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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Oct 24. 2022

마라톤 대회가 시작됩니다

 알람이 울린다. 오늘은 수요일이고 새벽 5시라고 말해준다. 길게 울게 내버려 두고 계속 잔다. 여름 끝자락에 이불을 둘둘 말고 '알람아, 너는 울려라... 나는 모르겠다.' 달콤하다. 한 시간 동안 이불 안에서 시간을 뭉개고 간신히 일어난다. 동쪽 하늘,  구름 사이로 해가 나와있다. 명상을 한다. 어설프게 집중한다. 옷을 갈아입고 달리기를 하러 간다. 어제는 쉬었는데 오늘을 뛰어야겠다. 선선하다. 잘 뛰어진다. 

 집으로 돌아와 몽이 밥을 주고 산책을 데리고 나간다. 한약을 한 봉지 다 먹어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볍다. 싫어하지 않고 졸랑졸랑 신나게 걷는다. 신나게 걷는 뒤꽁무니가 가볍다. 몽이 뒤 꽁지를 보고 있으면 입꼬리가 쓰윽 올라간다. 집에 와서 단호박에 칼집을 깊이 내고 레인지에 3분 정도 돌린다. 몽이랑 나누어 먹는다. 다시 드러눕는다. 숙제가 있는데 그래도 눕는다. 힘들다... 허억...


 지난 일요일에는 영남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길가에 교통 통제 안내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이제 마라톤 하는구나, 신청해야겠다.' 신청하러 사이트를 열어보니 이미 마감되었다. '현장 접수하면 될 거야' 생각했다. 7시 30분까지 집결해야 되고 출발은 8시였다. 심장이 요동친다. 여름 내내 뛰었으니 뛸 수 있을 거야.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왠지 가기가 싫었다. 현장 접수가 되려나 걱정도 되고 뛰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밍그적 밍그적 식탁에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7시 20분이 넘었다. 자전거를 빨리 몰았다. 스타디움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입구에 있는 거치대에 자전거를 매어 두고 진행본부로 갔다.


 나 :"10km 접수되나요?"


 안내 : "안됩니다.


 나 : "음.. 그냥 좀 뛰어도 될까요?"


 안내 : "진행 요원이 잡을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인원 제한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시계는 벌써 7시 55분이다. 번호표도 없이 스타디움 안에서 출발하는 건 민망했다. '중간에 슬쩍 끼어들어가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건너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프 참가자들이 지나갔다. 10km 참가자들도 지나갔다. 좀 기다렸다. 슬그머니 끼어들려는데 구급차와 행사 진행 차량이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벌써 끝난 거야? 이게 다야... 너무 적네.' 인원 제한을 해서 그런지 사람이 적었다. 그냥 도로 옆 인도에서 뛰기 시작했다. 이번 대회 10km 코스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시작해서 범안 삼거리에서 지산동 쪽으로 가는 코스였다. 삼거리에서 잠시 뛰는 대열과 합류했다. 횡단보도가 없어서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우회전하는 차량과 왼쪽으로 뛰어가는 사람들이 같이 뒤엉켜 있었다. 내리막에서 함께 뛰다가 인도로 올라갔다. 내가 뛴 길은 403번 버스를 타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길이다. 걸어본 적은 없다. 오르막이라서 헉헉거리면서 뛰었다. 동네 시골길로 들어섰다. 범안로 차도는 새로 닦은 길이라 지대가 높았고 예전부터 있던 동네 마을 길은 낮았다. 근처에 연못이 있어서 공기가 끈적했다. 과수원도 있었다. 과수원 아래 흰색 봉숭아가 예쁘다. 탐 나서 씨방 몇 개를 땄다. 길 가던 아주머니가 '흰 꽃이 이뻐요?' 하고 물으신다. '네... 이쁘네요.' '예전에는 흰색이 없었던 것 같은데' 하신다. 나도 그런 거 같다고 답한다. 길 위쪽으로 사람들이 달리고 있다. 나도 좀 뛰어본다. 숨차고 힘들다. '혼자서는 못 하겠네...'

 잠시 뒤 반환점이 나온다. 도로 건너편에 나이키 민소매 상의를 입고 번호표를 등에 단 여성이 뛰고 있다. 연습을 많이 한 몸이다. 늦게 왔는지 대열에 합류를 못하고 길에서 뛰고 있었다. 나는 반환점에서부터는 힘들어서 타박타박 걸었다. 아까 본 봉숭아들이 보인다. 보라색 봉숭아가 서운해할 것 같다. 가서 몇 꼬투리를 데리고 온다. 도로 아래로 건너가니 삼덕동 포도 직판장이 나온다. 길을 따라 올라가니 미술관 가는 길이다. 길가에서 뛰다가 잠시 대열에 합류해 같이 뛰어본다. 저 앞에서 손뼉 치는 봉사자들이 보인다. 박수받을 만큼 뛰지 못해서 슬쩍 빠져나온다. 마지막 힘을 내어 자전거 매어놓은 곳까지 뛰어갔다. 10Km는 못 뛰었고 6Km 정도 뛴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밥을 먹고 맥주도 한잔했다. 


  일요일이 천천히 지나갔다.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 옆에서 뛰어본 건 처음이었다. 뛰면서 달리는 사람들 표정과 몸짓을 봤다. 다들 진지했다. 마라톤이 쉽지는 않다. 심장이 터질 듯하고 허벅지는 무겁다. 아스팔트 위라서 발목도 아프다. 종아리도 많이 당겨온다. 호흡도 가쁘다. 

 그래도 달리는 일은 참 재미있다. 뛰다가, 걷다가 하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진다. 숨을 헐떡이면서 깔깔거리는 소녀 마음이 되기도 한다. 원래 우리 몸은 많이 달리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인류는 치타처럼, 호랑이처럼 빨리 달리지는 못하지만 40km를 계속 달릴 수는 있다.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할 때 사람들은 동물을 뒤쫓으면서 계속 뛴다고 한다. 처음에는 동물이 사람보다 빨리 앞서 나가지만 사람처럼 오래 뛸 수도 없고 체온 조절도 못해서 멈춘다고 한다.  더이상 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헐떡이고 있을 때 사람들에게 잡힌다고 한다. 오래 뛰는 인간의 능력은 동물보다 약한 우리에게 신이 준 선물 같기도 하다. 그것은 원시 시대에는 우리를 먹여 살렸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달리면 즐겁고 유쾌해진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뛸 때 울리는 심장의 박동 소리와 땅을 딛는 힘찬 발걸음 소리가 함께 내는 하모니는 내가 들은 소리 중 가장 멋진 소리였다. 


 원시시대의 달리기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다. 빠르고 힘센 자가 가장 많은 먹이를 얻었다. " 더 빨리, 더 오래' 달리기는 생존의 문제였다. 하지만 '100m를 몇 초에 달리는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오직 사냥감보다 더 빨리,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자가 이 세상 최고의 스프린터였다. 먹이를 놓친 자는 한 마리 굼벵이일 뿐이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매일 사냥감을 쫓아 40Km 이상씩 달렸다. 그들의 산소 섭취량은 현대인보다 50% 많고, 뼈는 20% 더 강했다. 모두가 이봉주의 심장과 국가대표 같은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달리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었다.

                                                                                                     ---- 김화성 기자의 글 중에서


 나도 갖고 싶다. 그들의 심장과 근육을... 언제 한번 철인 3종 스프린트 대회를 나가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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