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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Sep 23. 2022

내 입맛은 내가 알아요

틀리다와 다르다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 안 넣어먹어요. 국물 분홍색 되는 거 싫어요.

평양냉면에 식초 설탕 넣어 먹어요. 가끔 가위로 자르기도 합니다.

물평냉 아니고 비빔평냉 좋아합니다. 아주 구수하거든요.

오렌지쥬스 잘 못 먹어요. 역류성식도염이예요.

아메리카노 말고 라떼 좋아합니다.

대안언론사에서 일했습니다. 좌파 우파 다 아닙니다.


사람들은 가끔 내가 음식을 먹는 법에 참견을 한다. 우리 친정아빠는 자꾸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넣어먹으라'며 부으려고 하시고(나는 밥마는 것도, 국물 색깔 변하게 다른 거 막 넣는 것도 안 좋아한다),

몇 해 전부터 평양냉면 붐이라 먹으러 가서 비빔냉면 시켜먹으면 정말 무슨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너 평냉 먹을 줄 모르는구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냉면가루 공장집 딸이다. 평냉이 유행하지 않을때, 초등학교 때부터 30년째 평양냉면 먹고 있다. 심지어 아빠엄마가 한 일년쯤 집 한켠에서 냉면가게를 했는데 나는 매일 가서 냉면 먹었다. 좋아해서).


나는 그냥 원래 있는 음식에 뭘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양냉면 비빔으로 시키는 이유는 어릴 때 물냉면을 너무 많이 먹어서다. 그리고 나는 평냉 속 메밀의 구수함에 비냉 양념이 어우러진게 함흥 비냉보다 덜 자극적이고 매력적이어서 좋아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기육수에 식초를 살짝 넣으면 구수한 맛을 오히려 증폭시킬 수 있다. 신맛을 즐기는게 아니라 구수한 맛을 높일 때도 식초를 넣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은 최근 어떤 요리 블로그에서 봤다. 해봤더니 과연 그렇다. 대국민접대주스인 오렌지주스는 이상하게 먹을 때마다 뒤가 안 좋아 안 먹는다고 하면 "이걸 왜 거절?"이런 눈빛이 돌아온다. 커피를 좋아하는데도 라떼 마신다고 하면 "커피 마실 줄 모르는구나"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나름의 이유가 있건만 자꾸 "먹을 줄 몰라서 그러는구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세인 먹는 법을 따르지 않으면 자꾸 나한테 "너 먹을 줄 모르는구나"라고 한다. 나중에 보니 "먹어본 적 있니?"라는 표현을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혹시 그런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나 먹을 줄 모르기보다 내 방법이 있는 다. 그저 다르게 먹을 뿐이다. 대세에 따라보고 내 방법도 써보고 고른 나의 방법일 뿐.


나에게도 조금의 반골 기질은 있는지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더더욱 내 맛, 내 취향을 고집하게 된다.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당신 옆의 그 사람도 나름 다 시도해보고 고른 방법일 수 있으니 당신의 먹는 법과 다르다고 너무 안타까워하며 "너 먹을 줄 모르는구나"라고 할 필요는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이 말 자체가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 넌 그렇게 하는구나, 난 이렇게 하는데"하면 한번 시도해볼 수도 있는 게 "먹을 줄 모르는구나", "할 줄 모르는구나?"하면 "아뉜뒈?나 할 줄 아눈뒈?"하는 반응을 부르게 된다. 그러니 저 말은 오히려 상대가 스스로 해보게 하고 싶을 때 하는 것디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직장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내 마지막 직장은 대안언론사였다. 그 전 직장에서 이 곳으로 옮길 거라고 했더니 관리자 한 분이 "아 좌파시구나"했다. 내가 가는 곳이 정치색은 전혀 없는 곳이었음에도. 오, 나는 몰랐는데 대안언론사 가면 좌파구나. 거침없이 나도 모를 나를 규정지으시는 그 분의 용기에 감탄이 나왔다.


다르다틀리다고 쓰는 것에 대한 지적은 계속돼왔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참 많이 틀리는 사람들이 많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이 글을 또 쓰는 건 여전히 자기와 다른 걸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픽사베이

평양냉면에 식초를 뿌려먹는 것도,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는 것도, 대안언론사에서 일하는 것도 그 사람의 옳고그름은 당연하고, 특성 규정짓기에 충분한 요인이 아니다. 그냥 그 순간의 최선의 선택, 혹은 경험에서 기인한 자신의 선택이었을 뿐. "아, 너 먹을 줄 모르는구나"라고 말하는 대신 그 사람의 방법을 따라해보면 어쩌면 지금 내 방법보다 더 나은 길을 알게될 수도 있다. 나도 홍어 같은 냄새 심한 음식을 못 먹을 것처럼 굴다가 삼합을 권한 지인과의 식사 이후로는 삼합 귀신이 다. 사실 평냉에 나도 식초 설탕 안 넣었다. 먹어보고 지난 날의 내 선택을 후회했을 뿐.


사족, 몇년 전 대통령 방북으로 평양에 기자단이 갔을 때 옥류관을 방문했다고 한다. '본토인'들은 어떻게 먹는지 궁금했던 남한 기자들이 이거 어떻게 먹냐고 물으니 "뭘 어떻게 먹습네까, 설탕 식초 뿌려 드시라요" 했다던가. 름모를 북의 그 양반 이렇게 말하신 건 아닌가 모르겠네. "남한 기자양반, 드실 줄 모르는구만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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