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생각을 하다 기운이 빠져서, 결국 글을 안 쓰고 있다. 내가 이렇게나 자아가 비대한 사람이었나. 몇 줄 적다가 멈추거나 되돌아가며 자다가 이불킥 백번 찰 생각을 결국 해버리고 만다. '분명 이보다는 더 멋지고 좋은 문장이, 표현이, 구성이, 제목이 손 끝에서 나올 텐데!' 에세이(Essay)의 어원은 프랑스어 'essayer'(에쎄예)로서 시도하다, (처음)해보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쓰기는 쓰기로 해소해야 하나. 묻어두었던 글 나라도 함함하며 되살려볼 요량으로 덧붙여본다.
어제 집 테라스의 창틀에서 지네와 조우했다. 테라스로 나가는 문은 바깥을 기준으로 방충망, 외창, 내창 이렇게 삼중 구조다. 지네는 방충망과 외창 사이의 창틀에서 쉬고 있었다. 환기를 위해 무심히 방충망을 열던 나의 행동에 놀라 휴식을 갑작스레 마치고, 스샤샥 움직였다. 둔감한 난 그제야 지네를 알아봤다. 지네는 우선 창 아래쪽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지네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해야 했던 인간들은 모든 창을 움직였다. 창틀이 몸을 숨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지한 지네는 레일을 넘어 테라스 바닥으로 도망쳤다. 테라스 바닥의 타일과 외벽이 만나는 곳에 틈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쏙 몸을 감춰버렸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길이 지네에겐 보이나 보다. 내가 이 집에 오기 전부터 이용했던 통로였을지 모르겠다. 방충망과 창문(문으로도 쓰는 큰 여닫이 창)에 틈이 있었다니. 방충을 해야 하는 망이 그 이름이 무색하게 벌레들의 프락치로 활동하고 있었다. 바람만 통과시키랬거늘. 지네의 통로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는 그간 집에서 마주쳤던 거미, 개미,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애용한 길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아둔한 인간은 그 창의 느슨한 부분을 방비하기 위한 적당한 단어와 명칭을 알지 못했다. 검색창에서 커서가 30번도 더 깜박일 동안 멍하니 적당한 검색어를 찾지 못했다. 창문벌레방지, 빗물받이, 방풍스티커 와 같은 단어와 걷돌다 드디어 내가 찾던 것이 ‘풍지판‘임을 알았다. 잽싸게 장바구니에 담았다. 테라스와 외벽의 틈을 막기 위해 셀프 실리콘 건도 함께. 상품 아래 작게 자리한 로켓 모양이 그날따라 설렜다. 하지만 제주의 로켓 배송은 플러스 2일이다. 앞으로 꼬박 이틀간은 저 창을 열지 못할 거다. 환기도 물 건너갔다. 지네는 풍찬노숙의 대가일 테니 테라스의 그늘진 곳, 테이블 아래처럼 창틀보다 아늑한 포인트를 이미 알고 있을 거다. 테라스로 나가지 못하는 나는, 내 집에 갇혔다. 카프카의 소설 속에서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불운의 사나이, 그레고리 잠자가 떠올랐다. 그는 지네의 통로를 알고 있었겠지. (2025.6.17.)
이렇게도 써 보고 저렇게도 써 보고 버둥버둥 거리는 전직 책벌레.
나도 갖고 싶다. 글투, 문체 그런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