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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Oct 22. 2023

두 발의 나와 네 발의 네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친구



자,


  내겐 강아지 친구가 있다. 지난해 입양해서 먹이고 재워주고 있는 강아지 무늬는, 보호자와 반려견의 관계이기 때문에 친구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무늬 이전에 만난 첫 강아지, 솔이다. 솔이는 아내가 결혼 전 처가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반려견이다. 장모님의 지인에게서 갓난쟁이를 데려왔다고 한 게 벌써 열여덟 해 전이다. 16킬로에 진돗개만 한 길이와 덩치를 가졌다. 하얀 털이 온몸을 덮고 있는 장모견이어서 실제로 보면 진돗개보다도 더 커 보인다.


  처음 솔이는 만난 건 아내와 막 연애를 시작했던 해의 겨울이었다. 아내의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갑작스레 조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개와 교감을 나눠본 적이 없어서 약간의 무서움이 있었다. 게다가 솔이는 크고 경계심이 많아 날 보자마자 우렁차게 짖어댔다.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 녀석과 다시 볼 일은 없어야겠군,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결혼을 하면서 솔이와의 관계는 내가 어떻게는 다루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장인장모님이 여행을 가실 때나, 교사인 아내가 방학을 맞아 솔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때, 솔이는 우리 집에서 짧으면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을 머물렀다. 처음엔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함께 산책을 하는 모든 과정이 어색했다. 나는 녀석을 경계했고, 내 경계심이 느껴졌는지 솔이도 나를 경계하는 듯했다.


  똑똑한 강아지 솔이는 나와 아내를 유심히 관찰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관계라는 걸 금방 알아채고 마음을 열었다. 처음 우리 집에 머물 때, 이틀 만에 내게 다가왔다. 방에 앉아있던 내게 담담히 다가와서 코치기를 했다. 내 손을 자신의 긴 콧등으로 들어 올렸다. 쓰다듬어 달라는 몸짓이었다. 내 삶의 첫 ‘사람이 아닌 생명체와의 교감’이었다.


  그날부터 우린 친구가 되었다. 아내 없이도 둘이 산책을 나갔다. 내 앞에서 몸을 뒤집고 배를 만져달라며 누웠다.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했다. 한동안 만나지 않아도 잘 지낼 거란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오랜만에 만나면 몸을 맞대고 비비적거렸다. 온 힘을 다해 반가움을 표현했다.


  솔이는 내게, 사람이 사람 아닌 존재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했다. 까맣고 촉촉한 코로, 하얀 털이 복슬복슬 덮인 뭉툭한 발로,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가득 찬 큰 눈으로, 두 발의 나와 네 발의 네가 친구일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자.


  M과 난 중학교1학년 때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만화책과 MTV, 투니버스에서 보는 밝고 명랑한 세상에 푹 빠진 초긍정 풋내기였다. 인생의 쓴 맛을 전혀 모르던 애라 친구도 학교도 공부도, 그저 모든 게 즐겁기만 했다. 그에 비해 M은 또래 아이들보다 무언가를 아는 아이 같았다. 늘 학교 안과 밖에서 즐거운 것을 잔뜩 찾아내서 알려주었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중학생이 많지 않던 그때는, 월요일에 학교를 가면 주말 동안 M이 한 일들을 듣는 게 낙이었다. 

  

  같은 상황에서 유독 M과 둘만 키득거렸던 기억이 많다. 남들과 조금 다른 것에, 그러나 나와는 같은 것에, 그래서 둘만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라는 게 M에 대한 가장 오래된, 정확한 기억이다.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락을 이어갔다. 편지에는 각별한 메시지는 없었다. 둘 다 간지러운 건 못 참는 편이었으니. 성인이 되어 만나서 술 한 잔 하거나 맛집을 털고 노래방에 갔다 헤어지곤 했다. 그래 봤자 1년에 한 번 제대로 못 볼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얼마 만에 만났고, 그동안 누가 더 연락이 뜸했는지 따위의 시시한 마음의 빚을 정산한 적은 없다. M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 중요한 건 여전히 우리가 같은 걸 보고 비슷한 박자에 웃음이 터진다는 사실이었으니까.


  30대 중반이 된 우리. 오래간만에 둘의 일상에 공백을 둘 수 있는 시기가 살짝 겹쳤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비행기를 타고 남쪽나라 따뜻한 휴양지로 향했다. 길지 않은 일정 사이사이에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의 이야기, 과거의 이야기, 미래의 이야기. 한 이야기의 시점이 복잡하게 얽혀있어도 전혀 헤매지 않는 건, 아마도 우리가 함께 쌓아온 시간이 제법 된 사이이기 때문일까. 


  20여 년이 지나서도 우린 중학교 교실 앞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처럼 여전히 함께 자주, 많이 웃었다. 정신없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임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지점에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 덕에 가끔 헤매고 방황하는 나의 자아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 그 모든 모습을 웃음으로 받아주는 M에게 '잘하고 있어. 넌 괜찮을 거야. 친구'라는 말을 들은 듯 혼자 간지러웠던 덕분에. M 덕에 이제 난 같은 걸 보고 비슷한 타이밍에 웃는 사람을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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