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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Aug 28. 2022

잊을 수 없는 오자의 기억

메시지와 메세지 그리고 소시지

메시지


15년 쯤 전 수습 시절. 모처럼 일면 한귀퉁이에 박스 기사가 나간 날 옆 부서 선배 한 명이 불쑥 접은 신문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내 자리를 떠나버렸다. 뭔지도 모르고 망연자실 앉아 있다 신문을 들여다보니 내가 '메세지'라고 쓴 부분에 볼펜으로 x자 표시가 돼있고, 큰 글씨로 '메시지'라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오자라는 얘기다.

황급히 인터넷을 뒤져 외래어표기법을 찾았다.

message는 발음이 [ˈmesɪdʒ]로, [ ɪ]의 발음은 '이'로 표기하며 '메시지'가 외래어표기법에 맞다는 것을 찾다가,

[|sɔːsɪdʒ]로 발음되는 sausage는 '소시지'가 맞는 표기법

이라는 것도 덩달아 알게 됐다.

뭔 말인진 알겠는데 선배의 행동이 이해가 잘 안된다. 웃지도 않고 말도 안하고 떠나신 걸 보면 오자가 나서 화나신건가?그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도통 모르는 수습은 아까 있었던 일 이후로, 선배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이 집중돼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옆부서라봐야 눈에 보이는 자리라서 선배가 움직일 때마다 움찔움찔. 이제 뭐 말하러 나한테 오시는건가 하지만 다른 데로 가시고, 동기한테 뭐 말하면 내 얘기하시는 건가 싶고. 이게 휘청휘청 수습 마음.


이제 그 선배는 볼일이 없어졌지만, 그 회사에 10년이나 있었으니 어떤 분인지 겪어서 들어서 제법 알게 됐다. 선배의 됨됨이로 봤을 때 잠깐 선배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 저 행동의 순서도를 그려보면,

수습은 언제나 긴장해있다.

내가 맞춤법 지적하면 쟤는 더 긴장하겠지

그리고 쟤네 부서의 관심에 나와 쟤에게 집중될 것이다.

그럼 오자난 걸 모두가 알게 되겠지

그럼 쟤네 부서 선배들에게 혼나겠지

최대한 표내지 말고 알려줘야겠다

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 그 선배는 그 희귀하다는 좋은 선배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한껏 위축됐을 수습이었던 그 시절이 우습지만, 그래도 선배. 말을 좀 하시지 그랬어요. 완전 쫄았잖아요. 그리고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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