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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Mar 25. 2024

2천 년 된 거대한 기록영화 필름,
'트라야누스의 기둥

거대한 기둥에 부조로 새겨 넣은 역사의 한 장면, 장면들.

 베네치아 광장에서 '조국의 제단'을 등지고 오른쪽을 보면 두 개의 둥근 돔이 있는 성당이 보입니다. 그 바로 앞에 눈에 띄는 높게 솟아있는 큰 기둥이 있습니다. 자칫 보면 '포로 로마노'에 많은 열주 중에 하나로 생각하고 스쳐 지나가기 쉬운데. 이 기둥은 로마의 중요한 건축유산이자 기록유산입니다. 


이 기둥은 바로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둥' 또는 '트라야누스의 원주'라고 불리는 건축물입니다. 이 기둥은 전체 높이가 40m에 이릅니다. 로마제국의 13번째 황제인 '트라야누스'황제가 만들었고, '포로 로마노' 안에서 '황제들의 포룸'이란 지역에  '트라야누스 포로'에 위치하고 있는 기념 기둥입니다. 이 기둥은 트라야누스 황제의 원정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원로원과 시민들의 후원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1세기말에서 2세기 초 집권한 황제인데, 그는 로마시대에 영토를 가장 많이 넓힌 황제이며, 로마의 최고전성시대인 ‘로마의 평화시대’를 만든 '오현제(五賢帝)' 중 한 명입니다.

'트라야누스 포로'에 세워진 '트라야누스 원주'

이 기둥은 지름이 3.5m나 되는 대리석 원통을 쌓아 올려 세운 기둥입니다. 그런데 대리석 한 개의 무게가 무려 32톤이나 된다고 하니 역시 로마의 건축기술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기둥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40m에 기둥을 세워 2천 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있다니 말입니다. 하긴 로마가 세운 수많은 건축물 중, 특히 남아 있는 수도교를 보면 다른 건축물과는 또 다른 감탄을 하게 되는데, 이 기둥을 보면 로마인들의 기술과 섬세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 기둥에 사용된 대리석은 세계 최대 대리석 산지인 이태리 북부 '카라라'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카라라의 대리석은 19세기까지 유럽의 대표적인 최고급 대리석의 산지였고, 베드로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성모상' 등 로마는 물론 유럽의 유명한 건축과 조각의 재료로 사용된 대리석입니다. 


트라야누스 기둥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기둥에 새겨진 나선형 띠 모양의 부조 때문입니다. 40m의 기둥에 정교하게 새겨진 부조는 총 200m의 긴 띠에 새겨진 인물들에 의해 장엄한 그림의 서사가 예술적인 가치나 역사의 기록적인 가치로 명성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부조 조각은 매우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가 돋보입니다. 기둥에는 총 2천5백 명이 넘는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고 합니다.

기둥에 새겨진 나선형의 띄와 그 안의 묘사된 전쟁장면들

기둥에 부조를 새겨 넣은 나선형의 띠는 마치 영화필름을 늘어뜨려 놓은 착각을 들게 합니다. 그런데 이  띠의 폭이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사람들이 기둥의 밑에서 바라볼 때 띠의 폭이 같은 너비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기둥 몸체에는 101~102년, 105~106년에 있었던 다치안 전투를 묘사하고 있는데요, 총 155개의 장면이 영화의 필름처럼 서사의 구조를 가지고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가운데 새겨진 승리의 여신을 기준으로 두 차례의 전쟁장면을 나누어 표현했습니다. 이 부조 조각의 내용은 전쟁의 전투장면, 행군 장면뿐만 아니라, 공격과 포위 전술, 군선제조, 야영모습 등도 묘사되어 있어, 로마 전성기의 당시의 군사 관련 자료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야외에서 이 기둥을 바라보면 자세한 그림의 모습들을 보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이 기둥에 그림들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으시다면, (저는 시간이 안되어 가보지 못했지만) 로마 외곽에 있는 <로마 문명 박물관>으로 가시면 '트라야누스 기둥'의 부조의 조각 한 장면 한 장면 들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서사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세밀하게 묘사된 전쟁장면들.

기둥의 부조는 원래 다채롭게 채색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2천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바래고 풍화작용에 의해 하얀 대리석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1587년까지 기둥의 꼭대기에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조각상이 있었지만, 이후 ‘성 베드로’의 동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기둥을 벤치마킹해 1810년 나폴레옹 1세가 프랑스 '방돔 광장'에 청동 기념탑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좌) 채색된 원주의 상상복원도 (이미지 출처 : getarchive.net) / (우) 현재의 퇴색된 부조 모습 (이미지 출처 : wikimedia.org)

'트라야누스 원주' 주변에서 또 유심히 봐야 할 곳이 있는 데요. 바로 '트라야누스 시장'입니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둥 동쪽으로 커다란 반원형태의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AD. 100-112년 사이에 건축된 건물인데, 6층으로 된 건물 내부에 총 150개가 넘는 상점과 사무실이 있고, 음식점과 술집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거대한 시장은 당시 로마 생필품 공급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점령한 각 곳에서 들어온 다양한 물건들과 식료품 등이 이곳에서 거래되었습니다. 중동에서 들려온 실크와 향신료, 포도주와 기름, 과일과 생선, 꽃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상품들이 거래되었습니다. 이곳은 오늘날의 ‘대형 복합쇼핑몰’ 같은 곳으로, 규모나 판매되었던 물품의 수로 비추어 현대의 대형 마트나 쇼핑몰에 뒤지지 않는 규모입니다. 

'트라야누스 마켓'의 현재 모습 (이미지 출처 : worldhisto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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