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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Feb 25. 2024

Whistlestop, we are all seated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나는 이 작품을 원작 소설이 아닌 영화로 먼저 접했었다.

그때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비디오 가게에서 Now and then을 반납하고 새로 대여한 영화였다.

내 기억으로는 1998년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인 것 같다.

그때 캐시 베이츠의 연기에 감탄하며 아름다운 미장센에 반했던 생각이 난다.

  

생각해 보니, 당시의 영화들은 인간 냄새가 나는 것들이었다.

내 머릿속에 아름답게 저장된 My girl, Now and then, The spitfire grill 등의 영화가 모두 그 무렵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언젠가 이 작품들을 다시 볼 날을 꿈꾸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펼쳐 본다.


원작 소설은 확실히 영화와는 달랐다.

(원제 : Fried Green Tomatoes at Whistle Stop Cafe)

영화에선 주로 사랑과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었다면 소설에선 휘슬스톱과 지역 공동체라는 화두를 전면에 내세웠다.

단순히 여성 지향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사회를 비판하는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한 작품이다.

1984와 동물농장을 지은 조지오웰이 떠오른다.

글쓰기의 목적 중에는 정치적 비판이 반드시 포함된다고 했었다.

솔직히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미있고 서사가 훌륭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성공했다.

재미있으며 아름답고 인물들의 서사가 풍부하다.

게다가 작가 특유의 개성도 특출하다.

작품의 배경은 1980년대와 1920~1930년대의 미국이다.

다들 알다시피 20세기 초의 미국은 인종차별이 만연하고 가부장적인 권위주의가 판을 치던 사회였다.

주인공 에벌린은 미국의 중산층 여성으로서 사회가 원하는 규정대로 살아온 인물이다.

하고 싶은 대로 살기보다 하라는 대로 살아온 사람이지.

굳이 여성이라서 억압받았다는 전제가 없더라도 이러한 성향의 사람은 주변에 많다.

에벌린을 한 번 들여다볼까.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라는 말을 들을까 순결을 지켰고 노처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결혼을 하고 불감증에 걸린 여자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오르가슴을 연기했으며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는 소릴 듣기 싫어서 아이를 출산했다."

"괴상하다거나 남성혐오자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았고 못된 년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바가지를 긁거나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우리가 에벌린을 동정하게 되는 이유는 분명히 여성이라서 억압받았던 역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는 같은 여성이 옥죄고 비난한 사실도 많지만 남성이 했든 트랜스젠더가 했든 차별은 차별이지 않은가.

특히 괴상하다거나 남성혐오자라는 소릴 듣기 싫어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았다는 표현이 재미있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를 싫어하지만 그들이 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적 사견은 본인만의 개성이고 자류로운 선택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

내가 페미니즘이 싫은 이유는 여성우선주의를 교묘하게 남녀평등주의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면, 우리 어머니 세대가 받은 차별을 놓고 왜 아무 관계없는 현세대의 남성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걸까?

그 당시를 살았던 586이나 그전 세대에게 배상을 요구해야 맞지 않나?

뭐, 어쨌든 에벌린은 마음껏 탐색하지 못한 자신의 정체성을 스레드굿 부인을 통해서 찾아보기로 한다.

본격적으로 스레드굿 부인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소설의 재미는 급증한다.




"떠나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그러니 여러 말은 하지 않으렵니다.

우리는 둘 다 바로 이 휘슬스톱에서 나고 자랐으며 무수히 많은 멋진 시간들을 보내며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습니다.

이곳이 이제 예전 같지 않네요. 넓은 고속도로가 여기저기로 뚫리면서부터 버밍햄은 어디서 끝나며 휘슬스톱은 어디서 시작되는지조차 알 수 없어졌지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카페가 문을 닫은 뒤로 이 마을의 심장이 박동을 멈춰 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처럼 작은 공간 하나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매우 험악했던 시대에 연인으로 살았던 이지와 루스의 궤적은 사람으로서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는 방법에 관하여 고민하게 만든다.

내가 굳이 연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에는 레즈비언 커플이라고 단언하기엔 작가가 두 사람의 애정을 은근하고 고급스럽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가페에 더 가깝다고 본다.

하여튼, 이지가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었던 배경엔 사랑이 있었겠지만 사람이 어떤 가치를 내걸고 앞으로 달리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느낀다.

거기엔 공동체를 생각하고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고민한 흔적이 역력해야 도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이지는 자신에게 사랑을 일깨워 준 루스를 위하여 폭력배 남편에게서 그녀를 구해낸다.

모진 상황에 어쩔 수 없다며 처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았다.

이것은 그녀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정의감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을 지키는 일이 아름답다는 가치관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80년대의 에벌린은 "자신이 젊다고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고 늙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적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 우드가 개업한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라는 가게가 생각났다)

이것은 에벌린이 이지와는 다르게 아직 정체성을 갖지 못했다는 상징이다.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자신의 위치나 자리를 찾지 못했고 스스로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30년대로 돌아가 보자.

재스포의 조카를 보라.

그는 흑인이 분명하지만 백인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패싱 하려 한다.

패싱은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자가 신분이나 정체성을 속이고 그 구성원인 척 행세하는 것을 말한다.

부정하기 위해선 자기 합리화가 필요해지며 따라서 뻔뻔하거나 논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다른 흑인과 달리 피부색깔이 옅으니 백인이 될 수 있다고 합리화하였다.

물론, 결과는 재스포가 구타를 당하는 비극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이지와 루스는 카페를 운영하며 대공황 이후 대거 발생한 부랑민들에게도 음식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함께 지내는 십시와 빅 조지, 온 등 흑인 가족을 지킨다.

여기에서 스스로 정체성을 탐색하지 못했거나 공동체 안에서 본인의 역할을 찾지 못한 사람과 차이가 드러난다.

에벌린 역시 이지와 루스의 기개에 감동하여 본인의 삶을 바꾸려 도전한다.

48살의 나이가 중요한가?

아니, 살아 있음을 느끼는 행동이 우선이다.


에벌린이 니니에게 휘슬스톱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대접하며 대미를 마칠 때, 과연 그 맛이 어떨까 궁금했다.

마지막 챕터에는 십시의 레시피가 있었고 미국 남부 토마토는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했다.

이 소설은 참 재미있다.

이야기는 구전 동화를 듣는 것처럼 흥미롭고 다루는 것들도 다채롭다.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보지라는 단어가 왜 상대방을 비하하는 욕설이 되었는지 묻는 장면부터 불알이 신용카드처럼 쓰였다는 표현에선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 고환은 체크카드도 안 될 것 같단 말이지.

어쨌든, 즐거운 독서는 이렇게 끝났다.

나는 여성이 아님에도 십시처럼 무언가 일을 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휘슬스톱 카페의 개업 소식으로 끝을 맺는다.


아직 다녀가지 않은 분을 위해 알려 드리자면, 아침 시간은 5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이며

계란, 옥수수 죽, 비스킷, 베이컨, 소시지, 붉은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인 햄, 그리고 커피를 25센트에 드실 수 있습니다


점심과 저녁도 드실 수 있습니다. 닭튀김, 포크찹과 그레이비소스.

메기, 닭고기와 덤플링 또는 바비큐 한 접시, 고객이 선택하는 야채 세 가지, 비스킷이나 옥수수빵, 그리고 음료와 디저트를 35센트에 제공합니다.


야채는 크림 옥수수, 풋 토마토 튀김, 오크라 튀김, 케일이나 순무 잎사귀, 동부 콩, 시럽을 입힌 고구마, 흰 강낭콩이나 리마콩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디저트로는 파이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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