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 산타'는 ‘거룩한 계단’을 뜻하는 말인데요, 그래서 이 성당은 ‘성계단 성당’으로 불립니다. 이 성당은 '라테라노 대성당'의 부속성당으로 교황의 개인 기도실로 이용되던 성당입니다. 그래서 직전 연재글에 <라떼라노 대성당>과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스칼라 산타' 성당의 외관, 라떼라노 성당을 바로 마주보고 있다.
이 성당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곳으로 순례코스에서 빠질 수 없는 곳입니다. 그 이유는 이곳에 '성스러운 계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사형 언도를 받던 날 오르내렸다고 전해지는 계단이 있기 때문인데요, '성 계단'은 대리석으로 된 스물여덟 개의 돌계단으로 성당의 중앙 현관으로 들어가면 나옵니다. 이 계단은 교황의 개인 기도실로 올라가는 곳으로 놓여 있습니다.
(좌)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내려오던 계단의 모습을 그린 성화 / (우)성당 중앙에 놓인 '성계단'의 모습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이 계단은 본래 예루살렘에 있던 '본디오 빌라도' 총독관저에 있던 계단의 일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기독교인들이 낭송하는 '사도신경'에도 등장하는 인물인데, 예수 당시 이스라엘을 점령했던 로마제국의 총독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형 선고를 내린 인물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당시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그저 미치광이 취급하고, 몇 대의 채찍형으로 마무리하려 했으나, 유대인 랍비들과 지도자들의 압박으로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자신의 뜻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손을 씻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계단은 바로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끝려간 날에 오르고, 내렸던 계단인 것이죠.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던 계단이 어떻게 로마로 옮겨져 '스칼라 산타' 성당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헬레나'는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정치적으로 박해받던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상당한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그녀는 당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그녀는 4세기말 성지 순례를 떠났고, 황제의 어머니로써의 권위와 부를 이용해, 예루살렘 등 각지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 그리고 성인들의 유물들을 수집해 이곳 로마로 옮겼습니다. 그녀가 발견한 유물로는 이 '성 계단' 이외에도 예수가 못 박혔던 십자가, 당시 예수가 입었던 옷, 십자가에 묶인 밧줄 등을 발견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헬레나'황후의 석관이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좌) '성계단'을 무릎으로 오르고 있는 순례자들의 모습 / (우) 바티칸에 있는 '성 헬레나'의 석관
순례자들은 이 계단을 무릎으로 하나씩 오를 때마다 특별히 마련된 짧은 기도문을 바칩니다. 종교 여부와 상관없이 이 계단을 걸어서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비 종교인이나 걸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양 옆에 걸어서 오르거나, 내려갈 수 있는 일방통행의 계단이 별도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신다면 기독교인이라면 순례자의 자세로 성계단을 오르시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기독교인이 아니신 분들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계단을 이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2번 정도 이 성당을방문했는데 (두 번 모두 2019년 코로나 이전) 당시에는 대리석 계단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로 덧씌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무릎 꿇고 오르며 계단을 어루만져서 나무 계단 역시 닳고 움푹 파여있었습니다. 그런데 2019년 코로나 시기에 이 계단이 보수공사를 하면서 나무판자를 모두 걷어내고 하얀 성계단의 대리석 계단이 본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일정기간 이 대리석 계단을 직접 만지고 오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이후 가 보지를 못해서 보도자료를 통해 수집한 정보입니다.) 추후 다시 나무판을 설치한다고 나온 기사도 보았는데, 실제 지금도 원 대리석 계단을 오를 수 있는지, 아니면 나무판자가 다시 설치되어 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네요. (혹시 최근에 다녀오신 분이 있다면 정보를 댓글로 알려주세요~^^)
(좌) '성계단'에 남은 예수의 핏자국 / (중) 예배당 내부 / (우) 교황의 개인기도실 '산타 산토룸'
이 대리석 계단에는 예수의 핏자국이 남아 있는 4개의 표식이 있습니다. 이 성스러운 핏자국은 십자가 문양으로 표시해 놓고 핏자국은 격자의 틀로 보호해 놓았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예배당이 나오고, 예배당 옆으로 교황이 중세 이전에 '라떼라노 성당과 궁'에 머물던 시기, 교황들이 사용하던 개인 기도실 ‘산타 산토룸’이 있습니다. 이 기도실에는 천사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손 없이 그려진 그림>, 또한 <천사가 그린 예수의 얼굴 그림>이라 불리는 그리스도의 초상과 '최후의 만찬'에 예수가 앉았던 의자의 조각 등 여러 가지 보물이 보관돼 있습니다.
(좌) 천사가 그렸다는 예수의 그림 / (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앉았던 의자의 조각
성당 외부, 계단 양쪽에 있는 대리석상은 <군중들에게 예수를 소개하는 총독 빌라도>와 <예수님께 입맞춤하는 유다>를 표현하는 석상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신자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만 비 신자라고 하더라도, 이 성당을 방문하면, 우리가 성경이나 이야기 속에서만 듣던 예수의 흔적과 고통, 2천 년이 넘게 보관되어 온 유물들이 남아 있어, 당시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들어온 느낌을 주는 경건한 성당입니다.
(좌) '예수'를 군중에게 소개하는 '빌라도' / (우) '예수'를 배반한 후, 예수에게 입맞춤하는 제자 '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