 정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을 때 방송국에 사연을 업로드하는데

신기하게 단 하나도 채택되지 않는다. 감을 완전 잃은 것 같다. 


  


2. 유흥을 졸업하니 청명한 자연으로 눈이 돌아갔다. (프로 여행러 / 여행 서포터즈)



젊은 날들엔 도심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좋았다. 

현란한 불빛을 보면 발걸음마저 경쾌해졌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 네온사인보다 초록 초록한 산과 파란 바다에 맘이 더 설렜다.

여행으로 눈을 돌린 계기가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

여행을 갈 때마다 자연에 반해 스펀지처럼 스며든 것 같다. 

바쁜 시간을 쪼개 미친 듯이 여행을 다녔다. 가끔 여행이 아닌 가끔 집순이를 했다.

주말이면 잠에 취해 눈도 못 뜨는 아이를 배게채 안아 자동차에 싣고 전국을 누볐다. 

여행지는 거창한 해외가 아닌 대한민국 구석구석이었다.


여행이란 단어에 설레 했던 아이는 결국 엄마의 여행 중독에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무리 여행이 좋다지만 이건 아니야. 제발 집에서 좀 쉬자."

여행을 우리 가족끼리만 갈 때도 많았지만 친정부모님, 시부모님, 친구들, 직장동료를 번갈아 다양한 여행 군단을 꾸리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을 함께 하는 구성원들만 바뀔 뿐 나는 주말마다 여러부류의 군단들을 이끌고 빼곡히 여행을 다녔다.



여행은 유흥보다 돈이 훨씬 많이 들었다.

관광이 한참 활성화되던 시기라 관광공사에서 전국의 숙박&맛집 정보를 클라우드 펀딩으로 제공받고 있었다. 내가 여행 전 관광 공사에서 최신 여행 정보를 수집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참고하면 좋겠다 싶어 최근 다녀온 여행지의 맛집이나 숙박 정보 등을 업로드해 줬다. 그랬더니 뜻밖의 포상이 왔다. 어느 날 무슨 여행 서포터즈 증서와 함께 고액의 상품권을 보내왔다.  


그 외 관광 공사에서 수시로 했던 이벤트는 매주 여행가방을 꾸리게 하는 에너지였다. 각종 여행 후기는 실제 여행자들만이 각종 여행 증빙을 붙여서 참여해야 했기에 당첨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렇게 호텔 투숙권, 여행 티켓, 비행기표 등을 참 많이도 받았다.


그 시절 내 라이프 스탈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 sns의 여행 흔척을 보며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겠다. 쯔쯔쯔" 하며 한심해 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경비를 충당해가며 여행을 다녔기에 실제로 돈은 많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의 험담이 피곤하고 싫어 이후 sns를 닫아버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못 된 판단이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관리했다면 여행 전문 블로거가 되었을텐데...


또한 당시 전국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역 관광 활성에 주력하던 시기라 유난히 여행 이벤트가 많았다. 그뿐이랴. sns가 일반화 되지 않아 홍보는 저조하고 경품은 어마한 완전 땡큐 이벤트가 그득했다. 나는 매일 깨알 같은 정보를 검색해 전국의 여행 이벤트를 휩쓸고 다녔다.   


수백만 원 상당의 상품도 꽤 있었다. 제주 리마인드 요트 웨딩 이벤트(리마인드웨딩비 198만/아래사진 참고)도 그 시기에 당첨된 것이다. 그 외 제주 왕복 비행기, 최고급 호텔 숙박과 식사, 우리 가족만을 위한 요트 단독 대여 등 제주에서 요트 웨딩 촬영을 할 수 있는 모든 부대비용을 지원해 주었다.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리마인드 웨딩에(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음) 제주의 최고급 호텔이라니... 내가 푸른 제주 바다에서 다시 웨딩 드레스를 입고 요트를 탈줄이야 ~ 


    

진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추억이 많은 사람이다. 

제주에서 요트를 타며 찍었던 공짜 리마인드 웨딩 ~ 지금 돌이켜봐도 꿈만 같은 어느 멋진 날이었다. 



그렇게 평생 여행을 즐기며 지낼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족저근막염이란 발바닥이 아파서 못 걷는 병에 걸렸다.

방에서 거실까지 고작 몇 걸음도 발을 내디딜 한걸음 걸음마다 비명이 나왔다. 

여행은 커녕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여야 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세상은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버렸고, 모든 게 우울해졌다.

당연히 여행도 강제 종료되었다. 



3.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해 공부를 했다. (건강 칼럼니스트 & 강연자 & 상담사)



족저근막염 치료를 위해 병원, 한의원, 마사지숍을 다니며 시간과 돈을 펑펑 썼지만 아픈 발은 낫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파서 어쩌니?" 하며 한두 번 위로했고, 가족들 조차 계속 관심을 가져주진 못했다.

외롭고 서러웠다. 아픈 사람들의 마음이 이랬겠구나...

여러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긍긍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어 병원 치료를 포기했다.

타인(의료 포함)에게 기대 봐야 내 병을 낫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고, 

족저근막염에 대한 자료를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

당시 족저근막염에 대한 완치 자료는 거의 없었다.

대신 족저근막염이 걸린 사람들의 사연을 모조리 읽고 발병 원인의 공통점을 고민했더니

'아~ 이래서 발바닥이 아픈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을 아니까 치료가 통했다.

그렇게 낫지 않던 발은 스트레칭 한번 안하고 2주 만에 거짓말처럼 완치했다.   


이후 내 생활로 돌아가 간간히 여행도 하고 유흥도 즐겼으나 자꾸 아픈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불편할까?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간절할까? 얼마나 서러울까?

병원에선 족저근막염도 불치병이라 했는데... 불치병은 무슨. 이토록 간단히 해결되는 걸. 


어쩌면 이 세상 불치병이라고 하는 모든 병들이

불치병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문을 품고 2년간 건강도서만 5백여 권 읽었더니 말로만 들었던 통찰이란 게 느껴졌다.

(책은 폭풍으로 읽어야 한다. 단언컨데, 20년간 5백권을 읽으면 통찰을 맛볼 수 없다)


'당뇨와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은 약 없이 식사만 조절하면 완치가 가능해'


흥분한 마음에 사람들에게 거품 물고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뇨인들에게 다가가 당뇨를 완치해 줄 수 있다고 열불 나게 이야기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어이 없는 비웃음 뿐이었다.


너무 답답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무시감은 커지고 에너지가 너무 소진되었다.


"차라리 말을 말자!!"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하나하나에 진심을 꾹 꾹 담아 필요한 누군가가 읽어 주길 바랬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훗날 내 아이가 아플때 '그때 엄마가 뭐랬더라?' 하며 내 글을 읽어보기를 바랬다. 

그랬더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실한 사람들이 하나, 둘 관심을 보이며 도움을 요청해 왔다.

그렇게 1년간 브런치를 통해 매일 밤을 지새가며 무료 식이상담을 했다.

식이 한달만에 당뇨와 고혈압 등이 완치되었다는 소식이 빵빵 날아왔다.  

새로운 삶을 살게해줘서 너무나 고맙다는 감격스런 피드백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 요청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부득이 상담을 중단했고, 많은 고심 끝에 직장에 겸직 승인을 받아 얼마 전 유료 상담으로 전환했다.


https://brunch.co.kr/@himneyoo1/829


식이법으로 만성질환을 완치할 수 있다고 외치던 황무지 시절,

필자를 믿고 과감히 약을 끊고 식이상담을 의뢰해준 분들 때문에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건강 상담은 여느 취미와는 다르다. 

"최장금 식이상담"이란 퍼서널 브랜딩의 탄생이자 

아픈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인 건강을 되찾아주는 나의 소명이 되었다.

 


https://brunch.co.kr/@himneyoo1/896

 

돌이켜보면 내게 돈을 벌어다 준 3가지 취미의 공통점은 글쓰기다.

글쓰기는 나를 타인에게 표현하는 가장 간단한 도구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타인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나를 팔 수 없다. 즉 수입으로 만들 수 없다.

끊임없이 나를 표현해서 사람들이 내가 가진 것에 관심을 보이면 그게 수입이 된다. 


나는 내가 사는 "일상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팔았고 ( 방송국 / 라디오 사연)

내가 다니는 "여행 이야기"를 팔았고 ( 관광공사 / 여행 서포터즈), 

지금은 내가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강지식/당뇨, 고혈압, 고지혈 등 만성질환 완치법"을 팔고 있다.

( 브런치 / 당뇨완치식 및 건강 식이상담 ) 


40대가 된 하버드 졸업생들에게 인생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능력이 뭐냐고 물었더니 

90% 이상이 글쓰기라고 대답했다. 적극 공감한다.


사람은 누구나 글을 써야 한다.

글쓰기가 모든 세상의 연결고리자 수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최고 자산은 부동산이나 주식이 아니라 데이터다.

데이터 = 글 = 콘텐츠이다.  

꾸준히 쌓아가는 글이 내가 지닌 최고의 자산이다.



이전 17화 두근두근, 최장금 작가님을 만나 설렙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