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세워놓은 계획은 며칠 실행하지도 않고 그만두기, 이번 시험도 결국 벼락치기, 운동하려고 사놓은 용품들은 먼지만 덮인 채 장롱행... 이런 삶을 지속하면서도 남들에게는 부지런하게 보이고 싶어서 또다시 지키지 못할 계획만 다시 세웠던 나.
저는 선천적으로 게을러서 계획만 번지르하게 세워두고 3일도 못 가서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만 남겨둔 채 그만두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실패에도 이 놈의 양심은 무뎌지지도 않는지 후회와 가책으로 저를 끊임없이 괴롭히곤 했었죠.
'나는 왜 이렇게 의지박약 할까?' '이 정도도 못하는데 어떻게 더 힘든 걸 해쳐나갈 수 있을까?' '너 정말 한심해, 이번에도 벼락치기야?'
제가 저한테 너무 기대하는 게 많았을까요? 제 자신 한태 저 스스로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 반복적으로 그리고 강도는 보다 더 강하게 나에게 화풀이 아닌 화풀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행동을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자책은 얼핏 보면 뭔가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고 스스로 한태도 '내가 아직 부족하지만 나도 역시 인지하고 있다.'라는 묘한 자존감이나 안심을 주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자책하는 습관으로 일어나는 문제는 보다 일상적인 곳에서 그리고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습니다.
평소 제 잘못을 질타하고 자책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주변 사람들과의 사소한 트러블에도 더욱 심하게 제 자신을 질타하고 혐오하기에 이르렀거든요. 항상 주변 눈치를 살피고 주변 시선을 인식하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할까 봐 조심에 조심을 더했습니다.
심지어는 상대와 그 어떤 트러블이 없던 상황에도 연락이 조금이라도 안 됐다 싶으면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을까' 대화창을 이리저리 분석했던 적도 있었죠.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시간이 지속되자 견딜 수 없는 피로감에 일상의 안정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저 저의 의지대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요.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게으른 몸으로 태어났던 제가 인생을 보다 의미 있게 그리고 보람차게 살기 위해서 다짐했던 말입니다. 생각했던 거보다 인생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특히나 직장 생활을 하며 회사 - 집 - 회사 - 집을 오갈 때는 인생이라는 시계의 시곗바늘은 가속이라도 됐는지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의미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하루에 조급해져서 보람 있는 하루를 만드는 강박증이 생긴 듯합니다.
그리고, 그 강박증은 삶의 모든 순간을 후회 속에서 살게 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을까?' '내일 하루는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까?
항상 오늘의 후회와 내일의 기대 속에서 살아가는 저는 내일보다 한 걸음은 더 나아간 저를 꿈꾸며 나아갑니다. 그러한 변화는 일상 속에서 쉽게 발견하곤 하죠.
저는 최근 저녁 시간에 달리기를 하는 걸 취미로 즐겨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10분 뛰는 것도 힘겨워했습니다. 뛰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100번은 넘게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책으로 통해 일으켜 세우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뛰는 것이 조금은 익숙해진 지금은 30분도 거뜬하게 달리고 있습니다. 정말 사소할지도 모르는 이러한 변화가 저를 일상 속 후회 속에서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사냐는 대답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주로 하곤 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언뜻 보면 두루뭉술한 대답일지도 모르나 이 대답의 본질은 지금보다 나은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든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가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