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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Oct 24. 2022

벚꽃 떨어진 자리

주말에 캠핑을 다녀왔다. 우리 집 강아지도 함께 했다. 몽이가 우리 집에 온 지 9년째이다. 몽이가 오고 나서는 캠핑을 간 적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총총히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느라 여행을 가기 힘들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더 많이 못 다닌 게 아쉬웠다.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 때 한 번 갔었는데 그곳은 강아지를 동반할 수 없었다.

 팔공산에 있는 가산 산성은 훌륭한 캠핑장이다. 우선 산속에 있어서 호젓하다. 텐트를 치고 의자에 앉아 멍 때리기를 하고 있으면 오토바이가 부아앙 하고 지나간다. 멋져 보인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도 지나간다. 친구랑 둘이서 라이딩하는 하기도 하고 혼자 가는 사람도 있다. 산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다. ‘대.단.해, 전생에 장군이었나 봐’  길고 느린 시간을 보낸다. 아무 일이 없는 한가한 사람이 된다. 

 벚꽃은 이미 다 시들었다. 꽃도 졌는데 뭐가 자꾸 떨어진다. 발그레한 자줏빛 꽃 씨방이었다. 캠핑장 바닥에도 융단처럼 깔려있었다. 의자에 앉아 멍 때리기를 하고 있으면 빈 의자 위에 씨방이 자꾸자꾸 쌓였다. 툭... 툭....


 몽이는 태어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우리 집에 왔다. 그해 봄날 마음이 몹시 허전했다. 둘째가 중학교를 가고 저녁에 집에 혼자 있으면 바람이 마구 불어대는 날 나뭇가지처럼 마음이 흔들거렸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애견숍에서 강아지 두 마리를 보았다. 꼬물거리는 어린것들이 눈부셨다. ‘무슨 종이예요?’ ‘시추예요.’ ‘와, 귀여워요.’ 그때 나는 강아지에 대한 상식이 거의 없었다. 몇 달 뒤 우연히 그 가게 앞을 다시 지나갔다. 전에 본 두 마리의 강아지가 그대로 있었다.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이 자라 있었다. 처음에도 두 마리 중 몽이가 눈에 더 들어왔다. 남편이 좀 반대했지만 몰래 데리고 왔다. 

 몽이는 짖지 않는다. 집에 처음 온 날 중간고사를 치고 큰 아이가 일찍 집에 왔다. 딸아이를 보자마자 무릎 위에 폴짝 뛰어올랐다. 딸아이는 시험 기간 내내 집에 일찍 와서 몽이를 안고 있었다. 둘째는 남자아이인데 순하고 몸집도 호리호리하다. 그런데도 둘째를 보자마자 발발 떨었다. ‘애견숍에 있을 때 남자애들이 창문을 많이 두드렸나... 왜 저러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열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우리 둘째가 순둥이고 제일 어린 줄 알아서 마중을 나갈 때 적당히 느리게 나갔다. 남편이 들어오면 번개같이 뛰어나가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어 댔다. 


 남편이 침낭을 챙겨 오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우리는 바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산속에서 고기를 먹었다. 몽이도 살코기를 자그맣게 잘라서 주었다. 내 무릎 위에서 냄름냄름 받아먹는다. 산속에서 먹는 고기와 맥주는 최고였다. 적당히 정리를 하고 일찍 잠을 잔다. 잠을 자는데 뭐가 툭툭 떨어진다. ‘비가 오나?‘ 하고 귀를 기울인다. 비는 아니었다. ‘아... 씨방이 떨어지는구나’  톡... 톡... 떨어지는 소리는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끓였다. 어제 사 온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붓고 남편이랑 연한 커피를 마셨다. 몽이는 추워서 발발 떨다.  텐트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제 많이 걸어서 다리도 불편해 보인다. 올봄에 산책을 못 시켰어 그런가, 천천히 텐트를 정리하고 집으로 온다. 남편도 이제 나이 먹어서 끙끙거리며 짐을 옮긴다. 나도 끙끙거린다. 두 중년은 점심을 먹고 한숨 잔다. 몽이도 잔다.

 

 조용하고 홀가분한 주말을 보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힘들었던 일도 떠오르지 않고 걱정도 떨쳐진다. 살아있어서 좋구나, 솜털같은 마음이 번져간다. 산에서 자고 나면 이렇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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