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존심이 강한 편이다. 자존심은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일종의 '욕망'이다. 자존감의 경우 가치 판단 주체가 '나'인 반면, 자존심은 '세상의 시선'이다. 즉, 자존심은 자존감과 다르게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자신의 방식을 유난히 고집한다
(2) 대인 관계에서 굴욕감을 잘 느끼고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
(3) ‘자존감(self-esteem)’이 떨어진 사람을 일컫는다
나는 왜 단 한번도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지 못했을까? 지금도 아쉽지만 인생의 반을 이렇게 살아왔던 터라 나는 다르게 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다르게 살아볼 용기도 없다. 내 존재가 부담이 됐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결국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으며, 직업을 소개할 때에도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그런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하루하루를 살아 내기도 힘들었던 나에게 자존감 따위는 챙길 여유가 없었다. 고개를 치켜 세우고 살 수는 없더라도 정면을 마주하면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40년간 고개를 숙이면서 살아왔다.
어렸을 때의 나는 되도록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디를 가거나 사랑받지 못한 티가 났었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상당히 낮았다. 지금이야 궁금한 것이 있으면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질문을 한다. 하지만 지난 40여년간 나는 궁금한 것이 있어도 절대 질문하는 일이 없었다. 궁금한 것은 궁금한데로 그대로 묵혀 두고 잊어버리곤 했다. 내 질문이 사람들의 차가운 눈초리로 되돌아 올까 무서웠다. ‘어떻게 저런 기초적인 질문을 할 수 있지?’ 혹은 ‘저런 내용도 모른다고?’라며 무언의 차가운 눈치리가 나를 질타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남의 시선이 뭐가 중요할까? 사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질문을 하건 하지 않건 상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어나지도 않은 차가운 눈초리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는 말은 옳지 않다. 이 정도면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뚫다 못해 지하에 머물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 특성상 한 사람의 인생은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세가지 삶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일명 SKY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 취업하여 높은 연봉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② SKY 대학은 아니지만 적당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적당한 기업에서 적당한 연봉을 받으며 적당히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③ 고등학교 혹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하여 비슷한 규모의 회사를 전전하며 사는 사람들
내 삶은 ③번에 해당한다. 점심 한끼 사먹을 돈이 없었고, 늘 불안 했고, 소외된 내 삶을 고려한다면 ①번의 삶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누군가는 내가 남의 탓만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모든 순간에서 선택은 자신의 몫인데, 그 선택의 결과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며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삶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자식이, 당신의 부모가 암에 걸려 생사를 헤매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오늘 당장 세상과 작별을 고할지, 아니면 하루 이틀 연장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다른 누군가도 아닌 당신의 미래를 위해 아픈 가족을 나몰라라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까 눈 앞의 시험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비교가 과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세상 전부였다. 모두 외면할 때 어머니만 내 곁에 있어주었다. 어딘가에서 떡이라도 한 조각 얻어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나를 위해 아껴 두셨고, 나에게 라디오와 침대를 사주기 위해 힘든 밭일을 하셨다. 나를 먹이고 입히고 학비를 벌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신 것은 어머니였다. 나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전부였고, 유일한 내편이었다. 어머니의 존재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버팀목이거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지금도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억눌린 삶을 사신다. 아버지는 무엇이라도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본인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어머니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나이 먹으면 성질이 좀 누그러진다는데 아버지는 참 한결같다). 식당에서 서빙이 늦거나, 주차를 위해 3분 이상 기다리는 날이면 본인 화가 풀릴 때까지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하신다. 그럼 어머니는 그 상황에 대해 나에게 하소연을 하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감정 쓰레기통이고, 나는 어머니의 감정 쓰레기통인 셈이다. 먹이 사슬처럼 악순환이 반복되면 될수록 나는 가장 상위의 포식자가 더더욱 미워진다.
나는 매우 제약적인 선택 중에서도 최악을 선택하거나, 선택을 미루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과연 어떤 선택권이 있었을까 싶다. 선택이라는 것도 또다른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선택을 활용할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나 유용한 것이다. 나는 늘 숨어 살아왔기에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할 방법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세상에 수천, 수만가지의 삶의 방향들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우물안에서 어떤 선택과 행동 없이 살아온 결과 ③번이라는 결과를 맞이했던 것이다.
어려서는 가난이 부끄러웠다. 저녁이 되어서까지 동생과 뛰어놀고 있을 때면 온 동네에 퍼지는 저녁 식사 준비가 식욕을 자극했다. 가난한 우리집이라고 저녁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자만 어머니가 준비한 저녁이라는 것은 할머니와 아버지를 위한 것들이었다. 늘 술에 취해 귀가해도 저녁은 거르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따뜻한 밥 한공기와 해장국을 준비해 두셨다. 지난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왜 이 기억을 붙들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내 나이 8살 때 즈음의 일이었다. 하루는 결혼해서 출가했던 고모가 방문하면서 나에게 500원을 주셨다. 그때 당시만해도 500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받은 500원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콩나물 300원어치를 샀다. 지금처럼 봉투에 담겨진 것이 아닌, 직접 기른 콩나물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판매했다. 신문지를 가슴에 안고 신나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자랑했지만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회초리를 들고 나를 때리셨고, 나는 겁에 질려 콩나물을 안은 채 밖으로 도망쳤다. 내가 지나온 길은 내 가슴에서 떨어진 콩나물들로 가득했다. 나는 어머니가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먹고 싶어서 샀던 것이 아니었다. 그 어린 나이에 콩나물이 맛있을 수 없었다. 한창 울다 지쳤고,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서 추웠다. 그렇다고 집에 돌아가는 것도 무서웠다. 여전히 어머니가 회초리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머니가 나를 찾아 다니셨다. 울다 지친 상태였고 한참을 쪼그리고 앉았더니 도망칠 기운이 없었던터라 그대로 어머니에게 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에 내가 정말로 회초리로 맞았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 어머니는 그때 왜 불같이 화를 내셨던 것일까? 나는 단지 늘 반찬 걱정을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먹고 싶었던 과자도 포기하고 샀던 것인데.. 500원 전부를 어머니께 드리지 않았던 것에 화가 났었던 것인지, 그 돈으로 아버지 반찬을 사드려야 했는데 못사서 화가 났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나의 그런 행동 자체에 화가 나셨던 것인지.. 부모가 되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가난은 불행한 것이 아니고 불편한 것이라 했던가? 그런 말을 했던 사람은 어느 정도의 가난한 생활을 했을까? 가난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앗아간다. 학창 시절 여자 아이들은 친한 친구끼리 서로 옷을 빌려 입거나 필기도구들을 바꿔 쓰는 것이 일상이다. 나 역시 그럴 기회가 있었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저렴한 카디건을 사주셨었다. 지금이야 초등학생들도 명품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메고 명품 신발을 신지만, 나에게는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주었던 카디건 하나가 매우 소중했다. 그렇게 소중한 카디건이었기에 나의 카디건을 빌려 달라는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옷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도 되었지만, 무엇보다 그 옷을 빌려주면 내일 당장 입을 옷이 없었다. 나의 거절 이후 친구는 한동안 나를 멀리했다. 나는 친구에게 미안했다. 카디건이 뭐라고 몇 번이고 부탁했던 친구의 요청을 거절했을까. 가난이다. 가난이 나를 친구로부터, 미래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이다. 그러니 가난은 단지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친구와 미래를 앗아갈 수 있고, 꿈도 꿀 수 없게 하는 것이 가난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상대적 빈곤이다. 나는 가난했지만, 아버지는 풍족했던 그 시절, 우리집은 정말 가난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점심 값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친구들을 위해 술값을 계산하고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우리집이 정말 가난했던 것일까? ‘아버지 본인의 술값이나 택시비를 아껴서 동생과 나를 위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경험할 기회를 단 한번이라도 제공했다면..’이라는 안타까움이 지금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아둥바둥 불안한 미래를 쫓으며 사는 대신, 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조금은 편안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부끄러웠다. 가난도, 많이 배우지 못한 부모님도, 결국 전문대밖에 진학하지 못한 나 자신도, 모든 것이 부끄러웠다.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아버지의 거친 욕설들을 누군가 들을까 부끄러워 얼굴을 바닥에서 떼지 않았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드디어 우리집은 외식이라는 것을 하게되었다. 식당을 갈때에도 배우지 못한 티를 내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음식에서 얼굴을 뗄 수가 없었다. 70이 넘은 아버지는 지금도 나보다 체력이 좋고 목소리가 크다. 나 자신은 운동하는 시간도 아까워 앉아서 공부하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늘 피곤하고 지쳐 있지만, 아버지는 육체 노동으로 기초 체력이 향상되었는지 나보다 체력이 좋으시다. 식당에서 화를 내실때에도 우렁찬 목소리로 내뱉는 욕설들 때문에 주위 모든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다. 가난과 배우지 못한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서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은 달랐다. 결국 나는 취업이후 끊임없는 공부로 학력과 경력 세탁에 성공했다. 대학도 마쳤고 대학원도 진학했다. 여러 번의 이직이 있었지만 결국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고등학교나 전문대를 졸업하면 대기업과 같은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떤 준비를 해야 좋은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물론 교수님을 찾아다니면서 취업에 관한 많은 조언을 구했지만, 주로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인생 상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의 절반 정도가 이미 충분한 회사 생활을 경험한 이후 학교에 진학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교수님들 입장에서도 취업에 대한 상담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우연이라도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까 두려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좋은 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이 나에게 대학생활이라도 묻지 않을까 2년 내내 불안했다. 첫 직장을 가서도 나의 고개 숙인 삶은 계속되었다. 첫번째 직장 생활을 할 때 알게된 사실이 하나 있다. 누구나 알 만한 회사를 소개할 때와, 들어도 모르는 회사에 대해 구구절절 소개해야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들어도 모르는 회사에 대해서는 구지 회사 이름을 말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들어도 모를 테니. 그래서 대체적으로 회사가 하는 일과 업무를 소개한다. 반면에 누구나 알만한 회사에 대해서는 나의 업무만 소개하면 된다. 구구절절 나를 위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 것이다. 20대의 직장 생활 역시 부끄러움으로 인한 고개 숙이기 삶은 계속되었다. 명절이 되면 친척들이 방문하여 묻는다. ‘그래서 어떤 회사에 취업한거야?‘ 아무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는 관심 없고 오직 내가 속한 회사명만 궁금해하는 듯했다. 우물안 개구리는 그렇게 또 하나의 세상의 편견을 알게 된 것이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롬14:1~12)
여행을 많이 다녀본 것도 아니고, 세상의 접점에서 살아왔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세상과 마주했을 때 세상의 민낯을 보았다. 아름답지 만도 추하지 만도 않았던 세상과의 첫 대면이 조금 더 빨랐었기를 기대해보지만 이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모르는 것은 모른 채로 죽게 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다 알 필요가 없다면, 적어도 이제는 모르면 모르는 채로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