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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Sep 26. 2022

오메, 단풍들겄네

자나깨나 잊을 수 없는 오매불망의 기억

그런 날이 있다. 뭐에 씌인 날. 말도 안되는 실수가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날. 사실 그런 날은 일을 안해야 하는데. 매인 몸이 그게 되나. 먹고사니즘에 입각해 일하는 것이지.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뭐에 씌인 건지 기사에 오매불망을 오메불망으로 써서 내보냈다. 8년 쯤 전 주말 아침이었던 것 같다. 단풍철이 다가오니 문득 그날의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생각을 좀 하면 오메불망은 실수하기 힘든 단어다. 저게 사자성어인데, 한자 중에 '메'자가 있긴 한가.

그러니까 뭐에 씌였다는 거다.

진짜 없을 줄이야. 네이버 갈무리

오매불망 寤寐不忘 자나깨나 잊지 못함


뭐 핑계는 많다. 당시 내 생활이라는게 8시부터 기사 낼 준비로 시작해 종일 시달리다가 집에 와서 육아에 지쳐 잠들고 다시 겨우 깨는 만성피로의 순환이었으니까.


돈 많이 든다고 교열부도 없앤 회사도 원망스럽고, 먼저 못 본 데스크도 원망스럽고.


그렇게 맘에 드는 기사는 픽해주지도 않던 포털이 그날따라 오자 문제뿐 아니라 내용도 별로인 그 기사는 어째 또 떡하니 잘 보이는데다 걸어놨는지.


틀렸다는 걸 알자마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수정에 나섰다. 주말이다보니 지면이 아니라 온라인만 나간 기사라서 회사 쪽 기사 수정은 수월했는데 포털에 나간 기사는 수정 자체도 복잡하고, 반영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계속 오메불망을 지켜봐야 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지 않나. 그날 나는 오메불망도 모르는 기자가 됐다.

재밌긴 얼마나 재밌나. 오메, 오메라니. 그렇게 댓글이 많이 달린 내 기사도 드물거다.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댓글을 보며 수치심에 몸을 떨다가, 한 댓글에서 잠시 마우스가 멈췄다.


기자 양반, 오메 단풍들겄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저 시구를 인용한 댓글이었다. 수많은 비난과 지탄 사이에서 그나마 낭만적이고 점잖은 댓글이었달까. 쿵쾅쿵쾅하던 심장과 빨라지던 호흡을 그때야 천천히 가다듬었다. 그래 실수한만큼 욕먹고 넘겨야지 어쩌겠나..이제는 그날도 그렇게 지나간 날이 됐다.


사족. 저날은 잠결에 틀렸지만 이제는 정말 자나깨나 오매불망을 틀리진 않을 것 같다..고 쓰다가 오메불망이라고 쓰고 있는 나를 발견. 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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