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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기적같이 얻은 새로운 인생

아빠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그동안 의사는 예후가 좋지 않다는 말만 반복했었기 때문에 이미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아빠는 가족들의 기도를 들었는지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에 가장 무서웠던 것은 전화벨 소리였다. 평소 무음으로 해두지만 아빠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에는 한통의 전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벨 소리로 바꿔 두었다. 혹시라도 아빠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 경우 병원에서 온 연락을 놓치면 안되었다. 아빠가 입원하고 첫날에 병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이런저런 검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가족들은 매일 병원을 방문했기 때문에 더 이상 따로 연락오는 것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두렵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지만 의외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빠가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이었다. 곧 일반실로 이동할 예정이기 때문에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 다음날 바로 면회가 가능했다. 단 아직 환자의 상태가 정상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한 사람 밖에는 면회가 안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누가 면회를 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다. 동생과 나는 아빠가 걱정되었지만 그 마음과는 다르게 엄마에게 면회를 미뤘다. 결국 엄마가 면회를 다녀오기로 했다. 하지만 엄마는 5분도 안되어서 우리에게 돌아왔다. 왜 벌써 내려오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화를 내서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음날은 내가 면회를 하기로 했다. 싫다고 했지만 엄마는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면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싫다고 했던 이유는 아빠를 보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어색함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결국 아빠를 면회하기로 했다. 어색했지만 아빠가 걱정되는 마음도 컸기 때문에 더 이상 싫다고 버티지 않았다. 병실을 방문하기 전에 간호사 분들에게 전달드릴 음료수와 아빠가 필요한 물건들을 편의점에서 구매하여 병실로 이동했다. 사온 음료수를 간호사분께 전달했지만 이런 것 받으면 안된다며 거절하셨다. 다음에는 사오지 않겠다고, 아빠를 잘 돌봐주셔서 감사해서 사온 것이라고 하였더니 마지못해 받으시면서 아빠를 진정시켜 달라고 당부하셨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빠의 화가 지나치다 못해 간호사분을 때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무슨 상황인가, 일주일 넘게 중환자실에 누워있었기 때문에 저항할 기운도 없을텐데 왜 간호사분을 때렸다는 것인가?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퇴원시켜 달라고 떼를 썼다.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고 흰색의 수염이 턱 주위에 가득했다. 아빠의 온 몸에는 주사 바늘로 가득했다. 대체로 팔에만 꽂혀 있어야 했지만 공간이 부족하여 발목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또한 팔이 침대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내 눈치를 보던 간호사는 아빠가 간호사들을 때리려고 해서 묶어 두었다고 했다. 아빠의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이렇게 살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아빠를 보기 전까지는 무서웠지만 아빠를 보고 나서는 아빠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에 화가 나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나는 아빠에게 조금만 더 있으라고 했다. 치료 끝나면 퇴원할 테니까 조금만 더 참으라고 했더니 아빠는 독기 가득한 눈으로 ‘가’라고 얘기하더니 눈을 감고 더 이상 나를 보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걱정되어 좀 더 병원에 머물렀다. 한참 동안 아빠를 바라보는데 ‘아, 아빠가 많이 늙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5분이 흘렀을까..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바로 의사와의 면담을 신청했다. 

아빠는 평소 화가 많지만 그렇다고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아빠가 행한 폭력은 두 번 정도 핸드폰을 던졌을 때 뿐이었다. 그것도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던진 것이 내가 목격한 아빠의 유일한 폭력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아빠의 폭력적인 행동들이 이해할 수 없었다. 의사는 평소 아빠가 폭력적인 성격인지 물었다. 평소 화는 많지만 폭력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의사는 섬망 증세인 것 같다고 했다. 불안 증세 때문에 폭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으며, 또한 과거의 일에 대해 기억을 못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의사와 면담 후 다소 안심이 되었다. 아빠의 이상 행동은 결국 병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 안심이 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폭력적인 행동이 지속되면 어쩌나, 의식을 회복하긴 했지만 정말 회복된 것이 맞는지 걱정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제초제를 먹으면 살 확률이 (완치될 확률) 매우 낮다고 했다. 지금 당장은 의식을 회복했지만 아빠 내부 장기들도 정상으로 돌아온 것일까? 위, 폐, 신장까지 손상되었다는데 아빠는 정말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 

아빠는 병원에서 더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퇴원하자고 억지를 부렸다. 병원에서도 어쩔 수 없이 퇴원을 허락했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걱정을 한쪽에 두고 우리 가족은 모두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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