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셋 19화

오징어도 제 먹물 너머는 못 본다

목 木

by 하이디 준

아이를 낳고 3주만에 집으로 휴가를 왔다. 간만의 혼자만의 시간. 종일 잘 것 같다고 했지만 역시 아쉬워서 다섯 시간 잔 이후엔 놀고 먹고 있다. 맘 같아선 하룻밤까지 보내고 가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아이가 보고 싶기도 하다. 고작 반나절 떨어져 있어도, 실은 병원에 다녀오는 짧은 오전 시간에도, 나는 아이의 사진이나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함께 있으면 정말 힘들고 내팽개치고 싶다가도, 결국 나도 모두와 마찬가지로 막상 떨어지면 아이를 그리워한다.


뜻대로 되지 않고 병약해진 몸뚱아리를 간신히 붙잡은 채 아이를 위해 버틴 3주는 길고도 짧다. 더욱 힘을 내고 싶고, 더 빨리 회복하고 싶고, 다시 바지를 입고 강한 척하는 내가 되고 싶지만, 맘처럼 쉬이 되진 않는다. 물론 여성성이랄지 호르몬이랄지, 나를 너무 여자답게(?!) 하던 요소들은 사라지고 점차 다시 무덤덤해지고 냉철해진다는 느낌은 간혹 든다. 그리고 역시 남자인 편이 훨씬 편하겠다고 한숨을 쉬며 생각한다.


다시 운전을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피곤해도 굳이 차를 몰고 온 건 그런 예전의 나를 되찾기 위한 행위의 일환이기도. 그러다보니 지금의 머리는 약간 에러다. 다시 짧게 치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배어나오지만, 그냥 길게 길러서 무심히 땋아버리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관리가 될지, 그럴만한 머리가 남아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몸은 오징어처럼 흐물흐물한 연질이 되었단 게 느껴진다. 관절도 느슨하고, 피부 조직도 뭔가 부들부들 말랑하다. 다시 단단해지기까지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출산은 역시 생각 이상, 상상 이상의 경험이다. 물론 그냥 내가 워낙 저질 체력인 걸 수도 있고.


아이의 이름을 내 뜻대로 할 수 있길 빌긴 했지만, 실제로 이뤄질 거라곤 믿지 못했다. 한자 이름까지 받아보고도 결국 돌아왔다는 건 그만큼 좋은 선택이었다는 거겠지. 내가 열 달간 내 몸으로 품고, 내가 이름을 떠올려서 붙인 게 실제로 통용된다는 게 뭔가 너무 신기했다. 3주가 길면서 짧았던 것도 그런 내 현실과의 동기화가 자꾸 늦춰져서 뭔가 되새길 시간이 없었던 탓이 크다. 이게 진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니… 실감하며 나를 돌아볼 여유는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들에는 좀 찾기 힘들다.


그러니 아이에게 애정 표현을 하기보단 거의 기계적으로 살아남기(?!)에 온 정신을 쏟으며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무뎌져 간다는 걸 아주 가끔에서야 흠칫 떠올린다. 역시 뭔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어느 정도 적절한 거리가 때로 필요하다.


그래도 뭔가 내 노력을, 그보다 내 존재 자체를 아이가 알아주길 바란다. 아직 내 얼굴조차 못 알아보고, 그저 허기와 졸음, 체온과 빛 정도만 존재하는 아이의 세계에 내가 엄마로서 깊이 각인되기를. 내 사랑이 보답받기를.


주변 이들, 내 가족들에겐 미안함과 서운함이 언제나 공존한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내가 지쳐서라는 결론에 항상 이른다.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하고 있고, 또 한편으론,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을 뿐이니까. 역시 너무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취향이 생기고, 그걸 표현할 아이의 날들이 기다려진다. 아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부디 지난 열 달만큼이나, 비교적 순탄한 날들이 지속되기를, 조금 회의적이면서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기분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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