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면식수햏(12)ㅡ 합천 ㅅ 칼국수, 포항 ㅆ
1. 합천 ㅅ 칼국수
부부, 부모로서의 연말연초는 정말 바쁘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 올해 초였다. 어머님은 3년전, 설 연휴 전에 떠나셨다. 나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지만, 아내와 처남형님과 아버님은, 어머님이 그토록 성실하고 선하게 사시더니, 떠나시는 날마저도 사람들 불편케 아니 하려고, 설 시작되기 전에 떠나셨다고 입을 모았었더랬다. 따라서 매해 설 무렵에, 우리 부부는 항상 시간 맞춰 소은이와 함께 처가를 찾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이래저래 일들이 많았다. 먼저 처남 형님이 심한 독감으로, 행여나 소은이 옮을까봐 한 주 일정을 미루게 되었는데, 한 주 일정을 미루게 되자 계속 밀리게 되었다. 아내의 주말 당직, 친가쪽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 소은이의 재롱잔치... 그 다음주는 또 한 학기의 수료이자, 새 학기 시작을 알리는 회합이 있었던 주인데, 이렇게 몇 주가 밀리고 나니 도저히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피차 각자의 집안에 면목이 없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여동생과 어머니가 어떻게 도와주셔서, 2월 말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어머님의 밀린 기일을 챙길 수 있었다.
합천은 해인사로도 유명하지만, 딸기로도 유명하다. 포항 처가에서 달리면 대략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 정도. 초입에 들어서면, 세찬 바람 사이로 벌써부터 달콤한 딸기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착각에 빠진다. (방금 이 문장 내가 써놓고, 굉장히 정 선생님 왓슨빌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나무판자에 되는대로 '딸기' 라고 크게 써놓고 세워놓은, 도로 곁길 어느 딸기집에 들어가도, 딸기는 하나같이 달다. 설탕을 뿌렸나 싶을 정도로 달면서도, 결코 뒷맛이 느끼하거나 고역스럽지 않아 눈을 크게 뜨면서 자꾸만 먹게 된다. 딸기만 끓여 만든 잼도 많이 달지 않아서 빵에 발라먹기 좋다.
처가의 선산에 함께 모신 어머님 묘소는 조용하였다. 몇번 말한바 있지만, 소은이는 포항 할머니 보러 간다는 소식에 들떠 있다가, '자, 소은아, 할머니께 인사드리자.'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할머니가 어디 계세요?' 했다. 속으로는 난감하면서도, '응, 할머니는 천국에 계시고, 잠깐 이 안에 누워 쉬고 계시지.' 하며 묘소를 가리키자, 소은이는 또 큰소리로 '할머니가 이 안에 누워 있다구? 왜애?' 라고 해서 차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내가 소은이를 돌보는 동안, 나와 형님과 아버님은, 잡초 자라지 말라고 덮어놓은 비닐이 다 찢어지고 날아갔기에, 주변에 큰 돌을 주워다 비닐을 다시 깔고, 돌을 올려두는 정리 작업을 했다. 그 때 시간이 얼추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었다. 예상치 못한 작업을 좀 한데다, 서둘러 다녀올 생각에 아침을 대략 먹고 움직였으므로 다들 출출할 시간이었다. 아내는 합천 시내로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가자고 했다.
결론 : 지방 도시의 관공서 주변은 늘 기대 이상입니다.
허름하고 휑한, 지방 소도시에 까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기자기 예쁜 외관이 눈에 띕니다. 저도 처음에 언뜻 보고는, 까페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통로 왼쪽에 손 씻는 세면대가 있고,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이른바 '서빙 로봇' 이 바쁘게 움직이며 손님을 맞아줍니다. '우와, 로보트다! 엄마아빠, 보세요, 로보트가 국수를 갖다줘요!' 소은이가 가장 좋아하지요^^;; 일단 얼굴에 끼얹어지는듯한 구수한 국물 향이 장난 아닙니다. 연예인들도 많이 왔다간듯하고, 그 유명한 식객의 허영만 화백께서도 방문하셨었네요. 허영만 화백이나 백종원 사장의 입맛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순 없고, 저도 좀 경계하는 편입니다만, 개인적으로 허영만 화백 다녀가셨던 집은 그래도 제 입맛에 비교적 맞았던 경험이 많습니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색은, 면발이 가늘고 부드러우며, 국물이 진하지 않고 깔끔한 점입니다. 보통 어른들이 생각하시는, 아주 굵게 씹히는 면발에, 찐득할 정도로 점성이 강한 국물과는 정 반대의 방향이죠. 아내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맛이라, 아빠 입맛에는 좀 안 맞을끼라.' 했고, 아버님께서도 '마, 좀 가볍긴 한데, 갠찮데이.' 하셨지만 아주 입맛에 당겨하진 않으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칼국수를 찾아먹는 성격은 아닙니다. 조개구이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여동생 때문에 인천 소래포구의 조개구이집에서 항상 마무리 칼국수를 자주 먹곤 햇는데, 어렸을때야 멋모르고 먹었지만, 점점 커가며 영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밀가루향 풀풀 나고 덜 익은 굵은 면발에, 화학조미료 가득 뿌려 누린내나고 짠 국물까지, 칼국수 하면 보통 그런 줄 알고 커서 칼국수는 특별히 찾아먹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아내 말처럼, 그와는 정 반대의, 면발이 가늘고 부드러우며, 국물이 맑고 깔끔한, 그야말로 경쾌한 맛의 칼국수는 정말 처음인지라 무척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저는 고소한 맛의 들깨 칼국수를 주문했는데, 들깨 향이 강하면서도, 뒷맛이 끈적하게 늘어지지 않았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맛이라 매우 좋았습니다. 처남형님의 순두부 칼국수는 살짝 매콤하면서도, 간이 세지 않았고요, 일반 칼국수도 무난했습니다. 반면 만두는 좀 아쉬웠는데, 전형적인 시판용 '손만두' 였습니다. 쪄낸 시간도 약간 길었는지, 물기가 다 날아가지 않아 만두피와 속이 약간 질퍽했던 기억이 있네요. 김치가 의외로 칼칼하게 좀 매웠고, 합천 사람들이 즐겨드신다는 합천 밤막걸리 한 병 형님과 나눠마셨는데, 칼국수 못지 않게 무척 깔끔하고 괜찮앗던 기억입니다. 서울 북쪽에 지점을 냈다고 하시던데, 구태여 찾아가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여지껏 먹었던 칼국수 중에 가장 맛잇었습니다.
2. 포항 ㅆ
처가에 내려가면, 형님이 제일 바쁘시다. 어머님 살아 생전에는 어머님이 제일 바쁘셨다. 회 좋아하는 사위, 회 챙겨주시고, 그래도 아쉬울까 싶어 집에서 또 음식해주시고, 소은이 이뻐해주시고,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는 말씀이 꼭 맞으셨다. 어머님 가시고 나서는 두 살 어린 처남 형님이 바쁘시다. 때맞춰 저녁 해놓으시랴, 또 먹는것 좋아하는 매제랑 놀아주랴, 그저 외삼촌 좋아하는 조카와 놀아주랴, 늘 속없는 부녀는 처남이자 외삼촌 신세만 실컷 지다간다.
아버님과 형님이 다시 교회를 다니시지 않게 되면서, 주일 아침이 비게 되었다. 형님과 아버님 쉬실겸해서 아내와 나와 소은이만이라도 처가 교회를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곧 접었다. 아내 말로는, 안그래도 아버님과 형님이 교회를 다시 나가지 않게 되었는데, 괜히 안부를 묻게 되고, 불편할거라고 했다. 그래서 주일에는 늦잠 좀 자다가 아이를 놀릴만한 까페에 가서 한번 놀고, 돌아오며 어머니 아버지께 드릴 지역 물건 좀 사면 벌써 느지막한 점심 때가 된다. 밥 먹고, 좀 쉬다가 씻기고 짐 챙기면, 벌써 오후 6시의 포항역 기차탈 시간이 가까워져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 때에는 뭐니뭐니해도 집 앞 중식집을 자주 간다. 이미 점심 시간이 지나 제법 넓은 중국집 안은 한산하다. 있어도 한두 명뿐이니 아이 데리고 다니는 입장에서는 덜 부담스러워 좋다.
결론 : 지방에는 맛있는 중화요릿집이 많습니다.
인천을 통해 중화요리와 중국권법이 전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바다 근처는 상품과 문화가 나가고 들어오며 서로 접촉하고 발전하는 곳이 아닌가 합니다. 아내의 직장 앞에도 눈이 번쩍 뜨일 중화요릿집이 있듯이, 처가 근처에도 그런 곳이 잇는데, 포항의 ㅆ은 상경 열차를 타기 전에, 음식이 맛있고 빨리 나와서 자주 애용하는 곳입니다. 평소에는 혼자 지내는 형님도 종종 자주 드시는 곳이라고 하네요.
평소에는 늘 짜장면을 주로 먹다가, 속도 풀겸, 중식 우동을 주문해보았습니다. 맑은 국물에 쑥갓, 달걀, 어묵, 튀김 등의 고명을 얹고 깔끔하게 말아내는 방식이 일식이라면, 중식 우동은, 전분과 달걀을 많이 풀고, 국물에 기름이 들어가서 훨씬 풍성하고 박력있는 느낌이 있죠. 면도 중화면이라 그런지 일식 우동면보다는 훨씬 강하게 씹히는 느낌입니다. 우동 국물이 무척 개운해서, 제 입맛에도 잘 맞았고, 다들 한번씩 드셔보시더니, 저의 음식이 제일 좋았다고들 다들 그러셨어요. 아내와 형님이 주문한 쟁반짜장도, 탕수육도 모두 맛있었지만, 형님과 실컷 놀고 다음날은 역시 냉면 아니면 우동, 개운한 국물이 꼭 필요합니다! 이런 날은 자주 있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