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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Jan 30. 2024

지하 암반층에서 글쓰기

1주 차 ─ ③ 나의 첫 번째 엇쓰기 경험

저의 엇쓰기는 지하 암반층에서 시작됩니다. 도리어 대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던 해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학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일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침대 위 이불속으로 몸을 구겨 넣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건강은 서서히 닳아갔습니다.

    시린 겨울은 봄이 되어 부드러워지고, 어느새 쨍쨍한 여름이 될 때까지 저의 모든 일상은 침대 위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약 9개월을 방 안에서 지내며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성가신 매미 소리가 저물어가던 어느 여름밤이었습니다. 창밖으로 스며든 어둠처럼 그날도 어김없이 우울감이 찾아들었습니다. 어찌할 바 모를 오묘한 감정이 밀려들 때 저는 종종 침대 머리맡 낙서장을 집어 들었습니다. A4 크기보다 조금 작은 스프링 연습장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색연필로 그림을 끄적였는데 그날은 왠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연필을 집어 들고서 홀린 듯이 줄줄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한 페이지의 끝자락에 다다를 때, 저는 무언가 신비로운 감정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치 엉킨 뜨개실이 스르륵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후련했습니다. 먼지처럼 뭉친 생각의 세계를 벗어나니 비로소 마음도 차분해졌습니다. 노트 위에 쓰인 검은 글자들은 제 안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명백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구불구불, 알아보기도 쉽지 않은 글씨에다가 내용은 우울과 무기력이 덕지덕지 붙은 듯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안도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글쓰기 경험이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구잡이 글을 통해 내 안에 쌓여있던 감정적 쓰레기 더미를 처음으로 직면한 것입니다.


  물론 제 안의 우울과 무기력이 단번에 자리를 비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가 앞으로 나의 일상을 새롭게 이끌어주리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쓴 한 페이지 글쓰기의 경험은 곧 엇쓰기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고치를 짓고 있었습니다. 누에가 한 올 한 올 실을 빼내듯이, 제 안에 꼭꼭 숨겨진 마음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습니다. 낮과 밤을 주기로 재생되는 삶처럼, 우리 안의 이야기도 끊임없이 새로운 실을 토해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자기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진의 브런치 매거진 <엇쓰기 모임> 정주행 하기


프롤로그

내 안의 엇, 하는 순간을 찾아 떠나는 글쓰기 모임


1주 차: 오리엔테이션

─ ① 엇쓰기가 뭐예요?

─ ②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③ 지하 암반층에서 엇쓰기 (현재 글)

─ ④ 엇쓰기, 어떻게 하는 건데?

─ ⑤ 나만의 넷플릭스에 접속하라

─ ⑥ 엄마 김치의 비밀

─ ⑦ 리쓴! 나의 일상 리듬

─ ⑧ 엇쓰기의 효능

─ ⑨ 자기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진 인스타그램 @leejinand

엇쓰기 모임 인스타그램 @eot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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