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木
아이를 낳고 어느새 70일. 피로와 이기심에 젖은 이들의 신경질적 반응을 견디지 못해 집에 돌아왔지만, 결과는 나 역시 똑같이 변하고 만다는 것이랄까. 물론 내 경우엔 아이보단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는 쪽이지만.
집에 돌아온 첫 주엔 생리가 겹쳐서, 아마도 또 다시 호르몬의 노예가 되었다가, 둘째 주엔 그나마 간신히 적응했다. 첫 주엔 실상 아이가 울 때마다 같이 울었던 것 같다. 몸이 힘든 건 둘째고, 그저 우울하고 외롭고 서글펐다. 신혼 초에 자각 없이 꿈에서만 엄마가 그리웠다면, 이번엔 뼈저리게 그립다고 느꼈달까. 하지만 내가 왜 돌아와야 했는지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그 사실조차도 서글펐다. 내 가족들이 심히 인내심이 부족한 이들이란게?) 간신히 버텼고, 그는 모질게 말한 다음 날 누군가에게 귀띔이라도 받은 것인지 작은 꽃다발을 들고 화해를 청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는 정말 엄마 말대로 지독히도 구제불능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나에게 다른 선택지도 없는 이상, 나는 꽃다발에 녹아내려야 했다.
하루하루, 일주일이 길고, 같은 날들이 반복되는 느낌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아이와 나 모두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이 든다. 아이도 나와 둘이서만 지내는 일상에 서서히 적응하고, 나 역시 조바심 내지 않고 아이에게 맞춰 생활하는데 익숙해져 간다. 그리고 역시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쉬워지는 건 없어서, 매일밤 기도하는 습관이 다시 생겼다. 대체로 아이의 건강과 평온한 날들을 기원하는 것 같고, 여유가 있으면 내 주변인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길 빈다. 그게 가장 나에게 도움되는 일이니까. 간절한 날에는 남편의 속알맹이가 천지개벽하듯 바뀌길 빌어보기도 하지만. 서서히 이뤄지고 있는 건지, 가망이 없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아이는 때론 버겁지만, 거의 대부분은 아주 사랑스럽다. 무게도 이제 휘청할 정도지만, 그래도 아직은 작고, 따뜻하고, 말캉하고, 늘 꼭 안아주고 싶게 귀여운 애교로 가득하다. 원하는 게 있을 때면 어찌 그리 활짝 웃는지. 아이의 미소가 행복 그 자체라는 말은 식상하고 고리타분한 표현이라 여겼는데, 내 자식을 마주하고 보니, 아, 그건 사실 진리인가보다 여기게 된다.
매일 아이를 보고, 부대끼면서도 또 사진과 영상까지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보다 무서운 중독도 없으리란 생각이 들고 만다. 몸이 지치고 힘겨워서 아이가 얼른 자라주었으면 싶다가도, 아이의 아기다운 버릇들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 같으면, 영영 사라질 그 사랑스러움이 못내 아쉬워서 가슴이 저릿해 온다. 어떻게든 그 순간을 보존해보려고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보지만 아이는 귀신 같이 알아채고 기계는 싫다는 듯이 울어버린다. 결국 도촬에 점점 능숙해져야 하는 신세.
물론 그래도 중간중간 홀로인 시간은 절실하다. 다시 가벼워진 (아직 덜 가볍긴 하지만) 몸으로 이리저리 쏘다닐 수 있단 게 그저 기뻐서. 실은 병원에 갈 때조차 혼자 외출이란 게 감격이다. 다만 고독의 즐거움조차 아이에 대한 중독으로 그렇게 오래 가진 않는다. 떨어지면 결국 내내 또 사진과 영상만 들여다 보는 나는 이제 정말 부모라는 몹쓸 중독자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니까, 나에게 허용된 십 여년의 기간 만큼은, 아이에게 듬뿍 취해서 지내자. 즐거운 고독의 시간은 얼마든지 다시 오지만, 자라버린 아이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