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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Oct 14. 2022

할머니와 은비녀


 할머니는 무뚝뚝하신 분이셨다. 말씀도 적으셨다.


 할머니는 1918년에 태어나셨다. 104년 전이다. 19살인가 20살에 할아버지께 시집오셨다. 그리고 아이를 9명 낳으시고 시부모 봉양하시고 91세 되시던 해 돌아가셨다. 일을 잘하셨고 경우도 있으셨다. 나는 할머니를 좀 싫어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은근히 엄마를 미워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랬다. 그런데 요사이 자주 할머니 생각이 난다. 참말로 이상한 일이다.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랬다. 눈물 콧물 다 빼는 이병헌과 김혜자 모자 이야기, 장애 쌍둥이 언니 이야기, 우울증의 신민아 이야기를 보면서 줄줄줄 울었다. 삼복더위에 지쳐 나가떨어질 만큼 울었다. 하지만 그 많던 장면 중 마음을 훅 치던 장면은 엉뚱한 데 있었다. 고향에 수십 년 만에 돌아온 차승원을 반긴다고 동창들이 모여 술 마시고 노래 부르던 장면이 있었다. 다 같이 한바탕 놀고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리고 기차놀이를 길게 한다. 그리고 노래방을 휘저으며 떼창을 한다. 노는 모습이 하도 신명이 나서 깔깔거리는데 슬픔이 명치끝에 고이기 시작했다.


  ,,, 중년은 잘 놀아도 슬퍼 보이는구나...


 젊은 애들이 저렇게 놀고 있으면 이쁘고 기운차 보일 텐데... 조금씩 삐꺽 거리는 몸으로 애들처럼 노는 걸 보고 있으니 안쓰럽고 찡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서, 오십이 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고 괜스레 눈물은 흐르고 남편은 더욱더 미워지는데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면 이런 말씀을 하실 것 같다.


"아이고... 우리 솔녀(손녀)가 잘 사는구나... 시원한 바람 나오는 기계도 저렇게 좋고.... 가스에 불도 없는데 밥이 되고... 전화는 전깃줄도 없는데 되나? 한 대도 아니고 식구 수 대로 다 들고 다니네.... 아고... 좋구나.... 참말 잘했구나.. 손수(손서:손녀사위)도 그만하면 좋은 사람이니 사이좋게 지내라..."


 이런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데 눈에는 또 눈물이 맺힌다. 이제 보내야 하는 젊음 때문인지, 너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는 모순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한복을 조선옷이라고 불렀다. 결혼하고 명절에 한복을 입고 친정에 가면 '조선옷 입었네... 이쁘다.' 하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투는 걸 본 적은 없다. 반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 싸움이 잦았다. 주로 술을 먹고 밤 느직이 들어오는 아버지가 시작하는 싸움이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우리 형제들은 줄줄이 할아버지 방으로 피신 가곤 했다. 두 분은 머리채를 잡히고 몸을 잡히는 싸움, 얼굴이 퍼렇게 멍드는 싸움을 하셨다. 셋째 고모는 아버지가 술을 먹고 오면 부엌칼을 숨기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가끔 심지가 있거나 근기가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두 분 조부모의 영향인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서는 불안정하고 우리를 품기에는 흔들려 보였다. 오소희 작가의 말처럼 우리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셨다. 오직 하얀 쌀밥과 소고깃국과 학교 성적만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셨다.

 부모님은 45년, 46년생이시다. 아버지가 태어나시던 해에 해방이 되었다. 그리고 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아버지는 6살, 어머니는 5살이었다. 두 분 모두 맏자식이니 아래로 어린 동생들도 있었다. 너무나 큰 일을 유년기에 겪으셨다. 잔인한 일제의 폭압에서 벗어난 우리나라에게 돌아온 것은 사상적 분열, 열강의 대치, 거센 자본주의의 헐떡임이었다. 19살에 결혼하고 자녀를 9명이나 출산하신 할머니의 삶이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내려온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고 다른 삶은 생각도 하신 적이 없으셨을 것 같다. 너무 빠른 사회적 변화는 개인에게 큰 고통이 된다. 1940년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낸 유년기는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젊은 시절 나무로 불을 때고 우물물을 길어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하시며 사시던 할머니는 늘 '좋은 세상'이라고 하셨다. 자가용도 타시고 가스불로 밥을 하시던 엄마는 힘들다 하시고 가끔은 죽고 싶다고 눈물짓곤 하셨다. 나는 71년에 태어나 공부도 원 없이 하고 연탄불도 한번 갈지 않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우리가 결혼한 1997년에는 기름보일러가 대중화되었다. 이제 아이 다 키우고 한 숨 돌리고 '아, 오늘은 좀 편안하구나' 하고 머리를 누이면 울고 있던 엄마가 떠오른다. 그 순간에는... 힘이 많이 든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딱 한 번 다투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날은 웬일로 북적이던 집에 나와 할아버지만 있었다. 오후에 수업이 없어서 집에 있었다. 할아버지 방 앞에 널찍하게 달아낸 마루가 있었다. 거기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었다. 봄인지 가을인지, 책 읽기 딱 좋은 날이었다. 아마 1991년쯤이었을 거다. 할머니가 마당을 지나 마루로 쓱 들어오셨다. 할아버지가 마루로 나오셔서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머리가... 머리가 그게 뭐고!" 언성을 높이셨다.


할머니는 지지 않고 큰 소리를 내셨다.


" 와,, 와요,,, 요새 다 이렇게 하오... 이실이도 정실이도 김실이도 다 이렇게 했소... "

 "허, 참... 허, 참... 네...."


 그때까지 할머니는 머리를 쪽지고 비녀를 지르고 계셨다. 그게 성가시고 귀찮으셨으리라. 머리를 단발로 댕깡 자르고 파마도 하고 오셨다. 할머니가 쪽을 지던 비녀는 몽땅하고 많이 닳은 은비녀였다. 몇 년 전 엄마에게 그 비녀 어디 갔냐고 물어보았다. 살짝 귀찮아하면서 모르겠다 하셨다. 가슴이 좀 아렸다. 

 할머니는 글자를 정확히 몰랐다. 그 시절 여자는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친정에 자꾸 편지 쓴다고 그랬다는 말도 있다. 글자는 특히 한자는 남자들, 양반들이 사용하던 것이니 제일 낮은 자리에 있는 여자들에게까지 차례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글을 가르치지 않은 건 잘못된 일 같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할머니 친구 댁에 전화를 걸어드리곤 했다. 그때는 할머니가 왜 글자를 모르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와 할매는 글자도 모르노?' 이 소리를 했는지 안 했는지 잘 모르겠다. 촉새 같던 내가 한 번은 했을 것 같다. 속으로 할머니가 바보같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할머니가 머리를 자르시고 서울 살던 막내 고모가 자동 머리핀을 할머니에게 사주었다. 머리핀 양쪽을 누르면 가운데 있는 얇은 철판이 톡 튀어나오고 그 안에 머리카락을 넣고 꾹 누르면 머리카락이 고정되는 것이었다. 고모가 가르쳐주고 갔지만 다시 나에게 작동법을 물었다. 몇 번을 가르쳐드려도 못 알아듣는 할머니가 답답해서 약간 짜증을 내었다. 할머니가 무안하셨는지 역정이 나셨는지 작은 고모에게 물어본다 하고 핀을 거두셨다.

 할머니가 오래오래 사실 것 같아 엄마는 힘들어하셨다. 왜 안 그러실까? 할아버지 중풍 수발 3년 하셨고 할머니 밥상은 40년 정도 차리셨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갑자기 암에 걸리신 그 해 가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병원 다니실 때 작은 아버지들 집을 전전하면서 설움 받으시고 요양원에 들어가시면서 힘드셨을 것 같다. 평생 할아버지와 자식들 그늘에서 울고 웃었던 우리 할머니...

 내가 자꾸 할머니를 기억에서 불러내는 것이 핏줄이란 게 질기고 질겨서 그런지 아니면 유년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붙잡고 붙잡아서 중년의 시간에 넣어볼 욕심 인지 잘 모르겠다. 방학이면 할아버지께서 나와 여동생을 불러 천자문을 쓰게 하셨다. 신문지를 접어 붓글씨를 쓰고 있으면 할머니는 쓰윽 번 보시고 잘 썼다고 칭찬해주셨다. 지난 방학보다 나아졌다는 말씀도 하셨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숙제로 밤새 그린 그림을 새벽에 보셨다. 훌쩍 보시고는 잘 그렸구나... 하셨다. 글자는 모르셨지만 아름다움은 더 잘 보고 계셨구나...


 할머니... 못되게 굴어 죄송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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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오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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