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잘 익은 와인처럼
어느 결혼식장, 주례가 신랑 신부를 향해 진부한 질문을 던진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를 배우자로 아끼고 사랑하겠습니까?” 신랑 신부는 이 질문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신혼여행을 가는 순간부터 사랑은 삶의 시험대에 오르며 아슬아슬한 곡예를 시작한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응답이 과반수를 넘었다고 한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훨씬 더 선호하고 있으며, 그 이유로는 결혼을 통해 남성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결혼 기피 현상은 취업난 등 사회환경에 기인한 개인의 가치관이 바뀜에 따라 결혼관마저 바뀌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소셜 미디어의 여파와 개개인의 보는 눈이 높아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결혼생활의 목적이 가족부양이라는 의무보다는 결혼을 통한 행복 추구라는 권리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혼을 비극의 시초라고 생각하던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는 전환의 계기로 의미를 부여하며 이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망스러운 현실들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사랑이 변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람들은 사랑은 ‘다이아몬드’처럼 변하지 않으며 영원할 것이라 믿었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연애 시절의 환상은 결혼과 함께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칮아가며 깨어져 간다. 그것은 삶의 현실이 항상 기쁘고 즐거움으로만 채워지지 않으니까.
“내가 미쳤지. 그때는 눈에 콩깍지가 씌었었나 봐”
이런 하소연은 사랑이 변한 자기 고백과 같은 말이지만 미련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한다. 한 사람을 만나 살다 보면 서로가 보지 못했던 작은 결점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되고, 때로는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통보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보이는 것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조금만 잘해주면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으로, 조금만 못해 주면 사랑이 식어버린 것처럼 느껴버린다. 살면서 주고받는 작은 상처들이 쌓여가면서 점차 불신은 커져가고 그로 인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열정은 식어가기 마련이다.
젊었을 땐 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가끔 여행도 하고 술도 마시고, 식사도 함께 할 기회가 많다. 그런데 부부 동반 모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친구 부부와 함께 모여 술까지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위기를 맞이할 때가 종종 있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다 보면 이성적인 통제력이 약해져서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아내들의 불만, 아내에 대한 남편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단골 메뉴처럼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엔 일상에서 일어난 사소한 이야기로 시작하다가 어느 한 친구의 아내가 요즘 남편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의 아내들이 너도나도 덩달아 자기 남편이 변했다며, 속았다며 맞장구를 치기 시작한다. 물론 결정적인 불만 같은 것은 자존심 문제로 감추어 두고 사소한 불만 몇 가지만 털어놓는 게 보통이지만, 대화의 중심에 선 남편들은 일방적으로 당하기 십상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온통 머릿속이 그 사람이 삶의 전부이고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런 사랑을 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학교 수업도 빼먹고 간 영화 관람, 회사에 병가까지 내고 떠난 바다여행, 가족에겐 일이 있어 늦다고 거짓말하고 함께 한 달콤한 데이트, 부모님 생일선물은 간단한 것으로 때우면서 분에 넘치는 선물을 주고받던 연애 시절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지만, 지금은 어떤 모습인가?
'눈에 콩깍지' 하소연은 살아온 세월에 대한 얼마간의 후회와 처음 생각했던 결혼의 환상이 조금은 빗나가 있다는 자기 불만 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연애할 때나 신혼 시절에 서로가 바라보던 모습이 아니라고 사랑이 식었다고 말하지 말자. 연애할 당시에는 '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만 같다'던 사랑이 지금과 조금 다르다고 사랑이 변했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사랑은 오래 살다 보면 서로에게 발견하는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그냥 좋다'라고 대답하는 그런 것이다. 마음에 차지 않는 사소한 일로 사랑을 깎아먹지 말고 먼저 달려가 안아주자. 때로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지만 금방 돌아서서 미안하다 사과하고, 사랑한다며 웃어넘기는 순간들이 모여 삶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 아닐까?
그래 맞아! 사랑은 세월과 함께 조금씩 변해간다는 걸 알아야 해. 사랑이 변해가는 것은 사랑이 식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차 숙성되어 간다는 것도 함께. 시간과 바람이 만드는 좋은 술과 같이 사랑은 믿음과 함께 숙성되어 갈 테니까.
서로가 닮아가는 삶의 시간 속에서.
좋은 맛을 내어 누군가의 잔에 채워지는 잘 익은 와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