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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따따 Oct 23. 2020

노을 사냥

노을에 대한 감상문


 오렌지빛으로 가득 찬 하늘을 마주한 날은 뿌듯하다. 자의적으로 무언가를 이뤄낸 성취감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뿌듯하고 하루가 만족스럽다. 어제는 바로 그런 날이었다. 온종일 무언가 별일이 없었지만, 큰일을 해낸 마음이 드는 날.




 그런 날은 하늘뿐 아니라 부유하는 대기마저 색이 바랜다. 누가 공기는 무색의 무취라고 하였나. 그는 분명 후각이 좋지 않은 맹인일 테다. 오늘 내가 마주한 공기는 분명 캘리포니아에서 뜨거운 햇빛을 먹고 자란 오렌지였다. 뛰어난 개코이자 시력이 무려 1.7이나 되는 나의 말을 믿으시라. 그리고 그 순간에 갑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서 있었다. 물결에 반짝이는 윤슬은 보고 있자니 과일향이 풍부한 조금 진한 색감의 화이트 와인 맛이 날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배 속을 가득히 채우다 못해 토악질할 때까지 들이켜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그럴 일은 없다. 이제 곧 맛있는 사케를 마시러 갈 테니.



 나는 해가 안녕을 보내는 순간에 오른 취기를 좋아한다. 우울감이나 슬픔을 느끼는 시간에 술을 찾지 않는 나는 반대로 긍정적인 마음이 들어찬 순간에 술을 찾는다. 그래서 노을을 마주하는 많은 순간에 취기를 함께 느꼈다. 노을은 맛있는 와인이나 맥주는 물론이거니와 진토닉 같은 칵테일도 잘 어울린다.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가득 찰 때면 항상 해리 스타일스의 Sign of the times를 듣는다. 음악은 평범한 순간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릴 줄 안다. 그런데 이미 특별한 순간에 또 특별해지는 마법이라니. 분명한 반칙이지만 경고 카드 따위는 줄 생각은 없다. 황홀경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반칙이라면 경고 카드를 넘어 아즈카반에 끌려가더라도 상관없겠다. 당부의 말을 하자면, 꼭 이어폰을 끼고 들으시라.



 많은 이들이 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노을이 끝났다며 자리를 뜬다. 그러나 잠깐을 기다리면 또 다른 하늘을 만날 수 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 나는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저기 하늘 좀 보라며, 다른 행성에 온 것 같다는 감상을 쏟아내는 내게 어떤 이가 “It’s magic hour”라며 알려줬다. 노을을 만들어내는 하늘은 정말 마법으로 가득 차 있나 보다. 머나먼 곳에서 언젠가 보았던 매직 아워의 검붉은 하늘과 보랏빛 하늘과 회색 하늘을 기억한다.



 하늘은 매일 다른 노을을 보여준다. 분명 마법을 부릴 줄 아는 것이 분명하다. 어쩌다 소재가 떨어지거나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먹구름으로 가려 쉴 때도 있지만, 퍽 성실하고 영감이 넘치나 보다. 부럽게시리…… 그렇기에 세상에 같은 노을은 없다고 단언하겠다. 그의 어마어마한 팬으로써 더 많은 노을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나의 마음을 사진기 같은 기계로 담아낸다면 오렌지빛이나 핑크로 가득 차 있을 거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마 노을로부터 기인하지 않았을까. 언제나 노을을 볼 시간을 나에게 내어주도록 노력할 거다. 또 노을을 바라보는 순간엔 언제나 아름다움을 느끼겠다. 조바심이나 걱정 따위가 들어올 자그마한 틈조차 내어주지 않겠다.



 오늘도 쨍하고 더운 날이다. 곧 노을을 볼 수 있겠지. 노을 사냥을 떠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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