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ide: 힙합을 왜 좋아하냐고?
01. 유행
힙합이 유행이라는 말은 새삼스러울 정도다. 힙합의 음악, 패션뿐 아니라 (플렉스라는 말처럼) 경향이나 가치관마저도 유행이 된다. 특히나 힙합을 다루는 경연 프로그램, 숏폼 영상들은 젊은 층에게 가장 인기 있는 컨텐츠 중 하나다. 힙합 팬으로서 이 문화가 눈에 띄게 확장된 것이 괜히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유행, 정말로 그런가?
힙합은 모르지만 쇼미더머니는 본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 자체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어떤 문화를 즐기기 위한 자격으로 그 문화를 꼭 잘 알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영화를 잘 몰라도 영화관에 자주 갈 수 있고, 고흐를 잘 몰라도 고흐 특별전에서 어떤 미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깊은 관심이 없어도 주변에서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그 문화가 대중문화로서 성공했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뒤가 찜찜하다. 왜 찜찜하냐면, 힙밍아웃(?)을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게 이런 질문이기 때문이다.
"힙합을 왜 좋아해?"
이건 정말 이상하다. 유행은 분명 유행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유행이다. 단지 세대 간의 격차가 아니다. 힙합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10대들이라도 같은 또래에게 이런 질문을 한 번쯤은 받아봤을 거다. 힙합은 대세이지만 힙합을 좋아하려면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다. 왜일까? 힙합이 아직은 낯선 장르이기 때문에? 그건 아닐 거다.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내가 10대일 때에도 힙합은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아주 흥미롭게도, 그 친구들이 자라서 여전히 내게 이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 "왜" 좋아하냐는 질문엔 비단 호기심만 있는 게 아니다. 질문 앞에 생략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그런 정신없이 시끄러운 / 거짓말을 하는 / 돈과 여자를 밝히는 / 폭력적인 / 마약을 옹호하는 / 무단으로 표절하는 / 성차별적인 / 남을 비방하는) 힙합을 도대체 왜 좋아하지? 그러니 찜찜하지 않을 수가.
그리고 가장 찜찜한 부분은, 이렇게나 안 좋은 문화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됐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있다. '안 좋은데 좋은' 이 이상한 수식은, (조금 과장한다면) 힙합 음악의 위치를 꼬아버렸다. 힙합 문화의 중심이 힙합 음악인 것은 자명한데, 정작 우리에게 유행하는 것은 음악보다는 '힙한 감성'으로 대변되는 '문화의 분위기'다. 힙한 인테리어의 칵테일 바에서 힙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좋지만 그 음악이 무슨 곡인지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말마따나 음반이 티보다 안 팔린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뭔가를 속시원히 설명하고 싶은데, 사실 그게 쉽지가 않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100% 편견이라고 할 수만은 없지 않나? 나 역시도 그런 것들 중에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오해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간 들을 줄만 알았지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힙합이란 뭘까, 그리고 내가 힙합을 좋아하게 된 진짜 이유는 뭘까. 일단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