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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Oct 24. 2022

백일몽

 아들이 입대했다. 지난 월요일 오후 3시 진해에서 해군 훈련병으로 들어갔다. 머리는 일요일에 미리 깎았다. 머리를 싹 밀고 오면 마음이 아플 거라고 상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우리 아들, 머리 깎아도 잘 생겼네.’ 라며 생뚱맞은 생각을 했다. 

 아들은 어렸을 때 자주 넘어졌다. 이마에 있는 긴 흉터는 누나랑 장난치다가 넘어져서 생겼다. 계단 모서리에 콱 찍혀서 흉이 깊고 길다. 한 번은 대중목욕탕에서 넘어져서 뒤통수가 길게 찢어졌다. 그때 아들은 4살, 딸은 6살이었는데 아이들 옷을 급하게 입히고 허둥거리며 동네 병원으로 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등에 땀이 난다. 물기가 배어 있는 대중목욕탕 바닥에 핏자국이 벌겋게 번져갔었다. 다친 곳이 뒤통수라서 성형외과에 가지 않고 동네 외과에서 꿰매고 왔다. 그전에 몇 번 아이 얼굴을 꿰맨 경험이 있었지만 뒤통수를 세게 박아서 많이 놀랐다. 그날 밤 잠자는 아이 얼굴에 빨간 점 같은 열꽃이 가득 피었다. 피어오르는 열꽃을 보면서 밤새 발발 떨었다.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이튿날 아침 열꽃이 없어졌다. 그날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말아야 했다. 나는 무서워서, 데리고 있기가 겁이 나서 그냥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유치원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야 됐는데 참 제정신이 아녔구나, 이런 내가 아이한테 무얼 바랄 수 있겠나... 낳았다고, 밥을 해준다고, 사랑한다고 입으로 말한다고 엄마라고 할 수 있겠나...

 손이 재빠르지 못하고, 몸이 약한 나는 뭘 모르고 연년생을 낳았다. 밖에 나가서 온갖 똑똑한 척은 다 하고 다녔지만 아는 게 없었다. 둘째 아들아이를 낳고 몸이 상해서 1년을 누워 있었다. 큰 아이는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아이는 분유를 먹고 나는 적당히 밥을 입에 밀어 넣고 계속 누워 있었다. 아이는 배밀이를 할 때 누워 있는 엄마 배 위를 오르내리며 놀았다. 그때 나는 몸이 아팠던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팠다. 그걸 이제, 20년이 지나 알다니 멍한 것은 사실이 맞다. 남편은 미웠고 시댁은 싫었다. 깊은 통곡이 늘 마음에서 쏟아져 나왔다. 지금 왜 여기 있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가슴이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둘째를 보면 늘 마음이 아팠다. 8개월 때 조산기가 있어 입원을 했었다. 퇴원해서 출산할 때까지 두 달 동안 계속 누워있었다. 엄마 배속에서 아이는 머리를 아래 방향으로 두어야 한다. 그런데 두 달 사이에 머리를 두 번이나 위쪽으로 돌렸다. 그런 위치를 역아라고 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다행히 출산일에는 본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임신했을 때 입맛이 없어서 잘 먹지도 못 했다. 태어날 때 몸무게가 2.9킬로였다. 그 시절 남자아이의 평균 몸무게는 3.5kg이었다. 많이 부족한 편이었다. 다리만 길쭉하고 살이 없었다. 백일까지 많이 울었다. 뱃속에서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백일이 지나자 3.5kg이 되었다. 자라면서 아이는 순하고 따뜻했다. 성정이 보드라운 편이었다. 어릴 때도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오늘 오전에 낮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 이것저것 하고 8시쯤 잠깐 자려고 누웠는데 11시까지 자버렸다. 꿈을 꿨다.

 

아들이랑 우리 강아지랑 시장에 갔다. 강아지가 똥을 싼다. 굵고 길었다. 1미터쯤 되었다. 반으로 길게 접힌다. 가방을 열어보니 비닐봉지가 없다. 당황스럽다. 시장에 사람들이 오고 간다. 앞을 보니 웬 아주머니가 비닐봉지를 팔고 있다. ‘아줌마, 봉지 한 개 주세요!’ ‘00원입니다.’ 주머니를 꺼내니 동전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건 쓸 수 없는 동전들이다. ‘아줌마, 나중에 드릴 테니 1개만 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갑자기 눈물이 난다. 주르륵. 누군가 자기 돈을 내고 봉지를 하나 사주었다. 허둥거리며 똥이 있는 자리로 가니 길고 반으로 접힌 똥 아래 종이가 깔려 있다. 허둥거리며 보니 아까 그 자리가 아니다. 누가 길 한쪽으로 얌전히 종이를 깔아서 치워 놓았다.


‘아, 아들은 어디 갔지? 안 보이네...’

 

 잠에서 깼다. 꿈이 선명하다. 강아지똥이 반짝이는 필름에 싸여 있었다. 필름에는 여러 가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날은 아들이 입대한 지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부터 인터넷 편지를 쓸 수 있었다. 꿈이 참 신기네... 강아지 피부가 안 좋아서 약을 발라주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청소기를 돌린다. 강아지 각질이 자꾸 떨어진다. 덕분에 집이 깨끗해진다.

 늦은 아침을 가볍게 먹고 강아지도 계란 노른자를 조금 주었다. 책을 읽어볼까 하고 앉았다. 휴대폰을 열어 보니 친한 언니가 전화를 했었다. 청소기 소리에 묻혔나 보다. 반가웠다. ‘그래. 잘 지내나요? 우리 딸도 어제 학교로 올라갔어요.’ 두  여자는 자식과 떨어지는 슬픔을 나눈다. 언니는 너무 어지러워서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아무 이상이 없더라고 한다. 아이가 가던 날 마음이 에이고 눈물이 주르륵 났다고 한다. 언니 딸아이는 지난 2년 동안 학교 수업을 집에서 수강했다. 코로나로 대면수업이 전면 취소되었다고 한다. 언니가 ‘이제 학교에서 수업을 할 것 같네, 취직하고 그러면 같이 살 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음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언니는 가끔 ‘나는 둘째가 더 이쁘고 큰 아이는 조금 덤덤해’라고 말하곤 했다.


  "근데 그게 아닌가 봐...."


  "언니, 병명을 알겠어요. 그게 바로 상사병이어요, 하하"


 두 엄마는 애절함을, 그리움을 길게 길게 토해놓았다. 그것은 꾸물꾸물 안에서 나와 꺽꺽거리다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에이고 시린 마음들도 조금씩 옅어졌다. 봄은 깊어가고 꽃들은 피어난다. 동네 어귀에 벚꽃들이 활짝 피어난다. 조금씩 꽃비가 되고 있다. 어여쁜 우리 아가들도 이제 꽃으로 피어난다.

 

‘그럼, 꽃이지...’ 보고 있으면 눈부시게 아름답다. 내가 키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다. 우주가, 세상이 키워 준 거였다. 나는 공짜로 그 옆에 있었을 뿐이었다.


                                                                                   22년 봄. 사월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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