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연결

by 보리별

오늘은 복지관에 봉사를 가는 날이다. 점심밥을 한다고 했다. 더운 날씨 걱정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조직, 일이 많네....

통장은 별로 할 일이 없다고 했는데...

그래서 시작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기네,,,'


가파른 갱년기 계단을 지나 배짱이 조금 커진 나는 '아이고, 모르겠다...' 하고 자전거를 끌고 복지관 쪽으로 갔다. 복지관 4층에 있는 부엌은 넓고 시원했다. 에어컨이 있었고 햇볕도 잘 들어왔다. 식사하러 오시는 분이 오십여 명이라고 했다. 봉사자는 열서너 명이었다.


밥은 흑미밥이었고 국은 콩나물 어묵국이었다. 반찬은 해물경단과 쪽파와 양파무침 그리고 콩나물 무침이었다. 솜씨 좋은 언니들이 손발을 맞추어 일을 척척 해냈다. 쌀은 물을 잘 맞추어 밥 하는 기계에 넣었다. 화력 좋은 업소용 가스불 위에 커다란 프라이팬을 올렸다. 프라이팬은 운동장처럼 넓었다. 해물경단 5 봉지를 프라이팬 두 개에 올려 구웠다. 팬이 커서 많던 경단이 금세 구워졌다. 남은 계란물로는 쪽파를 넣어 전을 만들었다.


오십여 명이 배식판에 밥을 받아서 드셨다. 나이 드신 노인분들이 많았는데 드시는 모습이 왠지 슬퍼 보였다. 깊은 주름 고랑위로 우리 모두의 그림자가 겹쳤다. 복지관 담당 선생님과 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다. 밥 드시러 오는 분들은 수급대상이나 차상위계층 중에서 희망하시는 분들이 오신다고 한다.

밥을 먹고 뒷정리를 했다. 수저를 삶고 행주를 삶는다. 바닥을 청소하고 음식불 쓰레기와 분리수거물을 정리한다. 먹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음식을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는 일은 잘잘한 일이지만 손이 부족하면 힘들다. 봉사자가 많고 조리실이 쾌적해서 편하게 일했다.


함께 하는 일은 오랜만이다. 법당이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공양간 봉사를 했었다. 3년 정도 했었는데 밥 하는 날은 마음이 뿌듯했다. 내 손이 한 수고가 다른 이에게 에너지가 되는 일은 나 자신에게 가장 좋았다. 그 시간은 다른 시간과는 달랐다. 소비의 시간도, 놀이의 시간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노동의 시간도 아니었다. 노동은 대가로 돈을 받지만 봉사는 시간과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주는 일이다. 그런 일이 '뭐 그리 대단할까' 생각했지만 몸으로 직접 해보니 달랐다. 나의 자긍심, 나의 자존감은 대단한 사람이 될 때, 혹은 돈이 많은 사람이 될 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줄 때, 그냥 작은 것들을 내어주는 순간 만들어졌다. 소소하고 작지만 가슴 뿌듯한 이런 일들이 존재를 지탱해 주는 핵심 근육이 되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근처 카페로 가서 차를 마셨다. 오십이 넘어 보이는 언니들은 모두 편안해 보였다. 그녀들 속에서 나도 편안했다. 이름도 다 모르고 어디서 무얼 했는지 모르지만 함께 있어 좋았다. 행복은 이런 느슨한 연결 안에 있는 것 같다. 노동도, 놀이도, 소비도 아닌 제3의 시간들이 더 자주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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