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가족들은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을 했다. 환자를 면회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집에서 멍하니 있는 것보다 병원에서 아빠 곁에 있는 것이 속은 편했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내 눈에 띄는 것은 아빠의 2만원짜리 운동화였다. 엄마, 동생, 나는 모두 적당히 가격이 있는 운동화를 신는다. 동생이야 늘 브랜드 있는 운동화를 신었고, 엄마의 경우는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좋은 운동화를 사드렸다. 아빠의 경우는 걷는 것을 싫어하고 본인의 취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좋은 것을 사드려도 맘에 들지 않으면 신지 않으신다. 그렇다고 자식 누구 하나 아빠를 모시고 백화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시장에서 파는 2만원짜리 운동화를 본인이 직접 구매하여 신으셨다.
오픈된 신발장의 가장 끝에 위치한 아빠의 싸구려 운동화가 계속 신경에 거슬렸다. 주인이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주인은 멀리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나는 평소 아빠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성정 과정에서 아빠와 교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빠에 대한 어떤 감정도 없었다. 단지 미움만 가득했을 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평소에는 아빠의 싸구려 운동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빠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내 눈길을 아빠의 운동화로 옮겨 놓았다. 아빠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에서야 아빠의 색깔 바랜 티셔츠, 재래 시장에서나 파는 싸구려 운동화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빠가 약을 먹은 그날이 떠오른다. 그날따라 나는 늦은 시간까지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아빠는 9시 즈음에 잠에 들었다가 11시 즈음에는 습관처럼 화장실을 가신다. 그때마다 내가 거설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늦었다며 어서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아빠는 나를 보고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죽기를 작정했다면 더 이상 가족들도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아빠가 남긴 유서에도 오직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아빠 역시 내가 아빠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초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아빠가 의식을 회복한다면 반드시 아빠에게 비싼 운동화를 한 켤레 사드려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