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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09. 2024

보답받을 길 없는 감정에 관하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8세기 후반, 독일을 위시한 유럽의 주요 나라에서 수많은 청년이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이 사건들은 당시에 사회적인 문제로 급부상했고 그 논란의 중심에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바로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그 청년들이 베르테르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를 따라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주체할 수 없어 갈 곳 없는 마음들이 상처를 입어 보답받을 길 없는 감정으로 베르테르를 따라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며 처음 읽었고 고등학교를 다니며 다시 읽고 서른 줄이 되어 또 읽었습니다.

고전의 즐거움이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그 감동은 깊어진다는데 있습니다.


여기, 사랑의 열병에 걸린 베르테르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 로테는 이미 알베르트라는 정혼자가 있습니다.

그녀를 향해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베르테르는 친구인 빌헬름에게 편지를 씁니다.

자신의 감정과 현실의 괴리, 본인의 예술 혼을 담아 나지막이 자신의 안부를 전합니다.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로테를 만나 사랑을 키워가는 베르테르의 행복한 전반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좌절과 베르테르 스스로에게 향하는 자괴감에 빠져 불행한 후반부입니다.

전, 후반부는 느낌만 다를 뿐 절절하고 위태한 감정은 여지없이 읽는 이의 정신을 관통합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행동 대신 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애절함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사랑이란 이런 감정이구나, 애끓고 환희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나도 언젠가 몸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했습니다.

특히 베르테르가 비애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내던질 때, 나는 대단히 슬펐습니다.


'이제 나는 여행을 떠나야겠으니 권총을 빌려주겠습니까?' 


금방이라도 모든 걸 끝내 버릴 것 같던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결국 비극의 장場으로 옮겨집니다.

'신이 성자에게 내린 축복' 같았던 사랑의 감정은 '다시 깨지 않기를 바라며 잠에 드는' 절망으로 바뀝니다.

로테의 정혼자인 알베르트가 나타나며 시작된 슬픔은 마음에 병이 들고 마는 괴로움이 되어 베르테르를 사정없이 후려칩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춘기 시절의 어린 나에게 여행을 떠나겠다며 권총을 든 베르테르의 모습은 영웅처럼 다가왔었습니다.

비련의 폭풍 속에서 더는 견디지 못하고 먼 여행을 떠나려는 그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성녀 같았고 죽음으로 비극의 주인공이 된 베르테르가 왠지 멋있어 보였습니다.

어쩌면, 표현도 못 하고 말없이 속만 아팠던 짝사랑의 기억 때문에 나를 그와 동일시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비극에 몸을 내던진 비련의 주인공이었던 베르테르는 지금의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애달픈 영혼을 가진 20대 청년이자, 로테를 향한 사랑만큼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 미성숙하게 머물렀던 정신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가 철이 들어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평생 사랑을 해도 그 감정에 대해 정의할 수 없으며 그런 일 자체가 소용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삶을 살아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첫걸음이며 개개인의 개성이 모두 다르기에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일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베르테르는 사랑이란 감정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로테의 상황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관계와 연속성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때로는 인정하고 물러나 자신을 챙기며 후일을 기약함이 모두를 위해 최선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어쩌면, 베르테르가 쏘아버린 총알을 영원히 볼 수 없고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죽이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구겨진 편지 사이로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기에, 조금씩 온기를 더 해가는 따뜻한 장작불처럼 체온을 감싸 쥐는 사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급격히 불어 뜨거워진 불길은 화마가 되어 자신을 태울 수도 있고 찬물을 끼얹은 듯 갑자기 재만 남아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베르테르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의 사랑을 향한 순수한 열정 때문이겠죠.

사랑은 언제나 다른 가치 앞에서 무력해지거나 종이 쪼가리처럼 무가치해지기도 했습니다.

물질적인 가치 앞에서는 특히 약해졌습니다.

애절하고 지독한 사랑에 대한 열망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를 통해 발현되었고 '에이, 그런 사랑이 요즘 시대에 어디 있나?'라는 자조 섞인 말들을 듣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열망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건 여전히 우리가 사랑에 대한 순수함을 가지고 있고 그러길 바라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리저리 재어 보거나 안전거리를 확보하려는 마음보다 사랑에 아파 몸져눕더라도 기꺼이 몸을 맡기는 용기야말로 사랑의 마음에 더 다가가는 일일 것입니다.

사랑을 관망하는 행동은 진정 사랑을 관조하며 꽃 피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악수가 됩니다.

온 마음으로 열렬히 사랑하며 꽃을 피우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 행복을 느낄 거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사랑하세요.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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