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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 키보드 넌 내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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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오

제목이 좀 발랄하다. 까마귀의 기분이 좋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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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나에게 키보드를 주었다. 글 쓸 때 쓰라고 자기 것 중 하나를 그냥 준 것이다. 기계식 키보드. 나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처음 만져봤다. 느낌 오묘하다, 이거.


사실 키보드 얘기가 나온 건 약 한 달 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달 전부터 기계식 키보드를 알아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원래는 아무 생각 없이 집에 있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걸 본 형이 키보드 하나 사줄까-그런 말을 꺼냈다.


좋은 키보드를 쓴다고 좋은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괜찮은 키보드가 하나 있으면 좋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키보드를 찾아보았는데 웬걸, 엄청나게 비쌌다. 글 좀 쓰겠다고 그런 거금을 투입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아이쇼핑을 계속했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키보드 구경의 별미는 타건음이다. 키캡 재질, 스위치 종류, 하우징 소재 등에 따라 타건했을 때 나는 소리가 천차만별이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키보드ASMR 영상이 뜨면 ‘이런 걸 왜 보지?’하고 넘겼는데, 인제 보니 도각도각하는 소리하며 보글보글하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았다.


내 마음에 드는 키보드는 비쌌다. 그래서 그냥 장바구니에만 담아두고 마음을 달래며 몇 년 전에 사놓고 안 쓰던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로 글을 써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형이 자취방에서 가져온 기계식 키보드를 어젯밤 영접했다.



펑션키와 텐키가 없는 컴팩트한 사이즈이다. 67배열이라고 하는 것 같다. 키캡에 왜 일본어가 적혀있는지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그냥 예뻐서 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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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여 처음으로 쓰는 글이다. 손이 자꾸만 키보드 위에서 춤추고 싶어 한다. 백 퍼센트 마음에 드는 키보드는 아니지만 무료로 이런 느낌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다.


쓰다 보면 또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키보드를 계속 두드리고 싶어서 이전보다 글쓰는 시간이 좀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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