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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라떼 Mar 26. 2020

딸아, 결국 비커 속 삶이다.

관계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거라.

관계 감정의 시작


우리 은이, 이제 초등학교 가면 가장 고민이 뭘까? 어쩌면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더 심해지는 고민일 수도 있겠다.

성적? 미래? 꿈?

아마 교우 관계일걸?


20평 남짓한 교실이 너에게는 아주 크게 다가올 거다.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야.


그 안에서 너는 수많은 관계 감정들을 배우겠지.

사랑, 기쁨, 즐거움, 우월감, 공감, 위로, 시기, 미움, 질투, 화, 열등감, 절망.....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밀물처럼 스며들어 네 마음을 헤집어 놓을지도 모르겠구나.

학년 올라갈 때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만으로도 세상 잃은 슬픔을 느낄 거고 소풍 가는 버스 안에서 누구와 앉아야 할지를 밤새 고민하기도 할 거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끊이지 않던 짝꿍이 어느 날 갑자기 차갑게 느껴질 수 도 있고 별로 친하지 않던 친구의 진심 어린 위로에 감정이 복받쳐 울 수 도 있겠지.  

20평 교실은 그렇게 감정의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를 거다.


관계 감정을 다루는 법


20평 교실, 참 넓고도 좁은 공간이지. 그곳에서 우리 은이는 관계 감정들을 배워 나가게 될 거야. 처음에는 야생마처럼 날뛰는 감정들이 혼란스럽겠지. 어쩌면 길들여지지 않은 감정에 네 마음이 다칠 수 도 있어. 많이 아플 거다. 아빠는 우리 은이가 관계 감정을 잘 다뤘으면 좋겠구나. 그럴 수만 있다면 교실에서 배우는 가장 값진 배움이 될 게다. 그 어떤 과목보다 말이야.



한 줌의 흙과 인간


아빠랑 잠깐의 과학 시간을 가져 볼까?

너 혹시 인간을 이루는 원소가 공기나 흙을 이루는 원소와 같은 거 아니?

인간은 산소가 65%, 탄소가 18%, 수소가 10%, 질소가 3% 그리고 나머지는 칼슘 인 철 아연과 같은 물질들이 소량 모여서 이루어져 있단다. 돌멩이나 흙, 물과 같은 자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원소들이지. 인간이라고 특별한 원소를 가지고 있지 않아.   

우주의 기원은 아직까지 빅뱅이론이 지배적이지.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빅뱅과 함께 뛰쳐나와 서로 결합하며 다양한 원소들을 만들어 내었고 인간도 그 우주의 일부이니 특별할 것 없겠지.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그저 한 컵의 물이나 네가 아끼는 캐릭터 연필과 다를 바 없는 존재란다.

그런 존재가 지구라는 쥐콩만 한 행성에 모여 아웅다웅 싸우며 살아가고 있는 거야.

너는 게다가 지구 면적의 0.02% 밖에 안 되는 한국에 살고 있고 그 한국 땅 면적의 0.0000006%에 해당하는 교실에서 지지고 볶는 거다.  


시간의 관점에 볼까? 우주에서 바라본 인간의 생은 찰나의 시간보다도 짧지. 빛이 1년 동안 날아가는 거리를 광년(light year)라고 하는데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지름을 465억 광년으로 추정하고 있어. 네가 우주의 끝에서 끝까지 빛의 속도로 가도 465억 년이 필요한 거야. 물론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으니 영원히 우주의 끝에 도착하지 못할 거다. 우주는 그만큼 크지. 하늘의 별을 보면 1만 광년 떨어진 별이 수두룩 하단다. 우리는 1만 년 전에 빛나던 별을 보고 있는 거야.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별을 말이야. 그러니 우주가 바라본 인간의 일생은 얼마나 미천하겠니.


비커 속 삶


물리 시간 끝났으니 화학 시간으로 가볼까? 음, 은이가 중학교 가면 배울 래나?

화학 평형이라는 것이 있어. 멀리서 보면 화학적으로 반응물과 생성물의 농도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정반응과 역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해. 아, 어렵지? 쉽게 말해서 겉보기에는 더 이상의 화학반응이 없고 고요하지만 실제 분자 수준에서는 아주 치열하게 화학반응이 있다는 거야.  

아빠가 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네 삶도 비커(beaker) 속과 닮았다는 거지. 인류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는 긍정적으로 발전하고 번성하지만 각 개인의 삶은 치열한 거야.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거든.

작은 비커 속 인간들의 삶이지.   


우리 은이, 학교 가면 다양한 관계 감정들을 겪게 될 거야. 그 감정들 때문에 웃는 날도 많을 거고, 우는 날도 있을 거다. 학교는 그런 곳이야. 교과서 지식만 배우는 곳이 아니지. 사회에 나가기 전에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을 자기만의 방법대로 해석하고 다루는 것을 배우는 곳이란다. 그러니 그 감정들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어차피 연습 같은 거니까. 물론 우리 은이는 잘 해내겠지만 혹시나 힘든 날이 있으면 이렇게 생각해봐.

결국 비커 속 삶이라고. 한 줌 흙과 같은 인간들이 모여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는 비커 속 삶이라고.

아빠는 우리 은이가 20평 교실에서 벗어나 세상을 더 넓게 더 멀리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며 말이지. 너무너무 사랑한다. 우리 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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